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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춤을 추는 모습을 달이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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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춤을 추는 모습을 달이 지켜보고 있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4.04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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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희미한 불빛 아래서 연필을 잡았다. 그리고는 엽서 크기만한 작은 크기의 노트를 펼치고 초상화를 그려 나갔다.

어차피 어두워서 그리려고 했던 대상이 틀렸어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점례는 마음이 편했다. 날이 밝으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면서 점례는 잡은 연필을 천천히 놀렸다. 

그녀는 유지 호사카 부모의 얼굴 형태를 떠올렸다. 사진으로 수도 없이 보았던 인자하게 웃던 두 분의 다정한 모습. 그 순간 휴의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조선 청년의 얼굴이 감깐 보였으나 이미 그는 그녀의 의식 속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그러나 그림은 금방 중단됐다. 그럴 마음이 갑자기 떠났다. 더 그리고 싶은 조금 남은 미련은 뒤로 미뤘다. 갑자기 유지 부모님께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신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었다. 유지 부모가 지금 순간 신이었고 그녀는 아들을 위해 신이 힘을 모아달라고 간절한 염원을 담아 두 손을 모았다.

'유지 호사카를 살려 주세요.'

총알이 비켜가고 파편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그래서 유지가 온전한 몸으로 자신에게 와야 한다. 그녀는 모은 손을 꼭 잡았다. 신의 기도는 어느 새 다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잠시 후 기도와 다짐도 시들해 졌다. 점례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않고 눈을 감았다.

점례가 신의주 역에서 본 것은 동휴가 맞았다. 그는 점례와 용희가 떠나고 나서 순사가 됐다.

순사의 하인 역할을 하던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순사가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좋았고 특히 자신이 보기에 그랬다.

누군가를 잡아들이고 심문하는 것이 체질에 맞았다. 호통을 치고 위세를 부리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동휴는 순사 일을 제대로 해내기 시작했다.

서에서는 제일 가는 하급자여서 굳은일을 도맡아 담당했다. 밖에 나와서는 호랑이 두렵지 않을 기세로 안과 밖이 다른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죽마을에서는 경사났다며 잔치를 벌였다. 동휴가 막아 줄 것은 막아주고 도움 주는 일을 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차츰 그도 다른 일본인 순사와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

저주하더 마을사람들은 나중에는 동정하고 이해했다. 조선인이 일본인들 틈에서 버티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수군거렸다.

그 무렵 읍내는 연일 출병을 모집하고 독려하는 연설로 시끌벅적했다. 휴의도 장터 한 곳에서 서 있었다.

전날 동휴가 한 너도 입대해라, 황국신민으로 전선에 나가 승리에 보탬이 되라는 말이 귓가를 울렸다. 가족의 생계 때문에, 자신이 떠나면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농사지을 인력이 없어 머뭇거리던 휴의는 동휴의 이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또래들은 하나 둘씩 전선으로 갔고 읍내에 남아 있는 청년들은 몇 사람 되지 않았다. 휴의는 막차라도 타야 한다는 심정으로 연단에 오른 백발노인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소학교 때 교장이었고 지금은 은퇴해 후학들에게 책 대신, 쟁기질 대신에 총을 잡으라고 독려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심장을 끊게 했고 젊은 피를 뜨겁게 달궜다. 구경하기 위해 모인 군중들이 모두 마음에 드는 사람인 것처럼 교장은 애정이 듬뿍 담긴 어조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마을지주도 연단에 올랐다. 그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애국이라며 자신이 몇 년만 젊었어도 이 자리에 있지 않고 총을 들고 적과 싸우고 있을 거라며 탁자를 두드렸다. 워낙 큰 소리에 장터의 소음이 일순 가라 앉았다.

귀를 기울이지 않고 딴청을 부리는 것은 죄가 된다는 듯이 서로에게 주의를 주면서 한 소리라도 놓치지 말겠다는 숙연함이 군중 사이를 감싸고 돌았다.

지주는 조선의 애국청년들이여, 황국 신민의 역할을 다하라. 지금은 농사짓는 때가 아니다. 책을 들고 허송세월을 보낸다면 조국은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어디서 주어 들었는지 아니면 누가 대신 써준 것인지 그는 애국과 황국 신민을 강조하면서 싸우러 나가자, 지금이 적기다 라면서 또한번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사람들이 박수로 화답했다.환호성을 질렀다. 다 옳은 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딱 들어 맞는 말이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휴의는 그래야 하고 더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주는 연설 막바지에서 자발적으로 영예롭게 가지 않으면 나중에 강제로 끌려 갈 수 있다는 식으로 협박했다.

네 다리로 기어 갈 수만 있다면 성한 남자라며 당장 전선으로 가라, 꾸물대지 말고 달려가라고 재촉했다. 휴의가 빠져 나갈 구멍은 없었다. 그는 결심한 것을 털어 놓으려는 듯 얼굴을 굳히고 두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휴의는 그날 저녁 동휴와 마주 앉았다. 한 시간을 서 앞에서 기다린 끝에 성사된 만남이었다. 동휴는 휴의를 보고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바빠 너를 만날 수 없는데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느냐는 식이었다.

