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2-12-09 18:50 (금)
한 달이 지났는지 두 달이 지났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났다
상태바
한 달이 지났는지 두 달이 지났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났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2.27 0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주의 깊숙한 곳에서 점례가 오일 장터를 회상할 때 용희는 남양군도의 어느 섬에 막 도착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멀미 때문에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용희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기차와 차 멀리는 양반이었다. 뱃멀미가 그렇게 심한 줄 몰랐다. 먹은 것도 없는데 헛구역질할 때마다 검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나중에는 나올 것이 없자 속에 있는 창자가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오는 듯했다.

차라리 죽었으면 싶었다. 오한이 나고 온몸이 창백했다.

같이 온 여자들도 용희와 같은 처지를 면치 못했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조선인 남자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처음 타보는 기차와 뱃멀미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배를 탔던 통영의 한 중년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갑판 위를 활보했다. 그는 쓰러져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용희를 보고는 혀를 찼다.

이 정도의 참을성도 없으면서 어떻게 전쟁터가 나가겠느냐고 나무라는 듯했다. 용희의 귀에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말수로 불리는 그 남자는 쓰러져 있는 다른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갑판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희미한 물체가 왔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용희는 꿈결처럼 느꼈다. 저이는 사람인가 귀신인가. 의식이 꺼져갔다 돌아오면 용희는 또 이렇게 중얼거렸다.

‘제발 이 울렁거림이 멈췄으면.’

멀미만 멈추면 못 할 것이 없고 못 참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용희는 다시 눈을 감고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파도가 치는지 배는 한 없이 위로 올라갔다. 마치 높은 산의 꼭대기에 도달하기로 하려는 듯이 끊임없이 올라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서서히 내려왔는데 그 내려오는 것이 올라가는 것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용희는 또 까무러쳤다. 눈을 뒤집고 온몸을 떨다가 그냥 나동그라졌다.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나 대개는 배에서 지내는 생활이 길어지자 조금 나은 듯이 보였다. 용희만이 예외였다. 좀처럼 멀미가 가시지 않았다.

일본 사람 하나가 하도 꿱꿱거리는 용희를 보고는 해도 너무 한다고 버러지를 보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저래서 어찌 버텨낼지 한심하다는 투였다. 불쾌한 표정이 얼굴 가득히 드러났다.

이보다 더 험한 것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용희는 어서 배에서 내리기만을 학수고대했다. 논이고 밭이고 집이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돈을 번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는지 두 달이 지났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났다.

드디어 배가 멈추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용희도 일어섰다. 다리가 풀려서 비틀거렸다. 그러나 정신 줄 바짝 잡고 용기를 냈다.

그리고 가슴에 있는 보따리를 힘껏 껴안았다. 점례가 했던 것처럼 보따리만이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무기라도 되는 듯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