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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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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2.21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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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은 태수가 고개를 들고 가이드 호를 보자 그가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마저 읽자.’

그가 한숨처럼 말했다.

점례가 기차를 타고 경성역에서 내려 다시 기차를 타고 신의주에서 내린 것은 독자들도 알 것이다. 거기서 다시 트럭을 타고 몇 날 며칠을 걸쳐 도착한 곳은 중국 내륙 깊숙한 곳이었다.

점례와 용희는 신의주에서 헤어진 후 소식을 알지 못했다.

태수는 여기까지 적고 나서 다 쓴 볼펜을 바꾸기 위해 잠시 손을 놓았다. 그리고 습관처럼 맞은 편을 응시했다. 할머니의 깊게 패인 눈에서 눈물이 어른거렸다.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았으나 할머니는 용케도 참아냈다.

점례는 군부대 옆에 딸린 작은 막사에 짐을 풀었다. 짐이라고 해야 보자기 하나뿐이었지만 점례는 그것을 끌어안았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됐다.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틈으로 점례는 밖을 내다보았다.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줄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비를 피해 대피하려는 개미들의 끝없는 행렬처럼 그들은 보이지 않는 줄을 만들었다.

기겁을 한 점례는 얼른 몸을 구부렸다. 가슴에 안은 보자기가 보호막이라고 되는 듯이 세게 끌어안았다. 그녀는 이제 자기에서 무슨 일이 닥칠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기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겁이 났다.

돈 벌어 논을 사겠다는 꿈 같은 것은 사라졌다. 대신 무서움과 공포에 질렸다. 밖의 군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발을 굴렀다. 군홧발 소리가 마치 먹이를 노리는 사자의 것처럼 날카로웠다.

문이 열리고 점례는 그대로 기절했다. 저녁이 되어서 점례는 깨어났다. 상황파악이랄 것도 없었다. 꿈속을 헤매는 듯 죽음에 이르는 듯 그녀는 몽롱한 정신으로 다시 정신줄을 놓았다.

그녀는 눈을 떴으나 다시 감았다. 끝없는 줄처럼 끝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기도 전에 다시 긴 줄이 늘어섰다. 어제보다 많은지 적은지 점례는 그것을 가늠할 수 없었다. 하늘도 흐리지 않는데 군인들은 개미처럼 오늘로 일렬로 늘어서 서서 발을 구르고 있었다.

점례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니 잠이 아닌 죽음과 같은 기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곳에는 죽마을의 풍경은 없었다. 순사도 엄마의 얼굴도 용희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런 것도 없는 깜깜한 밤이 계속됐다. 점례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 못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점례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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