변해가는 동휴에 휴의는 그가 예전의 동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제는 남보다 못한 친구가 됐다고 자신도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이미 순사 채용에서 동휴가 자신 대신 다른 사람을 추천한 것을 알고는 휴의는 친구가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직은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순사가 된 이후 동휴는 부족한 순사 인원을 충원하기 위해 재목감을 추천하라는 상부 지시를 받고 휴의 대신 다른이를 뽑도록 했다.

그 사실을 알고는 휴의는 한동안 동휴를 미워했다. 나중에는 자신의 부족함을 탓했지 동휴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의 선택이 옳았고 나은 사람이 순사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런 일 이후로 동휴는 만나는 것도 피하고 어쩌다 만나서도 거드름을 피웠다.

이제 너와는 다른 나라는 거만함이 얼굴 가득 묻어났다. 순사와 농군이 같을 수가 없다. 언제든지 동휴는 이유없이 동휴를 체포할 수 있다.

그리고 차고 있는 권총으로 죽일 수도 있다. 네 생명은 내 손안에 있다는 식의 동휴 태도에 휴의는 절망했다. 도피처는 전쟁터 밖에 없었다.

아직도 결정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태도에 불만을 품었던 동휴는 다짜고짜 휴의를 몰아세웠다. 어쩌자고 너만 이러고 있니, 그러고도 네가 내 친구냐고 닦달했다.

그가 친구를 들먹였다. 서에서 챙피해 죽겠다. 너 때문에 내가 순사질에 지장을 받는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너무 심했다고 느꼈는지 달래는 투로 농사는 어떻게 될 것이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니. 아무렴 내가 네 집 식구하나 건사하지 못하겠니. 간혹 살펴 주마.

그는 친구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베푼다는 듯이 떠벌였다. 옆구리에 찬 칼집을 만지작 거리며 그는 당장 내일이라고 여기를 벗어나라고 위협했다.

‘언제가지 빈둥 거리고 있을래.’

그는 날이 선 제복의 어깨선을 따라 내려오면서 흘낏 친구를 노려봤다. 이래도 네가 내 말을 들지 않고 배길 것이냐 하는 노골적인 경고였다.

빈둥거린다는 말에 휴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맞다. 자신은 빈둥거리고 있다. 그는 눈을 들어 동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을 순순히 따르겠다는 동의의 표시였다.

동휴는 알았다는 듯이 내일 서에 가서 네가 자진 입대하겠다고 그것도 최전선으로 가겠다고 보고 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설득해서 그를 끌어 들였고 그것이 순사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보증으로 보여지기를 동휴는 바랐다. 조국을 위해 애쓰는 나와는 다른 동휴가 부러웠다. 신민된 처지에 대일본 제국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그는 이미 친구 이상의 그 무엇이 되어 있었다.

그 옆에 나란히 서서 서로에게 자랑 거리가 돼고 싶다는 계획은 틀어졌다. 휴의는 처음으로 술에 취했다. 그 김에 그는 용희와 점례의 소식을 아느냐고 동휴에게 물었다. 꾹 참았던 하려고 했던 말이었다.

정보에 빠른 너라면 그들이 일본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않느냐고 아는 것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다. 벌써 일년 째 그녀들은 편지 한 장 없어 부모는 속을 태우고 있었고 그것을 동휴가 모를리 없었다.

어쩌다 발 발굽 소리가 나면 그들은 먼발치에서 보고 버선발로 쫓아와 우리 점례 소식 아는가, 용희 소식 들었는가 하고 동휴에게 매달렸다.

동휴는 노친네들이 망령 들렸다는 듯이 깔보는 표정을 지으면서 차마 하대는 하지 못하고 잘 있겠죠 라는 간단한 대답을 한 후 매몰차게 그들을 따돌렸다.

동휴의 눈에는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하는 그들이 불쌍하기보다 한심스럽게 보였다. 설사 잘못됐다고 해도 그것이 다 신민의 역할을 하다 그런 것인데 그것 하나 참지 못하는 소심함을 질타했다.

애국심 같은 건 하나도 없는 촌사람들이라고 동휴는 그들을 무시했다.

‘나도 몰라. 잘 있겠지.’

동휴는 남의 일처럼 지나가듯이 말했다. 휴의는 주먹질이라도하고 싶었다. 네 놈이 끌고 가서는 뒤도 봐주지 않고 생사 조차 알려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신을 내려 놓았기 때문에 생각은 전선에 가 있었다.

휴의는 보란 듯이 싸우고 싶었다. 그래서 전과를 올리고 훌륭한 군인이 돼서 훈장을 달고 금의환양해 동휴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는 굳힌 결심을 확고히 하기 위해 혀를 가볍게 깨물었다.

너보다 나은 내가 돼서 돌아오리라. 다른 사람의 방식이 아닌 내 나름의 방식으로 이기겠다는 각오가 휴의의 마음을 불살랐다.

