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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도둑맞은 편지( 1844)-귀부인과 대신과 경찰과 뒤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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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도둑맞은 편지( 1844)-귀부인과 대신과 경찰과 뒤팽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5.31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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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바람이 거세고 어둠이 짙게 깔렸다. 첫 문장이 대략 이런 분위기로 시작된다면 내용은 그와 유사한 음침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으로 짐작이 된다.

과연 이런 예상은 맞아떨어진다. 방안에 모인 남자들의 이야기는 거리의 살인사건 등에 관한 생각으로 어수선하다. 남자들이라고 했지만 그 수가 썩 많지는 않다.

우선 이야기 화자인 내가 있다.( 이런 류의 소설을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배웠다.) 나의 친구 뒤팽은 주인공이다. 둘이 이런 스산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우리와 친분이 있는 파리 경시청 총감 G가 들어온다.

그가 온 것은 친목 모임 때문이 아니다. 골칫거리인 공적인 사안을 뒤팽과 상의하기 위해서다. 파리 경찰 책임자인 총감이 개인과 공적인 일을 논하는 것은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뒤팽은 총감이 그렇게 하고도 남을 인물이다.

여기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는 탐정으로 파리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니 총감이 제발로 찾아왔을 터. 그는 범인과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만이 알만한 내용을 털어놓으면서 어떻게 하면 얽힌 실마리를 풀 수 있을지 조언을 구한다.

암살사건은 아니다. 총감의 말에 따르면 극히 단순한 사안이다. 단순한 것을 풀지 못해 친구를 찾아온 총감의 처지가 딱하다. 그러나 사건은 단순하지만 성격은 기묘하다.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총감을 위해 뒤팽은 열쇠를 풀 단서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사안이 너무 단순해서 오류를 범했군.”

한마디로 수수께끼가 너무 단순한데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 말을 들은 총감은 호방하게 웃지만 속은 타들어 간다. 자기 목이 달아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사건은 이렇다. 왕실의 아주 높으신 분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서류를 잃어버렸다. 서류는 다름 아닌 편지. 편지를 훔친 도둑을 잡으면 사건은 끝난다고 독자들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도둑이 누구인지는 편지를 도둑맞은 왕실의 높은 분이나 총감이 알고 있다. 그러니 총감이 원하는 것은 범인의 체포는 아니다. 편지를 되찾는 것이 목적이다.

▲ 범인과 뒤팽이 벌이는 팽팽한 신경전이 볼 만하다. 과연 도둑 맞은 편지는 주인공에게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을까.
▲ 범인과 뒤팽이 벌이는 팽팽한 신경전이 볼 만하다. 과연 도둑 맞은 편지는 주인공에게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을까.

범인은 편지를 여전히 갖고 있다. 어디에 버리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게 주지 않았다. 이런 확신은 훔친 목적대로 사용한다면 즉시 나타날 수 있는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편지를 되찾기 전에 제3의 인물이 그 내용을 알게 되면 너무도 존귀한 분의 명예에 금이 가고 평화가 깨진다. 그러기 전에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존귀한 분은 위태롭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대신 D는 존귀한 분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여러 정치적 이득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존귀한 분은 대신이 편지를 훔친 범인이라는 것을 어찌할 수 있었을까.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존귀한 분이 그 당시 현장에서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은 당신 바로 곁에 있는 제3의 인물에게 주의를 끌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그 편지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애드거 알랜 포의 관심은 편지 내용이 아닌 편지를 되찾는 것에 있으므로 어떤 단서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귀부인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외간 남자와 내통하는 연서가 아닐까 이런 추측을 해 볼 뿐이다. 작가가 아니라면 대신 D라도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편지를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내용이 공개되는 순간 대신은 칼자루를 잃게 되고 권력은 그의 손을 떠나게 된다는 것을 대신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편지를 갖고만 있고 내용은 자신만이 알고 있다.

자,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대신의 집을 가택 수색해서 편지를 찾으면 된다고 독자들은 생각할 것이다. 과연 독자들의 추리력은 뛰어나다. 그런 생각을 총감도 했다. 그래서 현미경을 들이대고 집안을 샅샅이 수색했다.

총감이 수색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없도록 그가 출타 한 뒤 하인도 모르게 파리 시내의 모든 방이나 캐비닛을 열 수 있는 만능 키를 사용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노상강도인 척하면서 대신의 몸을 샅샅이 뒤졌으나 이마저도 불발로 끝났다.

아첨 잘하는 궁정인이며 대담한 모사가인 대신 D가 경찰이 자신의 집을 수색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집이나 몸아니고 다른 장소에 숨겼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총감의 판단이고 보면 그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과연 뒤팽은 속이 가뭄에 마른 논처럼 타고 있는 경감이 찾고 있는 편지를 너무나 존귀한 그분의 손에 안전하게 다시 쥐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총감이 비밀이라면서 거액이 걸린 포상금을 수표로 받는 기회를 잡았을까. 뒤팽은 한 몫 단단히 챙기고 금제 파이프 담배를 피면서 여유있는 파리의 낭만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힌트를 주자면 앞서 말한 사건의 단순성을 독자들은 기억해 주기 바란다. 그렇게 단순하다면 편지는 멀리 있지 않고 귀부인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댔든 사건은 시원하게 풀렸다. 도둑맞은 편지는 주인 손으로 돌아왔고 뒤팽은 명탐정의 명예와 부를 얻었고 파리의 경찰 우두머리는 잘리지 않고 공적인 일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범인인 대신 D는 어떻게 됐을까. 남의 약점을 잡아서 궁정을 좌지우지했다면 그 벌은 작지 않고 크다.

귀부인이 어떤 불호령을 내렸을지, 허둥대는 대신이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은 독자 개인이 추리력 속에서 찾아야 한다. ( 책은 편지를 확보하기 위해 뒤팽이 미치광이 행세를 하는 사람을 고용한 사실과 18개월 동안 편지를 쥐고 귀부인을 농락했던 대신이 이제는 그녀가 그를 농락할 차례라는 사실만 언급하고 있다. 대신은 아직까지 자신의 손에서 편지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정치적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 이라는 미래형으로 마무리 짓는다.)

: 뒤팽과 총감이 나누는 대화 중에 이런 게 있다.

대신을 멍청이로 본 것이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죄자와 경찰 간의 지적 싸움이 추리의 일 순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멍청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주 중요한 결정이다.

모든 멍청이는 시인인데 대신은 시인으로 명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활한 범인인 대신이 멍청이이기는 하지만 아주 멍청이는 아니라는 것. 여기에 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었다.

참고로 여덟 살 꼬마 아이들이 홀짝 놀이를 하거나 학생들이 지도에서 지명 찾기를 할 때 이기는 확률이 많은 사람은 상대의 지적능력을 철저히 분석하는 심리학자의 노련함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터. 책을 읽으면서 그랬던 생각이 떠올라 미소짓는 독자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팽이라는 자의 추리력에 감탄하면서 과연 셜록 홈즈에 영감을 준 소설 속 명탐정의 선두 주자답다고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포의 모든 소설에 뒤팽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마리 로제의 비밀> 그리고 여기 소개하는 <도둑맞은 편지> 등 단 세 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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