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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선생은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면서 칭찬의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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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선생은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면서 칭찬의 말을 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1.26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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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일은 달리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그는 그냥 모른 척 앞질러 갔고 삐라는 성일의 것이었다.

'삐라 주은 사람 손들어?'

성일은 짐짓 눈치를 보면서 담임이 같은 말을 한 번 더 하자 그때서야 미적미적 손을 들었다. 손드는 것이 무슨 잘못을 해 지적을 당한 것처럼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심장이 크게 떨려왔는데 그 순간 좋은 일을 했는지 나쁜 일을 했는지 전혀 판단이 들지 않았다.

아마도 여순에게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럴 이유가 없고 여순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일을 성일은 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렸다.

그날 삐라를 가져온 학생은 성일 말고 두 명이 더 있었는데 그들 모두 성일이 갔던 렴주산에서 주었다고 말했다.

담임 선생은 반공정신이 투철한 학생들이라고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면서 칭찬했고 그러지 못한 나머지 학생들은 너희들은 공산당이 좋으냐고 꾸중했다.

그 일이 있은 한 달 후에 성일은 서울로 전학을 갔다. 갑작스런 일이라 성일도 놀랐고 담임도 종례시간에 겨우 이렇게 한마디 하는 것으로 성일의 시골 학교 생활은 끝을 맺었다.

'성일이 서울로 전학간다. 오늘이 너희와 지내는 마지막 날이다.'

그러면서 담임은 성일이 떠나는 것을 조금 아쉬워 했다.

삐라를 잘 줍던 학생 하나가 있고 없고는 반 평가에서 중요한 잣대가 됐기 때문이다. 성일의 서울 전학은 그 전에 조금 논의가 있었으나 이렇게 빨리 결정될 줄은 몰랐다.

서울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탓이 제일 컸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빠른 소식은 전보를 이용해야 했는데 전보가 바로 그날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성일 아버지 정태는 논에서 일하다 말고 전보를 들고 급히 학교로 찾아 왔던 것이다.

미안해 할 일은 아니지만 정태 역시 담임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무엇이 미안한 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정태는 선생이 삐라를 주었다는 이유로 성일을 칭찬했던 것을 상기했다.

그런 고마운 선생에게 선물도 건네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을지 모른다.

담임은 특별한 말이 없었다. 서울 가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뻔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성일과 정태는 교문을 나섰다. 교문을 나서면서 성일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날 정태는 성일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사주었다. 서울이 좋아, 그렇게 좋아하고 묻던 아이들과 작별을 아쉬워하던 성일은 면발을 뚝뚝 잘라 먹으면서 그런 모든 것을 잊었다.

학교도 담임도 친구들도 그의 시야에게 사라졌다. 다 먹기도 전에 정태는 면에 들렀다 가야 한다면서 먹고 오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떴다.

그릇을 싹싹 비우고 검은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을 정도로 깨끗이 먹고 난 성일은 흡족했다. 그는 서울에 가면 짜장면을 더 자주 먹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면서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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