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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강인하지만 선한 눈빛을 타고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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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강인하지만 선한 눈빛을 타고 났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4.01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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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지지 않아 어떻게 된 일이냐고 점례에게 묻는 듯한 눈에는 당황과 존경 어린 눈빛이 교차했다.

소란은 멈췄다. 그러나 다시 이어졌다. 아까와는 다른 내용으로 열차 안은 웅성거렸다. 서로를 쳐다보며 네가 테러범이냐고 의심의 눈길을 던졌다.

그러고는 또 잠시 조용해졌다. 기차는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출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출발이 지연되자 청년은 다시 불안해 졌다.

그러나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데는 도움이 됐다. 그는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적당한 말을 고르기 위해 잠시 망설였다.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던 당찬 여자 앞에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왔던 여자의 이미지가 깡그리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보다 결코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은 소녀의 단단한 심장에 주눅이 들었다. 이국만리에서 자신도 어느 정도 맷집이 있다고 여겼는데 오늘은 초라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고맙다고 둘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말했다. 망설일수록 다가가기가 더 어려워 질 것을 염려한 때문이었다.

점례는 살짝 웃는 것으로 화답했다. 좋은 물건을 싼 값에 샀을 때 느끼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그것으로 됐으니 그만하라는 식으로 딴청을 부렸다.

청년을 위해 무언가 했다는 자부심이 여자의 가슴을 벅차 오르게 했기 때문에 그대로 있기가 거북스러워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이런 일 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 책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청년은 그녀가 자신의 삶 속에 들어와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직감했다. 바람 부는 들판의 불꽃처럼 그의 눈길이 그녀를 따라갔다.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그녀에게서 힘이 느껴졌다. 반짝이는 까만 두 눈과 그보다 더 진한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 주위를 늘어진 버드나무처럼 장식하고 있었다.

청년은 온 몸의 뼈가 줄기처럼 곧추서는 것을 느꼈다. 진정으로 살아사 숨쉬고 있었다. 어려운 문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주는 충만한 생명력 때문이었다.

자신의 영혼이 창공의 별처럼 높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늘의 끝에 그녀가 있었고 그래서 그녀를 만났기 때문에 청년은 자신의 운명도 거기에 맞춰질 것을 예감했다.

그러다가 너무 성급하게 나간 것을 알고는 잠시 부끄러워 눈을 감았다. 청년은 생각했다. 오늘 같은 날은 평생 두 번 찾아 오지 않는다고. 생명을 건지는 기적 같은 것은 결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눈을 뜬 채로 가벼운 한 숨을 내쉬었다. 검문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과 정보가 사전에 새 나간 것은 모두 자기 책임이라도 되는 듯이 자책했다.

밤을 세운 계획이 아침에 탄로난다면 그것을 계획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심하지 못한 자신은 이런 일을 할 자격이 없었다.

바보 노릇은 오늘 하루로 충분했다. 자기 한 몸 알아서 챙기지 못했다. 그가 한탄으로 마음을 괴롭게 하고 있을 때 그녀는 청년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세상은 넓고 하는 일은 많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중이지만 아직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휴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데 그는 왜 조선땅에 있지 않고 만주에서 사는지 이상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강인하지만 선한 눈빛은 타고나기를 악한 것과는 멀리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누구라도 때려 눕힐 듯이 달려들던 헌병과는 사뭇 달랐다. 상대에게 고통을 줘서 즐기는 자가 아니었다. 점례는 인간을 두 조각으로 갈라 놓고 청년의 앞날을 걱정했다. 오지랖 넓은 행동이었다.

벌써 한 시간 째 열차는 기침환자처럼 쿨럭 쿨럭 거리는 소리만 간혹 울릴 뿐 가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떠나지 못하면 못한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객차안은 심란한 분위기가 가득찼다.

내용을 알고 있는 기관사는 발빠른 사람이 아니었다. 승객을 알뜰히 챙겨주는 타입도 아니어서 상부로부터 오늘 기차는 역에 대기한다는 전달을 받고도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가 부하에게만 알리고는 자신은 용변이 급해 먼저 하차했다.

그런데 부역장은 아침에 부인과 다투고 나서 화가난 상태였으므로 화해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궁리중이었다. 그래서 승객은 사실 안중에 없었다.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고의성이 다분했다. 그러다가 그도 용변이 급해 밖으로 나왔고 점심을 기장과 함께 하면서 그제서야 역장에게 보고했다.

역장은 승객은 지금 아무것도 모른다는 부하의 보고를 받고도 나무라지 않았다. 인내심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그런다고 해서 자신에게 손해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두 세시간 더 기다린 승객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안 기차안 사람들은 서로 삿대질 하면서 화를 냈으나 정작 화를 내야 할 사람앞에서는 아무 소리 못하고 각자 흩어졌다.

점례는 내 몸이 많이 피곤해 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기차에서 내렸을 때 어디서 쉬어야 할지 걱정됐다.

예정에 없는 사고로 일정이 틀어지자 점례는 갑자기 길을 잃은 아이처럼 역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조선 청년이 다가왔다.

그는 사정이 점례와는 달랐다. 청년은 자신이 여기서 삼십 분 쯤 떨어진 거리에 거처가 있으니 거기서 쉬었다가 내일 기차를 타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아무 생각없이 함부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빚진 것을 갚는다는 투로 청년의 얼굴은 갑자기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기차 안과는 달리 전세가 바뀐 것을 알고 점례는 그 호의를 받아야 할지 거절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았다.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오자 점레는 어쩌면 이것은 또다른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의 관계는 유지 호사카와 그랬던 것처럼 위험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해 점례는 거부하기 보다는 운에 맡기기로 했다.

‘나, 나쁜 사람 아닙니다.’

망설이는 것으로 보아 혹시 자신의 제의를 거절 할 까 두려웠던 청년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을 드리고 싶고요.’

점례는 일어섰다. 따라가겠다는 의사를 말보다 먼저 몸이 답한 것이다. 그러나 점례는 그가 하는 조선말이 거슬렸다.

일경이 쫙 깔린 역 구내에서 조선말은 생소했고 낯선 것은 경계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서로의 안전을 위해 일본어를 쓰자고 제의했다.

청년은 머리를 극적이며 하도 반가워서 그랬다, 나도 모르게 뛰어나왔다면서 그런 지적에 감사함을 표했다.

자신보다 섬세하고 조심성 있는 그녀에게 청년은 오빠가 아닌 동생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녀에게 무언가를 했다는 만족감을 느꼈다.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을 생각지 않고 위험을 걸고 자신을 살려준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을 할 수 있어 청년은 좋았다.

그는 점례에서 경성의 주소를 적어 주었다. 어려울 때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는데 그 말을 하면서 청년은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것으로는 자신을 구해준 것에는 턱 없이 못미친다는 투였다. 점례는 그만하면 됐다는 뜻으로 가볍게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다음날 기차는 예정대로 출발했다. 비록 시간은 지체됐지만 어제처럼 불발되지 않았다. 청년은 타지 않았다.

점례는 책 대신 청년을 생각하느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드넓은 만주 벌판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녀는 그가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무모한 도전을 그쯤에서 멈추고 편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아직 어리고 수줍고 해야 할 일은 많은 청년은 자신의 목숨을 빨리 마치기 위해 안달하고 있었다. 그것은 점례가 보기에 어리석은 일이었다.

많은 것을 잃은 점례는 청년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점례는 청년인지 자신에게 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청년이 준 종이를 펼쳐 보았다. 경성의 주소지였다. 두 개의 주소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적어도 경성에 내리면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 점례는 책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가난한 고흐가 열정을 바친 그림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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