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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5-20 07:52 (금)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말 걸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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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말 걸기를 기다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2.17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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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순과 한 달에 두세 번 만났다. 어떤 날은 약속이 없어도 여상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대문 앞에는 김장 김치의 부스러기 등이 쌓여 있었다. 제때 치우지 않은 집에서는 얼어붙거나 풀린 날에는 썩어서 물이 흘러나왔다.

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가방을 든 학생들이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입은 옷이나 걷는 모습에서 이상한 점은 없었다.

출근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평상시와 같았다. 검정 옷에 흰 와이셔츠. 단정한 차림의 그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니.’

성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풀이 죽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봐 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좀 쳐다보고 나를 따라 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성일이 그런 것은 아침 라디오 뉴스를 듣고 나서였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아나운서의 비장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의 울먹이는 듯한 소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집중이 됐다.

그가 죽었다. 갑자기 그의 삶이 멈췄다. 정지된 삶은 어제저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성일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예상했던 것이다.

그의 죽음 소리를 들으며 성일은 작은 트렌지스터 라디오가 들썩거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나중에는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같은 말을 계속했고 했던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학교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종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비상 통신망을 통해 오늘은 등교 없음이라는 통지가 와야 한다. 그런데 그런 낌새는 없었다. 거리에 선 성일은 어떤 변화된 움직임을 기대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관찰했다.

하다못해 누가 다가와 말을 걸기를 기다렸다. 생전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이 그가 죽었어, 그러니 학교 가지 않아도 돼, 하고 말해줘야 옳았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은 골목을 몇 개 돌아 대로변까지 올 동안에도 오지 않았다. 허사로 돌아간 일에 실망을 느끼며 성일은 오늘은 걷지 않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성일은 버스를 기다리며 자기처럼 버스가 오는 쪽을 향해 목을 늘어뜨린 많은 어른들을 보면서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이른 아침 운구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질주했다. 이것 역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성일이 등교하는 길목에는 제법 큰 병원이 있었다. 사이렌 소리는 죽은 자를 급히 옮기는 신호였다. 마지막 가는 길이니 비켜 달라는 경고였다.

성일은 잠시 놀랐으나 그 뿐이었다. 사고로 방금 죽은 자를 옮기는 마지막 장송곡은 어제저녁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오는 허다한 죽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죽음에도 차별이 있었다. 산 자들도 그렇듯이 죽음의 순간에도 그랬다.

사이렌의 죽음과는 차원이 다른 그의 죽음은 단순히 한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하루 정도는 모든 일상을 멈추고 그를 위해 조의를 해야 마땅했다. 아니 삼일, 적어도 한 달은 그래야 했다.

비통한 음성으로 아나운서는 했던 소리를 또 하고 또 하면서 그러라고 깃발을 들었다. 다른 방송국도 다르지 않았다. 채널을 돌리는 성일의 손이 떨렸다.

형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둘러 가방을 들고 학교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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