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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깊은 곳에서 가이드 호는 소리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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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깊은 곳에서 가이드 호는 소리를 배웠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2.07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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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호는 제대 후 산으로 들어갔다.

산에서 나와 다시 산으로 간 것이다. 군대가 설악산 북쪽의 깊숙한 산속에 있어 그쪽에서 제대한 군인들은 한동안 산을 피했다.

지긋지긋했다. 그쪽에 대고는 쉬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달고 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가이드 호는 전적으로 그것 때문에 산을 피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도 조금 지쳤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대 후 삼 일이 지나자 몸이 근질거렸다.

산은 그와 천생연분이었던 것이다. 산속 깊은 곳에서 마구 얻어터질 때는 말 없는 산에 오만 정이 떨어지고 얄미움에 발길질도 했으나 다시 산을 부여잡지 않을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였다. 그는 태생적으로 산을 떠나서는 살지 못하는 성미였다.

‘산은 그런 거야, 싫다고 떠났어도 다시 돌아와.’

가이드 호는 이렇게 말했다.

대신 그가 찾아 들어간 곳은 강원도의 산이 아니었다. 전남 영암의 월출산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무려 십삼 년간 도를 닦았다.

그것은 태수의 표현이고 그에 따르면 그냥 산에서 생활한 것이다. 그것이 80년대 후반이었다. 책을 읽고 명상하는 것이 일과였다고 무엇 하고 살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말하자면 먹고 싸는 일이지.’

그는 그때가 그리운지 잠시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봤다. 광대뼈에 빛이 약간 났다. 그것을 태수가 눈치챈 것을 알고 그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 내가 좀 나왔지.’

그러면서 그는 하던 일을 계속하겠다는 듯이 입을 옴싹 거렸다. 대개는 읽은 책에 대한 내용이었다. 제목이나 작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할 때 인용했는데 태수는 간혹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래 거기서 조르바가 춤을 췄어.’

커피숍 한구석의 텔레비전 화면에서 비티에스 멤버들이 노래는 잠시 쉬고 작은 무대 위에서 군무를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가이드 호가 자신도 그러고 싶은지 어깨를 들썩였다.

그가 말하는 주인공의 행적을 태수도 따라갔던 경험이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작은 눈을 크게 뜨면서 이야기 상대가 태수인 것이 즐거운 듯 연신 ‘그렇지 그렇지’ 하고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했다.

그럴 때쯤 태수는 수첩을 열고 전날 만났던 의뢰인의 호소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듣고 적는 것은 태수였으나 해결하는 것은 가이드 호였기 때문이다.

태수는 조심스럽게 읽었다. 그렇게 한 것은 그가 그러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것이 귀찮아서 태수는 한 번은 수첩 전체를 그에게 던지듯이 내밀었는데 그가 수첩을 도로 주면서 ‘난 이제 읽는 것은 지쳤어, 그러니 그 일은 네가 해. 네가 해.’라고 떠밀었다.

태수가 어이 없다는 듯이 멀뚱히 바라보고 있으면 가이드 호는 어서 말을 해, 어서 말을 해라고 재촉했다. 대중 가사를 박자에 맞춰 따라 불렀고 금세 다른 가수의 가사를 바꿔 ‘읽어, 지금 당장 읽어’ 하고 다그쳤다.

가이드 호는 노래를 그것고 창이나 가곡 같은 것을 잘 불렀다. 소리를 했느냐고 묻지 않았으나 그가 월출산에서 먹고 싸는 일외에 소리도 배웠음을 태수는 눈치챘다.

그러면 별수 없이 태수는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 의뢰인의 표정이 떠오르는지 태수의 눈은 과거를 더듬고 있었다. 기억도 되살아 났는지 간혹 고개를 끄덕였다.

잘 읽기 위해 목을 다듬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성우의 목소리를 기대하지 않았고 가는 귀 역시 먹지 않아 태수가 아무렇게나 읽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녹음기 버튼을 눌렀다. 두 번의 확인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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