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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지혜를 빌리기 위해 점례는 옛 이야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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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지혜를 빌리기 위해 점례는 옛 이야기를 떠올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2.22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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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다 자다 다시 깨기를 반복했다. 하루가 길었다. 그 긴 하루가 한 달이 됐을 때 점례는 뭔가 잘못돼도 한 참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의 얼굴도 생각나지 않았다. 살아서 고향에 갈 수 있을까.

열여섯 점례는 아직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소학교를 겨우 마쳤는데 그녀는 성인 남자들을 보살피는 처지가 됐다. 그들은 점례에게 위안을 받았다. 일방적인 것이었다. 위안은 그들이 점례에게 해야 마땅했다.

점례는 생각했다.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 빠져 나가게 해달라고 빌어야 했다. 그러나 냉수를 떠놓고 기도할 뒷간의 장독대도 없었다. 언덕 위 서낭당에 쌀 한 줌 놓을수 없는 처지에 점례는 슬펐다.

점례는 엄마가 들려주던 호랑이 이야기, 전설의 소금장수, 학교에서 배웠던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 등을 떠올렸다. 그들이 어떤 지혜를 발휘해 위기를 벗어났는지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서였다.

옆방에는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조선 여자들이 있었다. 그녀들도 점례처럼 돈 벌어 논 산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다. 다 속은 것이었다. 순순히 따라오지 않았어도 별도리가 없었지만 속았다는 분노만은 삭일 수 없었다.

점례는 종이를 흔드는 순사와 우리 논을 벌써 상상하는 아버지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순사의 하인처럼 동행한 동휴를 생각했다.

동휴는 점례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과 점례의 혼사를 논했다. 아버지는 동휴가 면서기로 일하고 살림도 자신보다 낫기에 그럴 분위기였다.

그러나 점례는 싫었다. 싫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커서 혼례하겠다고 뒤로 미뤘다. 그것이 일 년 전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동휴는 틈만 나면 점례에게 집적거렸다.

동네에는 내 여자가 됐다고 소문을 냈다. 그러나 점례는 동휴보다는 윗마을 효의에게 더 마음이 있었다.

오빠 친구인 효의는 풍모도 점잖았고 하는 행동도 미더웠다. 점례는 그 오빠 생각에 동휴를 밀쳐냈다. 점례의 마음이 떠났다는 것을 알고부터 동휴는 태도를 바꿨다.

트집을 잡아 괴롭히거나 집안에 문제를 일으켜 아버지를 괴롭혔다. 이 일도 동휴가 꾸민 것이라고 점례는 짐작했다. 하고 많은 처녀 가운데 자신을 꼭 찍어서 온 것이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순사는 용희네로 가기 전에 점례네부터 들렀다. 점례가 집에 없자 용희네로 들이닥친 것이다. 점례는 모든 것이 점차 선명해지자 자신에게 위안을 삼으려는 일본군보다 동휴가 더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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