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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행군해 오면서 그들은 군가를 크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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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행군해 오면서 그들은 군가를 크게 불렀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2.16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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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내린 용희는 봉숭아 꽃을 보았다. 작은 바람이 불어왔다. 조금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에 안은 보자기를 끌어당겼다. 점례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점례도 봉숭아를 보았다. 두 사람은 말 대신을 꽃을 곁눈질하면서 광장의 한구석에 모였다. 족히 수백 명은 넘어 보이는 소녀들이 자신과 비슷한 차림새로 놀라움과 두려움을 안고 손에 쥔 것은 세게 움켜 쥐웠다.

그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호각 소리가 들렸다.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람보다 군인들이더 많았다. 멀리서 행군해 오는 무리들은 큰 소리로 군가를 불렀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러나 이겨내야 한다고 용희와 점례는 다짐했다. 한 일 년 만 고생하면 논을 살 수 있다는 아버지 말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논과 일 년의 고생을 맞바꿀 수 있다면 그것처럼 좋은 것은 없었다. 30년을 일해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두 사람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군인 하나가 단상으로 올라갔다. 미리 준비한 듯한 곳에서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10열 종대의 줄을 반으로 갈랐다. 뭐라고 떠드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어도 지휘봉으로 바로 아래에 있는 두 사람을 툭툭 치면서 양쪽으로 가르는 행동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머지 대열은 알아서 앞사람을 따라 몸을 움직였다.

곁에 있던 용희와 점례는 1미터 간격을 두고 벌어졌다.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눈을 마주쳤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앞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희의 줄이 몸을 돌려 쥐쪽으로 나갔다. 점례도 곧 뒤로 돌아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했다. 눈치가 빠른 점례는 앞줄이 그렇게 하기도 전에 먼저 움직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시야에서 용희가 사라질 즈음 점례가 다시 몸을 돌렸다. 단상은 비어 있었다. 지휘봉을 들었던 군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점례는 기다렸다. 그러다 다시 뒤를 돌아봤다. 용희는 이제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 때서야 점례는 어떤 걱정 같은 것이 자신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있는 것을 느꼈다.

용희가 어디로 가는지 그녀는 묻고 싶었다. 그러나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두려움 어린 시선들이 서로의 눈을 교차하면서 아는 사람이 있으면 대답해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군가 소리가 점차 가까이 들렸다. 광장의 바닥을 울리면서 전해지는 저벅거림이 가슴께로 타고 올랐다.

이제 용희는 없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멀고 먼 기차 여행 끝에 내린 광장에서 용희와 점례는 그렇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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