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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할 수 있는 것은 다하자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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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것은 다하자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5.27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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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색이 짙은 그들은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었다. 상해의 독립군이 조선으로 들어온다는 첩보를 입수한 후부터는 더 그랬다.

미군 특수전단의 훈련을 받은 수백 명 규모가 한꺼번에 경성에 들어와 시가전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순사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

그들의 무기는 자신들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가공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일당백을 한다는 무시무시한 훈련을 견뎌낸 인간병기라서 총알도 독립군을 피해간다고 했다.

미신 같은 말들이었지만 일제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만큼 코너에 몰려 있었고 들려오는 태평양 전황은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 했다. 대일본 제국이 질 수 있다는 불안삼은 밑에서 부터 올라왔다. 

상부는 언제는 겉으로는 연전연승한다고 외쳤으나 속내는 그 반대였던 것이다. 그런 끔찍한 공기는 스멀스멀 담배 연기처럼 위로 솟았고 경성의 일제는 만에 하나 닥쳐올 일들이 벌어지기 전에 사전 차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거리의 아무나 붙잡아 검문하고 끌고가고 매타작을 했다. 공포심으로 지배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고 휴의는 생각했다. 고비를 넘기면 기회는 있기 마련이다.

서로는 서로를 이렇게 판단했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일경은 본진이 들어 오기 전에 그들과 연결된 하부조직을 체포하기 위해 날을 세웠다.

정보를 입수하는 일이 중요했다. 기민한 행동은 정보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들은 고전적 수법은 물론 새로 들여온 기발한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경성과 만주를 잇는 독립군의 싹을 잘라내기 위해 칼을 갈았다.

지나 가는 행인은 아무나 잡아다 문초했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 수색했다. 두려움에 떨게 하고 때로는 포상을 내걸었다. 수상한 자를 신고하거나 잡는 데 공을 세우면 쌀가마를 던져 주거나 누런 봉투에 싼 돈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자는 것이 일경의 속셈이었다. 휴의는 말발굽이 바로 코앞에 어른 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태연했다. 그들의 습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대처하는 방법도 상세했다.

하나가 꼬이면 다른 하나로 풀고 다른 하나가 들어오면 또 다른 무기로 쳐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젊은 휴의를 불러 세웠다.

‘어이 거기 너, 서.’

불러세운 그들은 하는 일을 당연히 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무언가 새로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얼굴이 불거졌다.

그들은 신분증을 요구했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이것은 휴의에게 가당찮은 질문이었다. 그는 맞받았다. 너의 소속은 어디고 어디서 와서 지금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임마, 네 소속 부터 말해.’

대 놓고 하대하면서 아예 명령조로 나왔다. 예기치 않은 공격을 받으면 강한 상대라 해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이치다. 그들은 그의 능숙한 일본어와 품위가 섞인 단어사용, 그리고 위엄있는 태도에 일단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이 먼저 질문했다는 것도 잊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상대가 질문한 것에 대해 술술 불었다.

휴의는 고생한다며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사람 봐가면서  검문해야지.'

말을 마친 휴의가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려고 할 때 그 중 한 명의 순사가 미심쩍은 듯이 휴의를 불러 세웠다.

‘선생님...’

돌아보는 휴의는 그가 어떤 말을 할지 알았다. 그래도 신분을 밝혀 달라고 그것이 우리 임무이고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이라 할지라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휴의는 돌아섰다. 그리고 네 직속 상관인 고바야시는 잘 있지? 하고 물었다. 그 제서야 순사는 모든 의문이 사라졌다는 듯이 하이, 하이를 연속으로 외치면서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고바야시라는 이름이 나온 이상 그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상관을 아는 자는 그와 친분이 있거나 적어도 총독관저에서 일하는 본국의 파견 관리임에 틀림 없었다. 그런 사람이 적과 내통할 리는 없다. 우리 편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그들은 휴의가 시선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휴의는 빠져나왔다. 독자들은 궁금해할 것이다. 일경이 그 정도로 순진한가.

그러나 그 상황에 처했다면 그 반대인 의심덩어리 순사라도 휴의를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강한 자에 약한 것은 강한 자들의 특징이 아니던가.

자신들 보다 힘이 센 것을 확인하는 순간에 납짝 엎드리는 것은 그들의 생존전략이었다. 휴의는 광통교를 지나 남대문의 혼란한 시장통에 들어가고 나서야 안도하는 심정으로 휴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당하게 행동했으나 속으로는 떨려오는 것을 그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막무가내로 나와 서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돌변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국사 한 그릇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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