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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0-02 15:58 (일)
자신은 그저 그들이 선택한 데로 움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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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그저 그들이 선택한 데로 움직일 뿐이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3.14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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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보니 점례는 자신이 내동댕이쳐졌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은 너무 조용했다. 개미 지나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포성도 멈추었고 군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것은 어떤 징조인가. 점례는 바닥에 손을 집고 허리를 세우려고 했다.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왔다. 잠깐 돌아왔던 의식이 다시 꺼졌다. 점례는 도로 쓰러졌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뜬 점례는 아직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상태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손 하나 움직이지 않고 죽은 듯이 곰을 만나 죽은 사람 시늉을 하듯이 그대로 있었다. 무사히 곰이 지나가야 한다.

그러나 허사였다. 곰은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자신의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물기도 했고 핥기도 했다.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꼼꼼하게 점검했다. 곰의 콧김이 훅하고 끼쳐왔다. 날 것 그대로 짐승의 냄새가 점례를 아프게 찔러왔다.

점례는 놀라 스스로 움칠거렸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몸의 움직임이 아니라 들이키는 숨소리였다. 곰은 점례의 배에 커다란 다리를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올려 논 앞발을 좌우로 흔들었다. 배가 출렁였다. 잠시 후 다리를 땅으로 내려놓은 곰은 주위를 한 참 맴돌았다. 그리고는 저쪽으로 엉금엉금 사라졌다.

그러나 완전히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점례는 살았다고 안도할 수 없었다. 무엇하나 내 영역인 것이 없었다. 죽음조차도 그랬다.

점례는 그것 역시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겼다. 대가를 치르고도 어떤 기쁨도 맛보지 못했을 때 느끼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이제 죽든 살든 게 의치 않고 싶었다.

그래서 점례는 다시 손을 바닥에 대고 몸을 일으켰다. 아까보다는 한결 나았다. 그 힘을 받아 점례는 문을 살짝열었다. 낮게 깔린 달이 안쪽을 들여다보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녁이었다. 아니 새벽인지도 몰랐다. 한순간 점례는 마치 달이 자신을 영접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를 받아 주는 것은 하늘뿐이었다.

꼬박 삼일을 고생한 후 점례는 몸을 추스렸다. 정신이 들었다고 여겼을 무렵 초소의 병사 두 명이 점례를 찾아왔다. 초소장의 명이라고 했다.

그들은 장교님은 바빠서 올 수 없으니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양쪽에서 점례를 부축하면서 그들은 이런 하찮은 일을 시킨 것이 불만이라는 듯이 투덜댔다.

하지만 그들은 예의 있게 행동하려고 무척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장교의 다짐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대처였다. 점례는 제 발로 갈 수 있었으나 그것이 편해 그대로 두었다.

장교는 여유가 있었다. 점례를 보고는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초소에서 처음보았던 신경질적인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장교는 다 알고 있으니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는 행동을 이어갔다.

그는 전투병과의 장교보다 계급은 두 어 단계 아래였으나 보직의 중요성은 높았다. 그래서 다른 장교들은 업신여기는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점례에게 병을 핑계로 너를 빼돌렸다며 자신의 인자함을 과시했다. 그것이 특별한 존재로 대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장교의 호의에 점례는 고개를 숙였다.

이제 병사들을 받을 필요가 없다. 그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점례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점례는 다시 막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장교는 이곳에서 병을 고치고 나랑 같이 살자고 했다. 그게 가능할까.

장교는 막사의 불만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만주 시내로 나갔을 때 점례를 대신할 중국인 여성 3명을 데려왔다. 점례가 빠지더라도 문제가 없게 미리 대비한 것이다.

초소의 장교가 왜 자신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지 점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은 그저 그들이 선택한 데로 움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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