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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3 15:38 (화)
삼촌은 좋은 사람이니 믿고 의지하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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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은 좋은 사람이니 믿고 의지하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5.09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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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층 창가에서 점례는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을 보았다. 느긋한 사람도 있고 서두르는 사람도 있었다. 할 일 없이 나무 그늘에 앉아 노닥이는 사람들은 나이든 노인들이었다.

반쯤 열려진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고 조선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선에 온 것이다. 살아서는 밟지 못할 조선 땅에 점례는 서 있었다. 뒤돌아 보면 모든 것이 극적인 순간이 아닌 적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유지를 만난 것은 그녀에게 어떤 운명적인 것이었고 지금을 유지하는 존재이유였다. 다른 것은 다 잊고 벗어날 수 있어도 유지와 연관된 끈 만큼은 자신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다고 점례는 생각했다.

나의 삶은 평생 유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유지. 그녀는 유지와 재회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밑그림을 그릴 때도 물감을 짤 때도 붓에 그것을 바를 때도 유지는 거기에 있었다.

그가 와야 한다. 살아서 와야 그녀도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림도 삶도 모두 그의 것에 속해 있다.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그렇게 되기를 점례는 매일 밤 기도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보고 기억하는 모든 것을 동원해 유지의 무사 안녕을 기원했다. 엄마가 했던 것처럼 장독대에 냉수를 떠놓고 손을 마주 잡고 빌었고 염주를 손에 잡고 하느님을 찾았다.

어떤 때는 인자한 부처님을 눈앞에 두고 유지가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손발이 닿도록 빌고 또 빌었다.

그런 다음에는 정신을 차리고 화구 앞으로 갔다. 그에게서 배운 삽화를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그렸고 물감을 칠했고 마르면 덧칠했다. 이 모든 것은 성스러운 것이었고 마치 접골 아주머니의 굿처럼 신명 나는 일이었다.

삼촌은 점례의 그림에 대해 처음에는 아무런 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명 화가들의 도판이 새겨진 커다란 책자 하나를 들이밀었다.

보고 공부하라는 뜻이었다. 점례는 책장을 넘기며 본 적이 있는 그림이 나오면 미소 지었고 처음 보는 그림은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많았다.

인상적인 그림도 있었다. 그녀가 배울만한 작품을 점찍고 그녀는 그리기 전이나 그린 다음에 여러번 되풀이해서 보았다. 어떤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그림에 대한 설명도 외우다시피할 정도로 자꾸 읽고 또 읽었다.

삼촌이 준 것이니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좋은 기회였다. 실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것은 유지에 대한 예의였다.

자신을 알아봐준 유지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는다면 지원을 받을 때도 삼촌에게 덜 미안할 것이다. 받은 것의 열 배 이상으로 갚아주고 싶었다.

친절한 삼촌은 점례를 위한다기보다는 유지를 생각해서 자신을 대하고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내용에 대해 유지가 삼촌에게 편지를 썼는지 알 수 없다.

과거의 자신이 어떤 여자였는지 삼촌은 지금까지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과거의 점례가 아닌 현재의 점례만이 삼촌에게 각인돼 있었다.

점례는 그림 한 점 한 점 마다 자신의 느낌을 글로 썼다. 좋은 점과 나쁜점은 물론 총평이라고 할 수 있는 받았던 인상을 자신만의 필체로 써 나갔다.

그러다 보니 33점에 대한 그림의 평가가 작은 책 한 권 정도 분량에 다다랐다. 어느 날 화랑에서 돌아온 삼촌이 가끔 보던 늙은 화상과 그림값을 놓고 흥정을 벌이다 실패했는지 낭패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앉아있었다.

점례는 그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알았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쓴 일기 비슷한 공책을 삼촌에게 전했다. 그러면서 이미 여러차례 언급한 도판에 대한 감사함을 표했다.

처음에는 시끈둥한 표정을 짓던 삼촌은 두꺼운 노트에 빼곡한 글씨를 보고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용은 둘째치고 그 방대한 양에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눈앞에 닥치자 뭐 이런일이, 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 틈을 이용해 점례는 자신이 느낀 감상평인데 형편없다면서 잘못된 것이 있다면 지적해 달라고 겸손을 떨었다. 삼촌은 미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고르는 사이 점례는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그림에 대해 말을 했다.

이미 글로 적혀 있었지만 말로 한 번 더 설명을 해주는 친절을 베풀고 싶었고 말은 글과 또다른 의미가 있었다. 글도 잘 썼지만 점례는 말을 품위있게 하는 방법을 알았다.

구사하는 단어도 적절하고 아무나 쓸 수 없는 고상한 표현을 빌려오기도 했다. 삼촌은 유지가 네게 빠진 이유를 알겠다며 방금전의 실망하고 난처한 기분을 완전히 떨쳐 버렸다는 듯히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그 역시 점례를 이용해 화랑을 키우고 싶다는 속내를 들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그런 욕심이 있었다. 그림과 글이 동시에 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글이 되면 그림이 안 되고 그림이 되면 글이 안됐다.

신은 공평해서 한 사람에게 두 가지 재주를 다 주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점례는 예외였다. 그림도 그렇고 글도 그랬다. 더구나 말까지 조리있고 상대를 이해시키는 힘이 있었다.

삼촌은 점례에게 너도 여기와서 앉으라고 하고는 그 자리에서 몇 장을 내쳐 읽었다. 그리고는 이 정도 솜씨라면 잡지에 기고해도 되겠다면서 아는 기자를 당장 불러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점례는 사양했다. 아직 그럴 정도는 아니고 우선 개인전을 한 번 열고 싶다는 소망을 넌지시 밝혔다. 겸손하게 거절하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조선에 온지 8개월 후였다. 그 사이 점례는 30여점의 유화와 그 보다 배는 많은 삽화를 그려 놓고 있었다.

삼촌은 틈틈이 그녀의 작업 상황을 지켜봤다. 그때마다 그 역시 그녀에게 개인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했다. 그럴 수준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여겼는데 점례의 입에서 직접 그 소리를 듣고 나자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내친김에 그러자고 화답했다. 점례는 그날 저녁 유지에게 편지를 썼다. 유지 호사카는 그 전의 편지에 아직 답장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쓰고 있는 이 편지가 그가 있는 곳으로 정확히 도착할지 알 수 없었다. 이미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갔거나 그곳 상황이 나빠져 편지마저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3개월 전 유지는 세장의 편지에 그곳 전황과 자신의 위치 그리고 점례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 1장씩 할애해서 썼다. 우리가 이기고 있다. 적들은 크게 패했다. 이제 승리의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는 것이 첫 장에 있었다.

둘째장은 태평양의 어느 섬에 관한 내용이었다. 섬은 더웠다. 너무 더워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찰 정도다. 그러나 경치는 그보다 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편지는 중간 정도에서 멈췄다.

그리고 나머지는 야자수와 그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본군 병사, 꼬리치고 있는 점박이 개 두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마지막 장은 보고 싶다며 점례의 안위를 걱정하는 글이었다. 그리고 추신으로 삼촌은 좋은 사람이니 믿고 의지하라는 당부의 글로 끝을 맺었다.

다 읽고 나서 점례는 눈물을 흘렸다. 좋아서 흘리는 눈물은 그녀에게 삶의 충만과 애정을 한 가득 품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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