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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0-06 18:20 (목)
생사는 빠르거나 느린 몸놀림에 달려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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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는 빠르거나 느린 몸놀림에 달려 있지 않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4.22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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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종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까부는 신호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병사는 움직일 수 있는 두 손을 이용해 수통을 마구 쳤다.

빈 수통은 수레처럼 요란했다. 댕댕댕댕, 오늘따라 종소리가 유난히 잦다. 그것은 성당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빠르기와 박자가 엇비슷했다.

신부님인가. 용희는 잠시 생각했다. 아니다. 무량사 절집의 노스님일지도 모른다. 혼란한 순간에도 그녀는 종을 치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소리는 다른 곳에서도 들렸다. 손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개였다. 이곳저곳에서 수통이 딸그락거렸다. 마실 물은 없다. 채워야 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접골 아주머니라면 이때 입에 문 물을 뿜어 댈 수 있을 것이다. 작두를 탈 때면 아주머니는 언제나 입으로 물을 사방으로 품었다. 물 부족 때문에 귀신이 들린 것처럼 비었다 싶으면 채웠고 채운 것은 급히 뱉어냈다.

나중에는 바닥에 물이 장마철에 지붕이 샌 것처럼 흥건했다. 용희도 물벼락을 여러 차례 맞았다. 처음에는 싫은 느낌이었지만 옷이 젖고 얼굴에 흘러내릴 정도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아주머니가 필요하다. 신부님이나 스님은 어렵다. 그녀라면 수통을 두드리는 소리에 반응할 것이다. 맨발로 달려나가 일그러진 얼굴에 장난감 물총처럼 입에 물을 가득 채운 후 냅다 발사할 것이다.

어느 순간 손들은 더이상 빈 수통을 두드리지 않는다. 갈증은 해소됐는가. 용희는 자신이 아주머니가 된 것처럼 맨 처음 신호를 보낸 손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물을 뿌렸다. 이제 됐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끝은 없었다. 반복되는 일이 또 반복됐다. 그렇다.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세운 계획이 마무리된 것도 아니다.

여기 있는 모든 유한한 것이 무한해 질때까지 용희는 그래야 했다. 쏟아지는 피를 막기 위해 병사의 옷을 찢었다. 그 와중에도 살이 드러나면 부끄러운지 병사는 고개를 돌렸다.

부러진 팔에는 개가 물고 다니다 버린 막대기를 댔다. 제대로 된 부목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한숨 돌렸다 싶으면 죽었다 싶었던 사람이 다시 우악스럽게 용희를 낚아챘다.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그 자리를 떠나야 옳았다.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시체를 지켜 위해서라기보다는 움직일 수있는 힘이 없었다. 용희 역시 그들과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왜 눈까지 감아 주고 나름대로 성호까지 그어 주었는데 다시 이승을 헤매고 있을까.

앳된 병사에게 필요한 것이 더 있을까. 용희는 무량사 스님을 불러와 염불을 외고 아주머니와 함께 굿을 했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숨이 끊어지지 않고 거칠게 내뱉고 있다.

용희는 최선을 다해 사과했다. 산자에게 죽은자에게나 할 법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잘못을 빌었다. 그래 넌 죽지 않고 살아있다.

죽지 않은 사람에 대해 기도하는 법을 배운 것도 아닌데 용희는 성급한 자신의 태도를 나무랐다. 가보고 싶지 않은 어두운 곳으로 가라고 등떠민 것은 두고두고 후회해도 모자랐다.

이제 용희는 자신이 수통을 두드리는 꼴이 됐다. 물이 필요하다. 그녀는 기다렸다.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났는데도 도망칠 방법이 없다. 단 한시간 만이라도 그녀는 자신을 이겨내고 싶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달린 문제라고 용희는 생각했다. 두려울 것은 없었다. 다만 없는 것은 힘이었다. 그녀 자신은 이제 손톱 하나 움직일 기운이 없었다.

손이 아무리 용을 쓰면서 까불어도 그녀는 눈을 뜨고 그것을 볼 수 없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보인 것이 다 진실일까.

세상은 꽉 막혀 있었다. 한 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용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일이다. 지금은 아니다.

산속의 말수는 하산했다. 그곳이 되레 더 위험했다. 고지를 차지하려는 자들이 서로 경쟁을 벌였다. 저녁에는 이곳의 주인이 바뀔 것이다. 동굴 속도 안전하지 않다.

말수는 용희를 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양심에도 그것이 옳았다. 하산의 이유로도 적합했다. 내가 살기보다는 용희를 살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것이 자신을 지켜 줄 것이다. 말수는 여러차례 그것을 경험했다.

돌아서도 되는데 내버려 두지 않고 부상병을 돌봤다. 살기 위해 돌아섰던 자는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죽었다. 조준 사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목숨이 끊어졌다. 목숨은 순전히 운에 달렸다.

그래서 자신이 살기보다는 용희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아래를 향해 무작정 달렸다. 아직은 선택 할 수 있다. 이것은 거래가 아니다. 순전히 운이다.

그 때 자신이 방금 전에 있던 위쪽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말수는 이번에도 간발의 차로 죽음을 피했다. 그럴 수 있을 때 해야 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에 말수는 또한번 무릎을 쳤다.

그래서 이번에는 달리기를 멈췄다.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걷는 속도로 내려왔다. 생사는 빠르거나 느린 몸놀림에 달려 있지 않았다. 말수는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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