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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1-20 08:57 (목)
성일은 집으로 가는대신 산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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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은 집으로 가는대신 산으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1.16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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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간첩이 잡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곳이 어디인지 성일은 알지 못했다. 가보지 못한 곳이었고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강원도 해안가 어디라고 했고 간첩이 버리고 간 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 간첩은 어디에나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고 신고하라고 다그쳤다.

마치 있는데도 모른 척하거나 감춰두고 있다는 의구심이 드는 말투였다. 이른 아침 산에서 내려오거나 담배가격을 모르고 무언가를 묻는 낯선 북한말을 쓰는 사람을 찾으라고 했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는지 성일은 고개를 돌려 뒷자리 친구를 바라봤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던 시기였다. 의심을 부추기고 신고를 장려했는데 그것이 바로 애국심이었다.

선생님은 그러면서 삐라를 많이 주어 오면 반별 대항에서 우리 반이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적어도 하나쯤은 주어 오라는 명령 같은 것이었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반 아이들은 꼭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공부는 못해도 삐라는 주을 자신이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간혹 삐라를 주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당장 집주변부터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책을 읽고 무엇을 쓰거나 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일이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만 하면 됐다.

성일은 그러나 그것은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방도 아닌데 어디서 삐라를 주워 오라는 것인지 성일은 답답했으나 한편으로는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삐라는 주로 산에서 만날 수 있었다. 산의 깊숙한 곳에는 손바닥 반만 한 종이쪽지 같은 것이 간혹 나뭇가지에 걸려 있기도 했다.

붉은색 글씨로 조잡하게 써놓아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북쪽의 선전물이었다.

못 가져오는 학생은 벌주겠다는 말을 하면서 담임 선생은 종례를 했고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성일은 집 대신 다른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은 해발 338 미터 높이의 렴주산이었다.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이곳에 가면 서해 바다가 한눈에 보였고 천웅읍이나 자신의 학교가 마치 우두막처럼 작은 점으로 나타났다.

산의 정상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성일은 꼭대기에는 가지 못하고 중간쯤에서 집 쪽을 향해 옆으로 이동하면서 땅이나 나뭇가지를 살폈다.

성일은 삐라를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곳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삐라를 두 개 주으면 하나는 자신이 갖고 다른 하나는 여순을 주기로 했다.

당연히 여순은 삐라를 줍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담임 선생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숲속을 삼십 분 정도 헤맨 끝에 성일은 운 좋게도 삐라 하나를 주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기억한다. 마치 땅에 떨어진 오백원 지폐를 발견한 것 같은 흥분과 기쁨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것을 집을 때는 남의 것을 훔치는 것 같은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고 행여 누가 볼세라 얼른 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도 성일은 주변을 더 뒤졌다. 삐라는 한 곳에 무더기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바람에 날려 비슷한 지점에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성일은 처음 주운 장소 주변을 여러 번 돌고 돌았다. 이마에 땀이 나고 몸이 흠뻑 젖었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더는 찾을 수 없어 성일은 어두워지는 숲을 뒤로하고 집으로 달렸다. 걱정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너무 빨리 뛰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아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가시에 찔리고 넘어지면서 상처가 나고 흙이 묻었지만이런 일은 늘 있는 일이어서 아프지도 않고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하나의 삐라였다. 이것을 여순을 주어야 할지 아니면 자신이 가져야 할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는 그런 상태로 잠이 들었고 아침이 돼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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