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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1-20 06:03 (목)
노란 은행잎만 수북이 쌓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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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은행잎만 수북이 쌓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2.01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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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흩어졌고 성일도 그 무리에 섞여들었다. 그리고 여느 날처럼 가방을 팔뚝에 걸고 집으로 달렸다.

학교 앞 공터를 지날 때는 여순과 스쳐 지나갔던 지점을 쳐다봤으나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흙길을 벗어나 아스팔트로 접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논둑 길을 달렸고 논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산길을 타고 올랐다.

산이라고 해야 야트막한 언덕에 불과했다. 언덕은 높지는 않았으나 제법 길게 뻗어 있었다. 그래서 언덕의 중턱쯤에 오르면 호흡이 가빠왔고 땀이 흘렀다.

거기서부터 걸어가는 애들도 있었고 고함을 지르기 위해 쉬었다가 가는 애들도 있었다. 성일도 마찬가지였으나 오늘은 쉬거나 아래를 향해 야호할 기분이 아니었다.

좋아서인지 나빠서인지 알지 못할 기묘한 마음에 사로잡혀 언덕 위까지 쉬지 않고 내달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평지에서는 그렇다 쳐도 오르막에서 쉬지 않고 달려 나갈때는 자신도 왜 그런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성일은 고개턱에 이르자 이쯤에서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돌무더기가 보이자 내쳐 올랐다.

그것이 보이는 것은 그곳이 정상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바위에 걸터앉아 언덕 아래로 펼쳐진 들판을 내려다보았다. 서쪽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나무꾼의 이마를 식히듯이 젖은 성일의 몸을 말렸다.

몸에 한기를 느낄 즈음 아이들이 올라오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성일은 아이들을 제쳐놓고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기다리지 않고 그렇게 한 것은 누군가와 보조를 맞추면서 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려가는 앞길과 옆길은 춤추는 누런 들판 천지였다.

이제 곧 추수 시즌이다. 탈곡을 하는 ‘와롱꽈롱’ 기계가 돌면서 하늘로 회오리처럼 먼지가 올라오는 광경이 눈에 선하게 다가왔다.

과부댁의 스러져 가는 굴뚝에서는 저녁도 아닌데 연기가 피어올랐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한 큰아들이 다니러 왔는지 모른다.

그 아들이 서울에서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소문은 자자하게 나서 누구나 과부댁 앞을 지날 때는 그 생각을 했고 대개는 나도 저 애처럼 서울 가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성일은 그런 생각 대신 엉뚱한 의문을 품었는데 서울을 가면 정말로 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졌다.

돈이라는 것은 정말로 가까이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정태가 일년내 내 일해도 잘 모아지지 않고 돈처럼 벌기 어려운 것이 없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기 때문이다.

과부댁을 지나자 은행나무의 노란 잎이 길가를 가득 메운 은행나무 집이 눈에 들어왔다. 은행은 이미 주인이 주워 갔는지 하나도 없고 은행잎만 수북이 쌓여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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