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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장고:분노의 추격자(2013)-서부극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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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장고:분노의 추격자(2013)-서부극은 살아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1.10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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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새해를 시작하는 것도 괜찮겠다. 거창한 계획을 세워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해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격자>를 봤다. 머리 안 쓰고 눈요기할 것으로 서부극만 한 것이 없다. 감독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래서 골랐다.

더구나 나쁜 짓 일삼는 악당을 처치하기 위해 하는 총질은 정의의 심판이기도 하니 정신건강에도 나쁠 게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른 서부극과는 다르다. 장고가 백인이 아니고 흑인이다.

흑인의 이름이 그렇다 쳐도 실제로도 흑인이 주인공이다. 발상의 전환으로 늘 새로움을 선사하는 감독의 재기가 여기서도 반짝반짝 수정처럼 빛난다.

흑인이 백인을 죽이는 가공할 만한 일이 벌어진다. 때는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 텍사스의 어느 산골.

우주 영화를 촬영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연경관이 신비롭다. 노예로 팔려 가는 흑인의 행렬과 대비된다. 발에 족쇄를 달고 쇠줄에 묶여 끌려가는 흑인들은 처참하다.

그들 무리의 맞은편에서 마차 한 대가 여유롭게 다가선다. 닥터 (크로스토프 왈츠)는 노예 상인 형제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노예 가운데 장고(제이미 폭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지만 팔지 않겠다고 거드름을 피운다.

잠시 소란이 일고 형제는 순간 저승길로 갔고 닥터는 노획물인 장고를 데리고 어둠이 깊은 밤길을 걷는다.

날이 밝았다. 닥터가 모는 마차 위에는 그가 전직 치과 의사였다는 것을 의미하듯 거대한 모형 치아가 용수철 위에서 덜렁 거린다.

그 옆에는 노예 장고가 감히 흑인 주제에 말 위에 앉아 있다. 시민들은 놀란다. 흑인이 말을 타고 있다. 눈에서 눈으로 입에서 입으로 소문은 퍼져 가고 도시는 금세 긴장이 감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과감하게도 총질을 한다. 마을 보안관을 죽인 것이다. 진짜 보안관이 나타나자 닥터는 지명수배범을 처리했으니 현상금을 달라고 큰소리 친다.

뒷주머니에서 지방 순회 판사가 발부한 영장과 수배 전단을 흔들어 보이면서. 알고 보니 닥터는 수배범 현금 사냥꾼이었다.

장고를 고른 것은 그만이 얼굴을 알고 있는 현상범을 잡기 위해서다. 타고난 총잡이 장고는 닥터의 둘도 없는 단짝이 됐다. 닥터를 대신해 어린 아들과 함께 있는 농부를 처지하기도 한다.

이때 장고는 한동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그가 아무리 냉혈 서부극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망설이는 것은 장고의 타고난 작한 성품을 말하고 싶은 감독의 배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에게는 억지로 헤어진 아내가 있다. 강제로 팔려간 아내를 찾는 것이 장고의 목표다. 닥터는 기꺼이 그 일에 나선다.

발 벗고 앞장 선다고나 할까. (왜 그렇게까지 닥터가 그러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닥터는 죽을 때까지 장고를 위한다. 단순히 돈 때문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장고를 배신하는 닥터를 기대했으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점은 좀 아쉽다.)

그들은 수배범을 잡기 위해 텍사스에서 미시시피까지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그들은 닥터의 머리와 장고의 총질로 승승장구한다.

수배 전단을 호주머니에 끼고 사람을 죽이고는 보안관이 나타나면 법원의 영장을 들이민다. 그 옛날 위조인지 아닌지 알 길 없는 서툰 공권력은 그들이 죽인 자가 범인인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하면서 현상금을 내줄 수밖에 없다.

▲ 위기에 빠진 장고 일생은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을까. 파란 옷을 입은 그의 패션 감각이 두드러진다.
▲ 위기에 빠진 장고 일생은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을까. 파란 옷을 입은 그의 패션 감각이 두드러진다.

그러다가 들통이 나기도 한다. 거센 추격대가 들이닥친다. 얼굴에 흰 천을 뒤집어쓴 그들은 어느 지점에 모여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을 벌인다.