신민 가운데 우뚝 서고 싶은 젊은 피는 조국을 위해 끊어올랐다. 청년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그러기에 충분한 나이였다. 가장 앞서 나가고 가장 먼저 승리의 깃발을 꼽겠다는 각오로 휴의는 술집을 박차고 나왔다.

더 있다가는 속마음을 들킬 것 같았다. 괜히 털어 놓았다고 질책했다. 말없이 갔어도 됐는데 무슨 미련이 남아서 동휴에게 추태를 부렸는지 모른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점례와 용희의 안부를 물은 것은 실수였다.

‘그래 너는 순사로 성공해라. 난 군인의 길을 간다.’

휴의는 그 말을 남기고 장터를 벗어나 집으로 향했다. 여기서 죽마을까지는 대략 시오리가 조금 넘었다. 휴의는 한 시간 정도 걷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이곳에는 인가가 없다. 깊은 골의 초입에는 대신 묘 두 개가 나란히 섰다. 길 옆에 있어 오고 가던 사람들은 눈 짓이나 손 짓으로 늘 쌍묘라고 불렀다.

이 곳을 지났느냐로 장터가 가까워지고 집으로 가는 길의 시작점 정도로 여겼으므로 대화를 할 때면 쌍묘가 기준이 되기도 했다.

쌍묘를 벗어나면 장터가 멀리서 아른거렸다. 반대쪽에서 보면 가파른 길이 겨우 한 사람 지나갈 정도로 나 있었다. 길에 접어 들면서 휴의는 조금 비틀거렸다.

일부러 넘어지려는 흉내를 내 보이기 까지 했다. 그런데 정말로 몸이 쌍묘 쪽으로 쓰러졌다. 술취한 사람들처럼 그대로 폭싹 가라앉고 싶었는데 생각대로 그대로 됐다.

오월의 흙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적당했다. 언제나 손질이 잘 된 쌍묘의 표면에 잔디가 자라고 있었다. 살갛에 닿아도 아프지 않은 것이 막 나온 연한 새싹이었다.

새싹은 보드랍게 꺾였고 쓰러진 자리에서는 풀 냄새를 풍겼다. 그는 쓰러진 채로 한 동안 멍히 있었다.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쌍묘 앞을 저녁에 지날 때면 죽은 귀신이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늘한 기운은 그래서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죽은 자의 원혼이 왜 방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거기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고갯마루 까지 와서야 쉬었다. 지게에 무거운 짐을 진 농군들도 그렇게 했다. 힘든 것보다 귀신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의는 그런 것을 믿지 않았다. 죽은 귀신이 산 귀신을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다 말 뿐이라는 것을 알만큼 그는 성숙해 있었다.

대신 그는 쌍묘의 자손들이 참으로 효자구나 생각했다. 언제나 다듬어져 있는 묘가 보기 좋았다.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열심히 샀았고 그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있었다.

서늘한 기운은 커녕 따뜻하게 몸을 감싸고 도는 것이 억울하게 죽은 원혼의 망령이 아니라 곱게 살다 제명에 죽은 혼백이 산 사람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면 효의는 자신은 어떤 자식이 되고 싶은지 궁금했다.  궁금한 것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 다는 사실 뿐이었다.

자칫 두 번 다시 쌍묘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희미한 달빛이 동쪽에서 떠오르기 시작해 산정을 어스푸레 하게 밝히고 있었다.

동휴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자신의 운명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그려 보았다. 훈장을 달고 당당하게 문 간으로 들어 서기도 했고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도 떠올랐다.

아예 죽어서 누군가가 흙으로 자신을 덮고 있기도 했다. 어떤 때는 똑 자신과 같기도 했고 어떤 때는 엇비슷하지도 않은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사라졌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어 가자. 지금 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하면서 산다. 순사 못됐으나 군인은 될 수 있다. 어떤 것이든 그것은 자신의 운명이고 닥쳐올 것은 닥쳐 오기 때문에 피할 수 없었다.

달을 벗 삼아 언덕을 오르기 위해 휴의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군인처럼 딱 소리가 나게 손을 이마에 갖다 붙였다.

'지금 부터 나는 멋진 군인이다.'

일 킬로 정도 산길을 타면 고개에 닿고 다시 그 정도 내렸갔다가 그보다 작은 산을 한 개 더 넘어야 한다. 서두르지 않았다.

급할 것도 없었다. 술이라는 것은 이렇게 좋구나. 휴의는 그러나 털고 일어나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는 비적 비적 일어났다. 

경례 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발 길을 서너 발 떼고 나서 휴의는 무슨 생각에서 인지 다시 무덤가로 갔다. 그리고 무덤의 주인이 부모인양 두 번 절을 하고는 걷기 시작했다.

‘잘 있거라 쌍묘야. 나는 간다, 전쟁터로.’

그는 이렇게 흥얼거렸다. 기분이 좋았고 그런 기분으로 입대하면 부상당하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올 것 같았다.

어깨춤을 추는 모습을 달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달은 그의 안전까지는 책임질 수 없다는 듯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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