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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매드 맥스(1979)-연민과 공포 그리고 카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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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매드 맥스(1979)-연민과 공포 그리고 카타르시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11.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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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직업에 신물이 날 때가 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 방면에서 타고난 체질이라고 해도 어느 순간 옷을 벗고 싶다.

이유는 다양하다. 악당을 쫓다가 자신이 악당이 되는 순간, 아차 하는 기분이 들 때다. 미친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을 즐긴다. 나도 미쳐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가 하면 동료가 처참한 상태에 빠졌을 때도 그렇다. 흰 천을 뒤집어썼는데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면 직업에 진저리를 칠 만도 하다.

맥스( 멜 깁슨)가 꼭 그런 상황이다. 신참으로 아직 한창 힘을 써야 하나 갱을 쫓는 일이 자신과 그렇게 어울리는 아니다. 갱을 잡는게 어려워서가 아니라 타고난 따뜻한 성격 때문이다.

▲ 아내와 어린 자식을 갱들에게 잃은 맥스가 복수를 위해 분노를 키우고 있다.
▲ 아내와 어린 자식을 갱들에게 잃은 맥스가 복수를 위해 분노를 키우고 있다.

안 좋은 일이 생겨날 때마다 이러다가 정말 자신도 갱처럼 다른 사람의 감정에는 무관심한 인정사정없는 인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몰려든다.

털고 나와도 어디 가서 풀칠이야 못하겠느냐는 자신감보다는 지금 당장 그만두고 진저리라는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이 범인을 체포해야 한다는 절박감보다 앞서있다.

더 늦으면 영영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그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진다. 이미 결정했으니 잡을 생각 말라고 말리는 상관에게 쐐기를 박는다.

상의하러 온 것이 아니라 통보하러 왔다. 그러나 상관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자신이 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 줄 사람으로 맥스만한 인물이 없다. 그는 이런 거창한 말로 뒤돌아서는 맥스를 불러 세운다.

‘영웅이 없는 시대 진정한 영웅이 돼라.’

몇 주 쉬고 와서 그때도 그런 생각이면 말리지 않겠다고 반은 애원조로 만류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맥스는 가뿐한 걸음으로 예쁜 아내 제시( 조안느 사무엘)와 어린 자녀를 데리고 룰루랄라 휴가를 떠난다.

웃고 떠들고 맥스 가족은 행복하다. 해변과 숲과 태양이 이들을 반긴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그런데 늘 그렇듯이 일이 생긴다. 차가 말썽이다. 타이어가 펑크났다. 귀신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지저분한 수리점에 들어간 맥스는 어떤 불길한 예감 대신 수리를 마치고 어서 즐기던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

들뜬 아내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아이와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간다. 그때 갱들이 노리고 있다가 그녀를 덮친다. 좋은 먹잇감을 놓칠 리 없다.

그러나 놈의 급소를 올려치면서 아내는 어린아이와 함께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온다. 무사하니 다행이다. 그러나 이 무사함은 다음에 오는 처참함의 전주곡일 뿐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부부는 더 애틋하다. 위험 후의 안도는 사랑의 감정을 더욱 깊게 만든다. 애정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다음에 올 슬픔은 배가 된다.

갱들은 결국 복수를 한다. 아내의 예쁜 얼굴을 오토바이로 들이박고 아이는 깔아뭉갠다. 한 사람은 제 얼굴이 아니고 다른 생명은 저세상으로 떠났다.

세상에 홀로 남은 맥스는 제정신을 잃고 말 그대로 미친 맥스가 된다.

그의 행동을 누구도 막을 수는 없다. 죽거나 그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해도 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 벗은 경찰 옷을 다시 챙겨 입는 맥스.

검은 가죽 재킷에 같은 색의 바지와 긴 장화를 신었다. 갱들이 오토바이로 거친 질주를 해도 이제는 겁날게 하나도 없다.

타이어나 터지는 후진 차가 아닌 세련된 검은 특수세단이 그와 함께한다. 복수혈전에 가득찬 그에게 세상은 사람의 인정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맥스의 정신은 이성을 상실했다. 이런 통제할 수 없는 사내가 용광로처럼 불타오르는데 겨우 조연에 불과한 악당들이 당해낼 수 없다.

적들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맥스, 그러나 그의 눈빛은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는다. 냉혹한 킬러가 있다면 바로 맥스가 되겠다. 그는 최후의 일인까지 남길 없이 죽인다.

불타는 자동차에 수갑을 채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인지 모르지만 제 갈 길을 가는 맥스에게 관객들은 환호성보다는 뒷목이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

호주의 황량한 사막보다 더 황량한 아스팔트 위의 복수를 끝낸 맥스가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돌아보는 두 눈이 섬뜩하다. 매드 맥스 시리즈가 나올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겨우 40만 달러를 투자해 1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당시 맥스역의 맬 깁슨은 겨우 23살로 무명이어서 홍보용 포스터에도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설움을 딛고 맬 깁슨은 숱한 명작에 출연해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로 우뚝 섰으며 <핵소고지> 등을 만든 감독으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국가: 호주

감독: 조지 밀러

출연: 멜 깁슨, 휴 키스번

평점:

: 차도에는 차가 없다. 텅 빈 아스팔트만이 길게 뻗어 있을 뿐이다. 세상은 아무 쓸모 없이 버려졌다.

지구 종말이 오면 바로 이런 모습일까. 그 쓸쓸하고 거친 도로에 갑자기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마주 오는 차도 앞질러 가는 차도 없다. 오로지 갱들을 위한 전용도로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다. 약자를 무자비하게 괴롭히고 이유 없이 두들기고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언제나 그렇듯이 무력한 공권력은 따라가기 벅차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 경찰은 갱들을 추적하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잔인함, 무모함, 화려함이 볼거리를 충분히 보여준다.

더는 높일 수 없는 속도계의 바늘이 올라가기보다는 내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거대한 트럭이 그것을 엿가락 밀 듯이 깔고 뭉갠다.

어떤 오토바이는 다리 넘어 새처럼 날아가 강물에 처박힌다. 오토바이가 없다면 이 영화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다. 총보다 더 위협적이고 강력한 소음으로 갱들은 화면을 압도한다.

그런 오토바이를 제거하는 복수극은 카타르시스에 정점을 찍는다.

거친 태클에 그보다 더 거친 공격으로 맞서는 장면은 연민과 공포를 섞고 심장을 때리는 경쾌한 음악은 분노의 질주에 기름을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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