바느질 솜씨가 형편없다는 둥 그래서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벗고 추격하자는 둥 말 잔치가 벌어진다.( 이 장면은 웃고 넘어가야 한다. 다른 모든 장면이 입을 벌리게 만들지만 겨우 참았다면 여기서 터트리자.)

이런 추격대니 따돌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백인 닥터는 백인에 무슨 원한이 있는지 흑인을 시켜 백인을 죽이는 일에 신물을 느끼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닥터가 그러는 것에 대한 뚜렷한 동기부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그것에 대한 의문은 나중에 풀 수 있으면 풀고 없으면 말고 지금은 장고의 마지막 여정에 동참할 때다.

빠른 전개, 속 시원한 총질이 끝났다. 이제부터 길고 지루한 여정이 시작된다.

칼빈 캔디( 레로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등장했어도 그가 상대가 죽을 때까지 하는 만딩고 싸움에 빠져들었고 그 장면이 흥미롭다고는 하지만 화면은 갈수록 늘어진다.

관객도 쉬어가야지 하는 감독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계속해서 긴장감이 있기를 바란다면 잠시 핸드폰을 보거나 딴짓을 해도 무방하다.

이런 여유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의 하나이고 늘어질수록 그 강도가 세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촛불이 인상적인 빅하우스에 사는 칼빈의 집에 장고의 아내가 노예로 살고 있다. 거금을 주고 만딩고를 산다는 핑계를 대고 그는 장고의 아내를 구해내려고 한다.

마침 장고의 아내는 땅속에 갇혀 벌을 받고 있는데 닥터의 기지로 구사일생 빠져나온다. 흑인 집사는 그녀와 장고의 주고받는 눈빛에서 그들이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장고 일생이 저택을 찾은 것은 만딩고를 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눈치챈다. 여기서 집사는 장고를 돕지 않고 노예 근성을 발휘해 장고를 위험에 빠트린다.

위기일발의 순간이다. 이때 닥터는 숨은 권총으로 적들을 해치우고 이때부터는 다시 엄청난 스릴이 벌어진다.

거래가 끝나면 악수하는 것이 남부의 예절이라는 말을 가볍게 무시하면서 뿜어져 나오는 닥터의 총구에 칼빈이 나가 떨어지고 장고가 거꾸로 매달려 거시기가 잘릴 위험에 처할 때, 광산업자들을 보기 좋게 따돌리던 장고의 숨은 내공이 펼쳐질 때면 저도 모르게 오금이 지린다.

역시 새해 연재물의 첫 작품으로 서부극을 고른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리고 언제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예술세계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국가: 미국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크리스토프 왈츠, 제이미 폭스

평점:

: 흑인을 서부극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기발한 발상에 맞게 장고 역의 제이미 폭스는 수줍은 듯, 어울리지 않은 듯 어색해 하면서도 강인하고 도발적인 연기로 완성도를 높였다.

장고는 분노할 대상이 분명히 있었다. 노예제에 대한 명확한 철학적 사고의 결과라기보다는 아내를 찾기 위한 단순한 분노였다. 닥터의 잔혹극에 기꺼이 몸을 내던질만한 이유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는 집사를 향해 총질을 할 때 너는 겉만 흑인이다는 대사는 그가 흑인으로 감당해야 했던 모진 세월의 고통이 단순 복수를 넘어 조직적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경고대로 같은 흑인이면서 백인을 위해 흑인을 괴롭히는 자는 끝내 용서받지 못했다. 그의 최후는 다른 백인에 비해 더 비참하고 치욕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 이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분노한 장고의 눈빛에 서려 있다.

일당백을 하는 장고의 총질 솜씨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본전을 뽑는다.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곧장 등장하는 감독의 연기를 다른 배우와 함께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 닥터 역의 크리스토퍼 왈츠는 같은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나치의 한스 대령으로 나온 바로 그 인물이다.)

서부극은 죽지 않고 오늘도 여전히 살아 있다. 방탕한 공권력 대신 장고 같은 총잡이가 활약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여전히 정의가 목마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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