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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0-02 15:58 (일)
웃음에도 냄새가 있다는 것을 점례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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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에도 냄새가 있다는 것을 점례는 알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3.16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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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례의 가슴은 뛰었다.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 보다 막사 밖에서 들려오는 군가의 두려움보다 탈출의 각오가 심장을 더 요동치게 만들었다.

한 달 걸려서 오고 석 달이 지났다. 너무 멀고 까마득한 시간이었다. 기적 같은 것이 일어날까. 자신을 고향 땅으로 실어나를 구름이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좋겠다.

멀미가 있다손 치더라도 참을 수 있다. 구름에서 하는 구역질이라면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

점례는 눈으로 문가를 쳐다봤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면.

그러나 한 번 뛰기 시작한 가슴은 여간해서는 멈추지 않았다. 좋다. 여기서 탈출한다손 치자. 그러면 그 이후는. 막사에서 보고 행한 것을 함께 가지고 갈 수 있을까.

맨손으로 왔다고 맨손으로 가는 것이 가능할까. 놓고 갈 것과 가지고 갈 것은 어떻게 하나. 점례는 또 다른 낙담 앞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고향은 여기 일을 모른다. 종일 낙원을 뛰어다녔는지 공장에서 예쁜 신을 만들었는지 지옥 불에서 허우적거렸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웬일인지 마음은 어느 새 죽마을 대나무 밭에 와 있었다.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은 엄마도 아버지도 아니었다. 휴의였다. 그런데 휴의는 반가운 표정보다는 걱정스런 눈초리로 이렇게 물었다.

’웃음 파는 일이 즐겁더냐.‘

점례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려 달렸다. 말하지 않아도 몸에서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웃음에도 냄새가 있었다. 휴의는 따라오지 않았다. 점례는 눈물을 흘렸다. 고향땅도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다 버려야 한다. 그렇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자. 아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점례가 아닌 말순으로. 이것으로도 안된다. 남자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죽을 때까지 여기 있는 것이 낫다. 그러자 이곳 생활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교는 잘해준다. 언제까지 그럴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그러니 도망칠 생각은 말자. 그러다 잡히면 살지 못할 것이다. 죽음은 가까이 있었다.

체념하는 마음이 점례를 옥죄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했어도 만주로 가는 장교를 보면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기차역에 서성이는 모습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설마 휴의가 그렇게 물을까.

그녀는 고향에 가면 무엇이든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돈을 어떻게 벌고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 아니면 만주나 상해도 좋고 그도 아니면 구라파라도 못갈 이유가 없다.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심연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우러나오고 있다. 점례는 당황했으나 거쳐야 할 관문이니 이겨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흩어졌다. 혼란스러워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연병장의 부연 먼지처럼 뒤죽박죽된 것이 좀처럼 제자리를 차지 못했다.

심장의 뛰는 소리는 이제 귀에까지 들린다.

만주에서 그가 돌아왔다. 눈을 감고 두 손을 얌전히 내민 점례의 손에 무언가가 쥐어졌다. 처음에는 과자와 사탕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예쁜 종이에 쌓여 있는 것을 풀어 볼 때 점례는 웃었다.

장교가 눈짓을 주었다. 맛있으니 먹어보라고 했다. 점례는 자신이 먹기 전에 하나를 장교의 입에 넣어 주었다. 장교는 그것을 빼서 점례에게 도로 주었다. 점례는 부끄러웠다.

그러나 몸 속은 따뜻한 기운이 흘러 나왔다. 다음으로 장교가 준 것은 옷칠이 된 액자였다. 액자 속에는 양복을 입은 늙은 부부가 점잖은 모습으로 점례를 바라고 보고 있었다.

'그 따위 목각인형은 잊고 이제는 부모님을 섬겨. 너도 나처럼.'

장교는 이 말을 할 때 부하에게 하듯이 명령투의 강한 어조로 내뱉었다.

점례는 뜨끔했다. 인형의 존재를 그가 알고 있었다니. 점례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무언가를 들킨 것 같은 미묘한 표정을 장교는 놓치지 않았다. 서랍을 열고 그는 부서진 나무 쪼가리를 들고 왔다. 점례가 그 모르게 서랍의 한 쪽 구석에 둔 것이었다.

‘이건 이제 버려. 부서진 것을 왜 애지중지 하니.’

그가 말하고 나서 점례의 의견도 묻지 않고 밖으로 던졌다. 그것이 날아가는 모습이 슬쩍 보였다. 땅에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장교는 껄껄 웃었다. 간직하고 있던 소중한 것이 빠져나갔으나 점례는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그녀는 이번에는 사탕 하나를 얼른 입에 물었다.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깨어 물고는 아주 달다면서 장교를 쳐다봤다. 장교는 점례가 의식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체 한다고 여겼다. 그는 목각인형이 점례와 어떤 사연으로 얽혀 있는 것을 짐작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장교가 한 발 다가왔다. 그리고는 검지 손을 세워 점례의 눈 앞에 갔다 댔다. 상처가 아물었고 그것은 너 때문이니 고맙다는 표시였다.

점례는 미소 지었다. 웃음을 팔았느냐는 휴의의 질문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니 대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니라고 고개를 젓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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