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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0:17 (금)
그는 공터에서 행길로 나왔고 그 순간 여순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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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공터에서 행길로 나왔고 그 순간 여순과 마주쳤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1.22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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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서 여순이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 친구를 만났는지 둘이 함께였는데 나머지 하나는 누구인지 도통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필 둘이 갈 게 뭐람. 성일은 중얼거렸다. 불만섞인 짜증이 밀려왔다. 아니 다행인지도 몰랐다.

혼자 갔다면 주머니 속의 삐라를 여순에게 줬을지도 모른다. 가시에 찔리고 넘어지고 하면서 얻은 귀중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귀중한 것이기에 여순에게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성일은 빠른 걸음으로 둘을 따라잡았다.

그러느라고 시간이 더 지체됐고 호흡이 가팔라졌다. 빠른 걸음보다 달리는 것이 성일에게는 수월한 일이었다.

그러나 성일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둘 중의 하나가 누구인지 슬쩍 엿보기 위해서였다.

성일은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을 지나쳤고 좁은 길이었기에 비켜 가려다가 여순과 슬쩍 부딪치기도 했다.

그 순간 여순은 물론 옆의 친구까지 볼 수 있었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놀란 여순의 얼굴과 무표정한 여학생의 얼굴을 성일은 지금도 환영처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1학년이 아니고 2학년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성일은 다시 발걸음을 빨리했다. 한참을 지나 이 정도면 멀리 떨어졌다 싶은 정도의 시간이 흐른 다음 성일은 잠깐 뒤돌아 봤다.

그런데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없고 한 사람만이 멀리서 뒤따라 오고 있었는데 그것이 여순이라는 것을 알았다. 흐릿한 영상으로도 성일은 여순의 몸짓을 알아봤다.

성일은 잠시 머뭇거렸다. 여순을 기다렸다가 삐라를 줄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자신이 가지고가 담임 선생의 칭찬을 받을 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는 쇠똥구리는 잡아야겠다며 길의 위쪽으로 들어섰다. 습관이었다.

그곳은 늘 소 두 마리 정도가 말뚝에 메여 있는 곳으로 오래 묵은 똥을 발로 차면 십중팔구 그 속에 빛나는 검은 물체가 꿈틀거렸다.

아니면 그 근처 어딘가에 불쑥 솟은 은신처가 있고 그곳을 나뭇가지로 쑤시면 틀림없이 쇠똥구리가 나왔다. 쇠똥구리를 잡으면서 성일은 잠시 삐라에 대한 생각을 놓쳐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여순이 지금쯤 샛길에서 다시 지름길로 가기위해 아스팔트 길로 접어들었다고 여겼다. 그는 공터에서 행길로 나왔고 그 순간 여순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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