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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구름 한 점(1905)-굴레와 자유 그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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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구름 한 점(1905)-굴레와 자유 그 이중주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5.13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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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8년 전에는 초라하고 가난에 시달렸다. 챈들러(챈들러는 몸집이 작아 그냥 챈들러가 아니라 꼬마 챈들러, 리틀 챈들러로 불린다.)는 그를 배웅해 주면서 성공을 빌었다.

겔러허는 당시 가문이나 교육에서도 챈들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운명이라는 것은 미묘하고 복잡하고 불가해한 것이어서 두 사람의 처지는 역전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기분 나쁜 사람은 당연히 챈들러다. 처음부터 뒤졌으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강산이 한 번 바뀌기도 전에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주눅이 든 챈들러와 의기양양 우쭐대는 갤러허.

그럴 만도 하다. 챈들러는 법률가 양성기관에 근무하면서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반면 갤러허는 런던에서 언론인으로 크게 성공했다. 그가 고향에 왔다. 더블린에 온 그는 여러모로 달라져 있었다.

여행하는 듯한 분위기(이런 분위기는 다들 알 것이다.), 비싸 보이는 트위드 정장(사전에 따르면 순모로 된 스코틀랜드산 홈스펀을 말한다. 현재는 방모사를 사용한다.)거침 없는 말투는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갤러허는 챈들러를 정말로 꼬마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친구 앞에서 겸손을 떨 이유가 갤러허에게 없었다. 그는 떠벌인다. 내가 이만큼 컸는데 너는 제자리 걸음이라고 쉬지 않고 나불댄다. 비싼 시가를 피고 고급 음식점에서 몰트 위스키를 마신다.

그러면서 이제 막 부패가 시작된 유럽의 도시들 특히 베를린을 성토한다. 수도원의 비밀을 폭로하고 상류사회의 비리를 까발리며 런던의 어떤 공작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꼬마 챈들러는 놀란다. 더블린 촌구석에서는 들을 수 없는 커다란 비밀들이 갤러허 입에서 마구 쏟아진다. 꼬마 챈들러는 여전히 고향에 살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나도 갤러허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답답한 시골을 벗어나고 싶다. 기회만 있다면 갤러허 같은 값싼 저널리즘 보다 훨씬 더 고상한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야 한다.

▲ 챈들러는 친구 갤러허를 부러워 하지만 끝내 모험을 하지 못할 것이다. 운명을 거부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 챈들러는 친구 갤러허를 부러워 하지만 끝내 모험을 하지 못할 것이다. 운명을 거부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앞길을 막는 것을 걷어내고 불안한 수줍음을 떨쳐내야 한다. 그러나 꼬마 챈들러는 한숨을 길게 내쉰다. 그런 용기가 자신에게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딸린 식구가 있다. 아내도 아이도 있다. 갤러허는 친구의 결혼을 뒤늦게 축하한다.

건배는 이어지고 꼬마 챈들러는 조금 취했다. 평소에 먹지 않는 술기운이 몸에 돌고 있다. 그는 내년에는 내가 네 결혼을 축하해 줄지 모른다고 덕담을 한다.

그러나 갤러허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실컷 재미를 보는 것이 급하다는 것. 인생과 세상구경을 제대로 해야지 결혼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고 핀잔이다.

그에게 결혼은 고생주머니이고 그것은 늦게 찰수록 좋은 것이다. 그가 결혼한다면 썩어 나갈 만큼 돈 많은 예쁜 여자가 상대다. 마음만 먹으면 수백 아니 수천 명의 그런 여자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독일 여자, 검은 눈이 아름다운 유대 여자들이 줄 서 있다. 그러니 결혼을 서두를 일이 갤러허 에게는 없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 갤러허가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꼬마 챈들러는 그런 친구를 집에 초대하고 싶다. 그러나 갤러허는 파티가 선약돼 있다며 거절한다. 집에 돌아온 챈들러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갤러허의 성공과 자신의 처지가 비교된다. 더구나 아내를 위한 커피( 커피 먹고 싶다.)도 빼먹었다. 기분이 상한 아내는 자기가 가게문 닫기 전에 사오겠다며 어린아이를 떠맡긴다.

아기는 운다. 달래도 소용없다. 냅다 소리를 지른다. 그쳐 그만. 하지만 아이는 잠시 멈추는 듯했다가 자지러지게 소리친다. 몸을 바르르 떤다. 이대로 죽기라도 할지 모른다.

챈들러는 우울하다. 아내 옷을 제법 비싸게 주고 샀을 때가 떠오른다. 그 때 돈을 꺼내는 손이 떨렸었다. 계산대 앞에서 붉어진 얼굴을 감추느라 혼쭐이 났다.

아내도 이렇게 비싼 옷을 샀느냐고, 사기당했다고 고함을 친다.( 그러나 아내는 물리기보다는 소매가 아름답다며 그 옷을 입는다. 아, 여자의 마음이여~)

사진 속의 아내를 본다. 내가 왜 저런 여자와 결혼했을까. 돈 많고 예쁘고 검은 눈의 유대 여자와 비교된다. 후회의 마음에 그는 복장을 친다.

그러나 챈들러는 정신 줄을 아예 놓지는 않았다. 월부로 산 가구도 갚아야 한다. 현실로 돌아온 챈들러는 일었던 분노와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 조금은 누그러 진다.

그러다가 문득 책을 써서 바이런 같은 유명한 시를 쓰면 돈이 모일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데 밖에서 돌아온 아내가 우는 아이를 낚아챈다.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야. 이거 왜 이래.’

챈들러는 진짜 꼬마가 된 듯이 안절부절못한다. 아내가 얼르고 달래는 틈에 아이의 우는 목소리는 점차 가라앉는다.

: 시인 지망생인 챈들러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을까. 멋진 시를 쓰고 현재의 굴레를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그래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평가들의 서명을 미리 떠올려 보기도 했다.

‘편안하면서도 우아한 운문을 쓰는 재능이 있는 인물, 그리움의 슬픔이 시 작품 전반에 배어 있다.’

흠, 이 정도 평가에 챈들러라는 이름은 좀 촌스럽다. 아일랜드식으로 T. 멀론 챈들러라면 모를까. 이런 상상을 해보면서 겉만 번지르르한 기자 생활보다 좀더 고귀한 것을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올랐다.

과연 리틀 챈들러는 더블린을 벗어나 런던이나 파리에서 명성을 날릴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으라면 예스가 아닌 노다. 챈들러는 죽을 때까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챈들러의 숙명이다.

한편 내년에 런던에 다시 오면 챈들러의 저녁 초대에 응하겠다고 약속한 갤러허는 그 약속을 지킬수 있을까. 아니면 헤어지는 순간 잊어버렸을까.

챈들러와 갤러허 두 친구의 비교되는 삶을 제임스 조이스는 <구름 한 점> 이라는 짧은 단편을 통해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독자들은 어렵지도 난해하지도 않은 그의 작품을 통해 인생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자문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누구나 어떻게든 일상을 버텨내려는 챈들러의 삶이 허접한 인생이다고 질타할 수 없다. 그가 갤러허의 삶을 부러워한다고 이 또한 비난하지 못한다.

어떤 삶을 사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 그것은 독자 개인이 판단할 일이다. 그러니 아는 누군가가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존중해주자.

운명에 묶여 발버둥 치지만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첸들러 같은 숱한 인간 군상들에게도 박수를 쳐주자.

운명과 맞서 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성공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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