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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5-20 07:52 (금)
계절은 지난해와 그 전해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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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지난해와 그 전해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2.28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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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우리는 빠르게 어린아이로 변했다. 모든 사람의 부모였고 할아버지였고 조상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은 그가 있어야만 돌아갔고 그가 없으면 저녁은 물론 아침도 오지 않았다.

부드러운 얼굴로 다가와 젖을 물려 주면 아이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그러지 않았고 그러지 않은 날이 쉬지 않고 계속되자 이제는 그의 부재에도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았다. 부모나 조상이 없어도 여전히 바람이 불었고 낙엽이 졌던 것이다.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었다. 지난해와 그 지난해와 비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집집마다 김장을 마쳤거나 뒤늦게 하기 위해 배추를 들이고 껍질은 대문 밖에 버렸다.

그러는 사이 다 같이 울고불고 난리를 쳐야 한다는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성일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렸다. 공연히 눈물을 훌쩍였던 것이 되레 이상했다. 그런 모습을 누구에게 보이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모여서 통곡하자는 소리역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러려고 준비를 했던 사람들은 머쓱해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뒤로 물러났고 마지 못해 해야 하는 사람들도 썩 내키지 않다는 듯이 머뭇거렸다.

그런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성일은 호주머니 속의 손이 가볍게 떨렸던 바로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누가 옆으로 다가와 많이 힘들지 하고 위로의 말을 해주기를 바랐던 그 순간 말이다. 싫은 사람일지라도 옆에 있어 줬으면 했다.

잘못이 없어도 다 내 탓이라고 고함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던 그 날은 이제 먼 옛날이야기가 됐다.

그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도 되는 듯이 죄책감에 시달렸던 일은 까마득한 과거에 묻혔다. 그의 자식이었고 손자라고 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하늘도 무심하지, 어쩌자고 자꾸 푸르기만 하냐고, 너는 슬프지도 않느냐고 따지던 공기는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조금이라도 분을 삭이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던 다짐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멈추지 않고 가슴이 팔딱거리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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