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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8-08 13:31 (월)
새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눈은 반짝하고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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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눈은 반짝하고 빛났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2.07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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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다닐 수 없는 골목길도 찿아냈다. 그렇게 하자 학교까지 35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거리로 치면 겨우 4킬로미터 정도였다. 시골에서는 그 세배도 걸어 다니지 않았던가. 성일은 굳이 버스를 타는 형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버스비가 없다고 돈을 재촉하면서도 형은 늘 버스를 탔다.

그런 불만을 가지면서 성일은 언제나 걸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은 덕분에 그는 주변의 노점상이며 상가이며 상인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은 쇠똥을 뒤져 소똥구리를 잡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재미를 주었다.

특히 가판대를 구경하는 재미가 여간 크지 않았다. 그곳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리어카에 수북이 쌓여 행인들을 유혹했다.

성일은 늘 그것을 구경했다.

‘채털레이 부인의 사랑’은 과연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표지 그림은 숲속에서 젊은 남녀가 함께 있는 장면이었는데 그 모습은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구렛나룻이 멋진 서양 남자가 금발의 여자 손을 잡고 있는 정면 모습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 가슴이 꿍꽝거렸다.

어느 날은 직접 책을 들춰보기도 했다. 또래 아이 하나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해도 되겠다 싶어 따라 했는데 주인은 책을 사는지보다는 들고 도망가는지 안 보는 척하면서 곁눈질을 멈추지 않았다.

300원인가, 500원 인가하는 가격이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 돈이면 열흘 정도 타고 다니는 버스비와 맞먹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멋진 마차 속에 귀부인이 타고 있는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하마터면 그 책을 살 뻔했다. 그 때 주인이 딴 전을 피웠다. 눈이 마주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성일은 그런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사고 나서는 읽고 싶은 부분만 찾아 읽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은 서서 이리저리 뒤적이면서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다. 주인의 눈치 정도야 좀 보면 어떤가 하는 것이 당시 성일의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면 막연히 궁금했던 것이 조금 감이 왔고 호기심이 조금은 사라졌다.

‘안 사기를 잘했지. 이런 책을 굳이 책장에 모셔둘 필요는 없다.’

책 구경이 끝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가게가 유혹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냄새는 식욕을 자극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큰 도로로 접하는 작은 공터가 하나 나왔다.

그곳은 학교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올 때도 굳이 거기로 갈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성일은 늘 그곳을 거쳤다.

거기에는 커다란 뱀이 유리 상자 안에서 혀를 날름거렸다. 그리고 앞에는 큰 자루 서너 개가 있었고 그 자루는 간혹 꿈틀거렸는데 사람들은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곳에는 유리병 속에 있는 뱀보다 더 큰 뱀이 있을 거라고 짐작을 했다.

상인은 간혹 자루를 들어 보이면서 행인들을 잡아끌었는데 성일도 그 무리 중의 하나였다. 교복을 입고 있어서 '애들은 가라'고 하는 그 애들에 속했지만 주인이 뱀눈을 뜨고 사납게 노려보지 않으면 모른 척했다.

한 번은 자루 속의 뱀을 보기 위해 무려 두 시간 가까이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뱀 장수는 언제나 곧 꺼내 보일 듯하면서도 자루 속의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지친 사람들이 자리를 뜨고 새로운 사람이 자리를 잡으면 몸집이 뚱뚱한 상인은 자루를 다시 들어 올렸다.

‘이놈은 말이지, 아주 크단 말입니다.’

같은 말을 되풀이 했으나 성일 말고는 새로운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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