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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0 06:03 (토)
마른 땅을 발로 차자 먼지가 피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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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땅을 발로 차자 먼지가 피어 올랐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1.03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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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들쥐의 뒤를 따라 무작정 떨어져 내려야 한다던 사람들의 흔적은 사라졌다.

그들은 낭떠러지 아래를 무서워했다. 영문도 모르고 달려 가다가 휙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

성일은 그런 사람들의 너무 쉬운 변심에 이유 없이 얻어터진 것처럼 화가 잔뜩 난 상태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누가 보면 병자의 행동이었다.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바닥에 쓰러져 꼼지락 거리다 멈춰야 했다. 그런데 몸은 그러지 않았다. 마음따로 몸 따로 움직였다.

그래서 성일은 걸려서 넘어질 수 있는 돌부리라도 있었으면 하고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넘어지는 곳이 시궁창이라도 상관없다. 아니 더할 나위 없는 장소다. 그곳이라면 꽉 박혀 얼굴을 감추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였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걸어가는 자신은 참으로 한심한 존재였다. 쓰러지지 못한다면 고릴라처럼 두 주먹으로 가슴을 꽝꽝 치면서 세상을 무섭게 저주하기라도 하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다.

그런데 빌어먹을 세상인지 기둥이 무너졌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니 나라도 싸움을 걸어야 한다. 이유없이 덩치 큰 자에게 덤벼들어 가슴을 탁, 쳐야 한다.

왜 그러냐고 영문을 몰라 하면 한 대 더 쥐어박고는 그자의 주먹을 말없이 받아야 한다. 때려라 때려. 더 때려라 하고 나머지 얼굴을 들이밀면서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행동해야 한다.

한없이 얻어터져 피투성이가 된다면 그것은 신의 축복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차라리 신이라도 무시하는 것이 낫다.

마른 땅에 날벼락을 내려 준 이유가 무엇인지 삿대질하면서 따져야 한다. 하늘도 다른 사람처럼 모른 체하면 냅다 발길질을 날려야 한다. 그대도 싸다. 그러라고 있는 것이 하늘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걷던 발걸음이 저절로 땅을 차고 있었다. 발길질에 마른 땅에서 먼지가 피어 올랐다. 푹 숙인 고개는 완전히 꺾였다. 너무 꺾어 목이 가슴에 닿을 지경이다.

이 판국이니 기말고사 걱정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시험은 무의미했다. 준비하지 않은 것이 되레 잘 됐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는데 그것이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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