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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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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1.14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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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제대로 자기 길을 가고 있는가. 내가 가는 길은 어디인가. 성일은 이런 의문을 품었다. 잘못 들어온 엉뚱한 길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자 조금 전의 상황과는 다른 감정이 몰려왔다. 그것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슬픔이었다.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 더 할 수 없는 극한의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차츰 수그러들어 마침내 조용해졌다. 스펀지처럼 몸속에 스며들었던 감정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것은 한 계절이 가고 다른 계절이 오는 것 처럼 소리 없이 다가왔다.

성일은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이 자신의 감정을 이토록 극한에서 극한으로 몰고 가는지. 울고 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후련하다고나 할까.

막힌 것이 뚫어졌는지 답답한 숨구멍에 바람이 불어 들었다. 호흡이 한결 편해졌다. 일부러 오래 참고 있다 빨아 들이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한두 방울 비가 내려 쌓인 먼지 위에 내리는 것처럼 가뿐했다. 그러나 아직은 막힌 둑을 타고 내려올 정도는 풍족하지는 않았다.

세찬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져야 했다. 먹구름이 몰려와야 한다. 소나기는 말간 하늘에서는 떨어지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으니 누구라도 그렇게 해줬으면 싶었다.

그러자 작은 안도감이 몰려왔다. 이제 다 된 것 아닌가. 성일은 무엇이 그렇게 됐는지는 알지 못하면서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두 방울 후두둑 내리다 보면 어느새 떨어지는 소리는 점차 커져 나중에는 빗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런 상태까지 왔다.

성일은 두 귀를 손으로 잡고 정말로 그런 소리가 들리는지 들어보려고 했다. 절규의 함성은 사라졌다. 대신 고요가 찾아왔고 그것을 성일은 안으로 조용히 삭이는데 집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함성 대신 맥빠진 심장처럼 조용하지만 나직한 울림이 이어졌다.

절대자를 살려내라던 허공 속의 외침은 더는 밖으로 울려 나오지 않았다. 이제 그럴 필요없다. 그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

비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빠져나오자 닫혔던 것들이 한꺼번에 열리기 시작했다. 안 보이던 것이 눈에 들어오고 귀도 확실히 제자리를 찾았다. 모든 것은 정상이었다.

도로를 가득 채운 출근길 버스의 굉장한 소음도 가는 행인의 서두르는 모습도 가게 문을 여는 상인의 상기된 표정도 어제와 다름없었다.

세상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마치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그렇게 됐다. 저쪽에서 버스 한 대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정거장으로 다가왔다.

부웅거리는 디젤 엔진의 단순한 기계음은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성일의 걸음을 재촉했다. 성일은 다시 살아났다. 죽은 자의 환영은 없었다.

생전의 음성과 걸음걸이와 그 모습은 더는 눈앞에 어른 거리지 않았다.

언제나 단정한 그가, 무표정한 그가 웃음 대신 살짝 인상을 쓰면서 인자함을 버리고 무섭게 변한 모습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사라진 곳이 더는 화려하고 음침한 곳이 아니기를 바랐다.

환영은 이제 없다. 그러나 성일의 마음속에는 그가 다시 꿈틀거리며 일어섰다. 예전의 보통사람이 아닌 모습으로 성일 앞으로 다가왔다.

세상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위엄이 서려 있는 모습으로. 생전에 그는 자신을 한 번도 신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신으로 여겼다. 인간의 탈을 쓴 전지전능한 신이 바로 그였다. 진짜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반신반인인 것은 확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람들이 그러는 것을 그 자신도 믿었다. 그래서 늘 위엄있는 목소리와 태도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겉으로는 인간이지만 신의 행세를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위엄은 자신을 위한 것이면서 대중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으로 그는 나라를 지켰고 국민을 구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다고 입을 열었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다고 노트에 적었다. 그렇지 않다는 극소수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속으로는 있어도 적어도 겉으로는 없었다. 그분에 대한 불순한 태도는 어떤 경우도 용납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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