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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18:51 (금)
156. 비(1920)-누가 선교사에 돌을 던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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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비(1920)-누가 선교사에 돌을 던지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3.06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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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년간 최전선에서 복무했고 잘 낫지 않는 부상에서 회복한 기념으로 여행을 떠나는 의사 맥패일 부부는 한결 기분이 좋다.

그 옆에는 밤낮 흡연실에 처박혀 포커를 일삼거나 술로 하루를 탕진하는 부류와는 다른 점잖은 선교사 데이비슨 부부가 있다.

선교사는 사십 대의 깡마른 남자로 벗겨진 정수리, 주근깨투성이인 피부에 얼굴에는 엄정하고 고지식한 성격이 묻어있어 여유가 있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의사와는 다르다.

그렇다 해도 선교사 부인으로부터 많은 승객 가운데 안면을 트고 싶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았으니 의사는 내심 선교사와 여행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씨, 때에 따라서는 양보도 하고 농담도 하고 선한 것을 위한 것이라면 하찮은 것은 그냥 넘어가도 좋다는 식의 맥패일.

자신이 정해놓은 틀에 벗어나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고 이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신의 명령이고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주장하는 데이비슨.

그런 선교사이니 만큼 똑바로 하지 않으면 누구든 따끔한 맛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원주민의 타락은 눈 뜨고 볼 수 없다. 부도덕 그 자체인 춤 금지는 선교사가 취한 일순위였다.

예의범절을 세우는 것 그래서 끔찍한 결혼 풍습을 없애는 것이 데이비슨이 지난 8년간 이곳에서 했던 선교의 가장 큰 공적이다.

▲ 손에 돌을 든 자들이 모여있다면 그 든 돌을 선교에게 던질 것인가, 아니면 톰프슨에게 던질 것인가. 그도 아니면 그냥 쥐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면서 던지지 못할 것인가.
▲ 손에 돌을 든 자들이 모여있다면 그 든 돌을 선교에게 던질 것인가, 아니면 톰프슨에게 던질 것인가. 그도 아니면 그냥 쥐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면서 던지지 못할 것인가.

맥패일과 데이비슨이 이런 차이라면 역할은 미미하지만 역시 부인들도 남편의 성격을 따라 엇비슷한 취향을 보인다.

맥패일 부인이 조용하지만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성격이라면 데이비슨 부인는 남보다는 남편의 의중을 중시하고 남편 말을 전적으로 따르는 부부 중심적 인물이다.

육지가 보이고 배가 정박했다. 이곳은 미국령 사모아 섬으로 열흘은 더 가야하는 최종 목적지로 가는 일종의 기착지인 셈이다. 두 부부는 다른 승객들과 함께 배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고 갈 숙소를 정했다.

그런데 이 숙소의 일 층에 톰프슨이라는 통통하고 멋진 아가씨도 함께 투숙한다. 이때는 마침 우기라 비는 줄기차게 내린다. 한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좀처럼 멈출 기미가 없다.

태평양의 우기는 하늘을 뚫어야 비로소 멈춘다. 끈적이는 기후, 달려드는 모기 때문에 사람들의 신경은 곤두서기 마련이다.

그때 아래층에서 천둥 번개 같은 왁자한 소리가 들린다. 축음기에 맞춰 여러 사람이 춤추고 노래하고 있다. 선교사가 보기에 좋은 풍경이 아니다. 조용히 불러 타일렀으나 톰프슨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선교사 부인은 걱정이 앞선다. 남편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하고야 마는 성미다.

더구나 하나님을 위반하는 길잃은 양에 대한 처사는 가차 없고 무자비하다. 기독교인으로서 스스로 짊어진 임무를 완수하는데 한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된다.

그가 속한 교구에서 한 일을 돌아보면 톰프슨양은 무사하기 어렵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의 언사는 거침없다. 입은 옷은 헐렁하고 행동은 미천하다.

그러나 맥패일이 보기에 뭐 그렇게 큰 잘못 같지는 않는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뿐인지 일주일 치 세를 다 내고 자기 방에서 떠드는 것에 선교사의 간섭이 지나쳤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계명을 어기면서도 죄의식이 없는 톰프슨 양은 선교사가 보기에 썩은 나무였고 썩은 것은 신속히 베어 장작불에 집어 넣어야 했다.

