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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2-09 18:50 (금)
그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웠고 말수는 거기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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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웠고 말수는 거기서 멈췄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3.23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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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에서 간호사를 부르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장터 같은 소란이 일었다. 비명과 울부짖음. 그것은 해변의 파도처럼 갑자기 밀려왔다. 물건을 사라고, 내 것이 싸고 좋다고 고함치는 소리였다.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그쪽으로 쏠렸다.

이곳은 죽마을의 오 일 장날이다, 용희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장날을 늘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죽마을 아이뿐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공연히 손가락을 꼽으면 그날을 기다렸다.

장돌뱅이여서가 아니다. 구경거리가 있는 날을 놓쳐서는 안 된다. 노동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는 유일한 길이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한 시간 이상 운 결과로 호떡을 먹을 때 용희는 행복했다. 그 순간

더 큰 비명이 귀를 울렸다. 용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용희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상처가 심하지 않은 조선인을 뒤로 두고 일본인에게 달려갔다.

팔은 부러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쪼개지고 갈라져 너덜거렸다. 어깨에 붙어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절단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팔 뿐이 아니었다. 다리 쪽에서도 피가 비처럼 흘러내렸다. 손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 정도 상처면 살기 어렵다.

용희는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병사의 눈을 쳐다봤다. 얼굴은 의외로 말끔했다. 파편이 팔을 치고 다리 쪽으로 내려간 결과였다. 어디서 한 번은 본 듯한 얼굴이다.

작은 몸, 가는 얼굴 그리고 그 얼굴 한편의 상처 자국. 누구더라.

용희는 상처를 헤집다 말고 화들짝 놀랐다. 바로 그녀가 막사로 처음 끌려온 날 처음 왔던 바로 그 사내였다. 그는 계급이 제법 있었다. 지금은 소대장으로 전투에 앞장서다 이 꼴이 됐다.

용희는 고개를 돌렸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른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그가 다치지 않은 손을 뻗어 용희를 잡으려고 했다. 입은 무슨 말을 하려고 달싹거렸다.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용희는 입가에 나온 피를 씻어 주었다. 그때 소대장의 얼굴에 얇은 미소인지 비웃음인지가 슬쩍 스쳤다.

그도 그녀를 알아본 것이다. 용희는 부끄러웠다. 자신을 아프게 했던 그가 밉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죽을 운명이다. 허튼소리 할 시간이 없다는 듯 어렵게 입을 연 그가 말했다.

‘일본에 있는 엄마에게 편지를 썼어.’

그가 눈짓으로 윗주머니에 그것이 있으니 꺼내 달라는 시늉을 했다. 사진 한 장이었다. 가족이 모여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을 뒤집자 여백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그가 편지라고 말한 것이었다.

‘여기서 조선 여자를 만났는데 아주 예뻐. 전쟁이 끝나면 함께 살거야. 엄마, 그 여자를 내 아내로 맞아줘.’

전쟁터에서 소대장은 용희를 잊지 못하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이런 편지를 사진 뒤에 남겼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일본 주소를 적어 놓았다. 용희는 부끄러웠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난 사무라이야 한 번 한 약속은 지켜. 이 얼굴 상처가 그걸 증명해.’

그 말에는 건성으로 듣지 말라는 다짐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확인할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복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죽음 앞에서 태연 하려는 척했다. 자신을 억제할 수 없어 체면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죽음은 남의 것이었으나 이제 그는 주연으로 죽음을 맞고 있다. 고개를 들어 부서진 팔과 다리를 둘러보지 않아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소대장이 힘겹게 다시 무슨 말인가를 내뱉었다. 용희는 듣고 있었으나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대장의 얼굴이 납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피가 빠져나간 얼굴은 창백해 졌다.

용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의를 달지 않겠다는 표현인지 아닌지 소대장은 알 수 없었다.

그는 끄덕이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숨이 끊어진 그에게 용희는 동정의 손짓 대신 병균이 퍼지지 못하도록 시체를 어서 치우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을 했다. 머뭇거리던 그녀에게 의사가 다가왔다.

‘다른 곳으로 가봐. 죽은 사람에게 허비할 시간 없다.’ 의사가 팔꿈치로 그녀를 꾹 찔렀다.

의사는 정확했다. 그의 행동은 매정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먼저다. 용희는 고개를 들어 서쪽 바다를 내려다봤다.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석양이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소대장의 피보다 더 붉고 검었다.

일이 되려는지 필리핀행 호위함 승선은 예상보다 빨리 다가왔다.

이곳 일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위기에 몰린 일본군은 추가병력이 필요했다. 노무자는 물론 위안부도 부족했다. 병든 자가 아닌 튼튼하고 오래 버틸 수 있는 건장한 남자와 여자 모집을 위해 말수가 선발됐다.

처음에 그는 거절했다. 여기 일이 더 급하다는 이유였다. 그는 자신이 의사 말에 반대 의사를 한 것이 놀라운지 얼떨떨한 상태였다. 그러나 용기를 냈다. 그에게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의사는 자신의 뜻을 더 세게 밀어붙였다. 감히 조선인 주제에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것이 괘씸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의사 정신과 헌신이 고마웠다.

정식 교육을 받은 자신보다 더 의사 일에 적극적인 그를 의심하는 것은 가당치 않았다. 의사는 자신의 말이 부탁이 아닌 명령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말수는 이곳이 걱정되지만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아쉬운 태도를 취했다. 문제는 용희였다. 그녀와 같이 갈 마땅한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여자를 고르는 것은 자신이 자신 없다고 둘러대 봤으나 의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용희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거절했다. 의사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웠고 말수는 거기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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