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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시카고(2003)-환생한 마릴린 먼로가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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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시카고(2003)-환생한 마릴린 먼로가 춤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11.06 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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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는 다르다.(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한결같기를 원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다. 마음이 변한 것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남녀가 격한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볼일을 본 남자는 화장실을 간다.

여자는 열린 문틈으로 이제 말할 때가 됐다는 듯 그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한다.( 정확히는 요구.)

그런데 이 남자,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에게 여자의 말은 먹혀들까.

단지 몸뚱이만을 원했던 남자는 갖은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던 방금전의 일을 깡그리 잊었다.

그것을 바라고서 집안으로 끌어들였던 여자는 배신감을 느낀다. 대담하게도 남편이 일을 나간 사이에 사랑을 나눴는데 이럴 수 있나, 여자는 한 번 더 매달린다.

남자는 더럭 여자에게 짜증을 낸다. 심한 말을 퍼붓는다.

‘재능도 없고 뱁새 다리인 주제에 무대의 ‘디바’가 된다고. 꿈 깨라.‘

이때만 해도 여자는 그래도 하는 마음에 당신은 연줄이 있잖아, 하고 한 번 더 애원한다. 가구상이 무슨 연애인 기획사도 아니고 그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다 현혹하기 위해 쓴 거짓말이다. 그는 매정하게 떠나기 전 이렇게 쏘아붙인다.

’남편 온다, 몸이나 씻어라.‘

잡는 그녀를 쓰러뜨리는 남자. 자빠진 여자에게 한 번 더 귀찮게 굴면 눈을 파버린다고 쐐기를 박는다. 그 순간 여자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다.

'이 사기꾼.' 

그녀는 권총을 집어 들고 방아쇠를 당긴다. 한 발 두 발 세 발. 세 발을 가슴에 총 맞고 사는 남자는 없다. 아무리 그가 수완이 좋은 가구 판매상이라고 해도.

그녀 록시( 르네 젤위거)는 시카고 법정에서 교수형에 처할 위기다. 그런데 그녀에게 뜻밖의 기회가 온다.

여동생과 놀아난 자신의 남자, 이 둘을 동시에 처치한 벨마(캐서린 제타 존스)를 감옥에서 만났다.

▲ 록시 역의 르네 젤위거는 연기와 춤과 노래로 영화를 압도했다.
▲ 록시 역의 르네 젤위거는 연기와 춤과 노래로 영화를 압도했다.

록시는 그녀가 대단한 뮤지컬 가수이고 벨마가 만나는 변호사 빌리( 리차드 기어)는 승률 100%를 자랑한다는 것을 안다.

감방의 간수를 구워삶고 돈을 마련하면서 록시는 교수형 대신 사면을 위해 잔머리를 짜낸다.

그러는 사이 화려한 무대의 현란한 가수들은 신나는 재즈에 맞춰 열창에, ‘떼창’에 그야말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빌리를 통해 살아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록시는 이제 자신감이 붙었다.

‘강도를 죽인 건 살인이 아니다, 총을 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같은 신조어를 속사포처럼 쏘아 댄다.( 어디서 많은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술을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혹은 주먹질은 했지만 때리지는 않았다 같은 언어의 유희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록시는 이미 시카고 살인사건 역사상 가장 빠른 한 시간 만에 살인을 자백하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순진한 남편이 걸려든다. 남편은 아내를 믿는다.

가장에겐 가정을 지킬 권리가 있다는 전제를 달고는 ‘귀가하는데 놈이 창문을 넘고 그 시각 천사 같은 아내는 자고 있는데 마침 자신이 술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귀가해 놈을 잡을 수 있었다’고 아내의 거짓말을 그대로 따른다.

록시는 그런 남편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첫 곡을 대중 앞에서 부른다면 남편에게 바치는 노래가 될 터. 내가 옳거나 내가 틀리거나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을 위해 목젖이 터져라 외치는 록시.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강도였다는 거짓은 들통이 나고 아내와 가구상은 서로 알고 있던 사이로 일주일에 세 번씩이나 놀아났던 것.

남편은 하루 14시간씩 가정을 위해 정비소에서 일했건만 아내는 애가 다섯이나 있는 유부남과 정을 통했다. 뒤늦게 울부짖는 남편은 기가 막히다.

이제 록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올가미 신세다.

감옥에는 그녀말고도 우유 대신 농약을 먹여 죽이고 엽총으로 살해하는 등 모두 6명의 미녀들이 벨라나 록시처럼 죽음을 대기하고 있다. 모두 그놈 때문에 죽였다.

그들 역시 죽였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교수형 대신 무대위의 춤과 노래는 물 건너가고 시시각각 집행의 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앞서 변호사 빌리를 언급했다. 이제 그가 본격적으로 등판할 차례다. 구원투수로 나선 그는 돈만 주면 영혼이라고 기꺼이 팔아 변호할 인물이다.

쇼킹한 뉴스에 호들갑을 떠는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유리하게 몰고 가는 것은 그가 잘 써먹는 수법이다.

록시의 출생지는 닭장이 아니고 아름다운 남부의 어느 수녀원으로 포장된다.

그래야 배심원의 동정심을 더 유도할 수 있다. 이제부터 록시의 모든 것은 빌리 연출로 완벽하게 꾸며진다.

이쯤되면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친절한 영화평이지만 더는 내용을 주저리, 주저리 읆지 않을 생각이다. 이런 영화는 글이 아닌 눈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춤과 노래, 율동과 박자, 능청과 관능, 섬뜩함과 온정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관객에게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은 진실보다는 허세만 쫓는 언론이다.

수많은 언론이 엑스트라로 동원돼 색다른 눈요기를 주는데 어떤 경우는 록시나 벨마의 춤과 노래를 따돌릴 때가 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양념일 뿐 메인은 무대를 꽉 채우는 록시의 완벽한 카리스마다.

그녀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짧은 의상을 입고 무대 중앙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며 나올 때는 마치 죽은 마릴린 몬로가 살아서 돌아온 느낌이다.

환생한 마릴닌 몬로가 바로 록시 르네 젤위거가 되겠다.

그녀와 짝을 이룬 벨마 케서린 제타 존스와의 갈등과 질투, 화해와 협력은 영화가 할리우드의 공식에 맞게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들었는지 입을 쩍 벌어지게 한다.

국가: 미국

감독: 롭 마샬

출연: 르네 젤위거,캐서린 제타존스, 리차드 기어

평점:

: 세상에 비즈니스 아닌 것은 없다. 매정하다 하겠지만 이런 것이 세상 이치 아니더냐. 롭 마샬 감독이 만든 <시카고>는 그렇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돈이면 만사 오케이다. 살인도 돈으로 사고 죄도 돈으로 거래한다. 모든 것은 합법적이다.

내 사전에 패소는 없다는 타락한 변호사는 살인은 했으나 범죄는 아니다, 라는 사실을 법정에서 입증시켰다.

검사와 판사는 물론 12명의 배심원을 손쉽게 녹여낸 결과였다.

불리하면 정의가 죽었다고 외치고 아무리 시카고라도 이런 법이 없다고 눈알을 부라린다.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따로 없다.

재판을 서커스의 세계로, 쇼의 무대로 만든 감독의 능력이 대단하다.

야단법석 시끌벅적 난장판이라도 거기에는 따뜻한 웃음이 있고 다정한 노래가 있는 반전에, 반전의 연속이 이 영화의 또다른 매력이다. 이것이 정치판과는 다른 영화판만의 여유다.

뮤지컬은 자기의 인생이 무엇인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렇게 살라고 시카고 올빼미족들에게 꼰대짓을 마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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