선교사는 신의 이름으로 행동개시에 나선다. 워싱턴을 들먹이며 총독을 압박해 톰프슨 양이 다음 배인 샌프란시스코 행을 탈 것을 명령한다.

선교사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호놀루누에서 나쁜 행실을 했다. 반성하고 사죄해도 모자랄 판국에 자신의 교구 근처에서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말로 해서는 도저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자 총독을 이용했다.

사태 파악을 한 톰프슨은 뒤늦게 애원해 보지만 무용지물이다. 맥패일은 불쌍한 마음에 총독에게 톰프슨 양이 샌프란시스코 행이 아닌 다음 배인 시드니 행으로 갈아 탈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한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그녀는 감옥행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총독은 자신이 선교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선교사가 수긍하면 가능하다며 톰프슨양의 운명은 선교사의 손아귀에 있다고 암시한다.

박사는 데이비슨에게 부탁한다. 한 번만 봐달라고. 그러나 청은 먹혀들지 않는다. 벌을 주고 싶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만 그녀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부인을 통해 선교사 부인에게 이야기를 잘 전달해 보지만 역시 돌아온 대답은 노다. 선교사 못지 않게 선교사 부인 역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맥패일이 보기에 이런 일은 너무 가혹하다. 그러나 여기 실권은 총독이 아닌 선교사가 잡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들으면 더욱 그렇다. 교회를 나오지 않고 복음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가차 없이 쫓아낸 사례는 부지기수다.

한 상인은 20년 이상 번 돈을 단 이틀 만에 만에 다 털리고 섬에서 추방됐다. 톰프슨의 운명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그녀는 이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구원의 손길을 선교사에게 내민다. 그는 거부하지 않는다. 누군가 곤란할 때 나를 부르면 지체 없이 달려간다는 신념은 톰프슨 양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밤새 그녀의 방에서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른다. 이제 그녀는 완전히 회개했다. 거만한 표정은 사라지고 얌전하게 지내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맥패일은 묻는다. 죄를 뉘우치고 있으니 감옥에 보내는 대신 시드니 행을 타도 되지 않겠어요? 3년 감옥행을 알면서도 보낼수는 없지요?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노. 뉘우치면 벌 받아라. 그녀의 영혼을 위해 주님의 기도를 반복합시다. 예수님의 용서 조차 그가 정해놓은 틀을 벗어나면 가차 없다.

참 해도 너무하다. 맥패일은 선교사가 야속하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운명의 내일이 다가왔다. 그녀는 꼼짝없이 떠나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잠잠했던 아래층 축음기 소리가 요란하다. 모든 것은 원상태로 돌아갔다. 톰프슨 부인은 무슨 일인지 몰라 놀라는 사람들에게 같잖고 멸시하고 가증스런 표정을 내보였다. 그날 아침 선교사는 바다위에서 죽은 시체로 떠다녔다.

: 시종일관 철두철미한 선교사의 행동이 과연 선교사는 이래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보여준다.

선교사 부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선교사가 하는 일을 그림자처럼 도우며 그가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준다. 한평생 이런 삶을 살았으니 선교사 부부야말로 교황청의 훈장을 받고도 남는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그는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었다. 성경도 하나님 말씀도 인간의 본능 앞에서는 결국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선교사 데이비슨이 그녀와 단둘이 밤새 성경공부 한 것을 탓할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선교사가 흑심을 품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대화가 이어지면서 선교사는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던 선을 넘고 말았다.

그를 시험에 들게 하고 유혹에 빠트린 톰프슨이 선교사를 제압한 것이다. 어떤 누구도 총독이든 술주정뱅이 장사꾼이든 무서운 원주민이든 지금까지 선교사를 당해낸 사람은 없었다.

그와 싸워 이긴 사람이 없었기에 선교사는 자만했을 수 있다. 이래도 되겠지 하는 허점을 그녀는 파고들었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실수와 지은 죄에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목숨으로 죄를 갚은 선교사 앞에 그녀는 같은 죄를 되풀이하기 위해 축음기를 크게 틀고 만천하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자신의 행동이 정당함을 고하고 있다.

과연 손에 돌을 든 자들이 있다면 누구에게 던질 것인가. 선교사인가, 톰프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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