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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하나에 성일은 엄청난 심적 변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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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하나에 성일은 엄청난 심적 변화를 느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1.03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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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는 뒤를 돌아보기 까지 했다.

그곳을 놓칠리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성일은 그 때 자신이 제법 컸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모자를 벗었다. 달리면서 비뚤어진 교모를 바로 세웠다가 손에 들었다. 모자의 가운데에 박힌 중자가 선명한 한자로 써있었다.

싱긋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이 모자를 쓰고 싶었던가. 머리에 맞지 않는 형의 모자를 쓰고 거울 앞에서 숱한 경례를 했다.

마침내 그날이 온 것이다. 그는 후크를 바로 채웠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로마 숫자 1을 내려다 봤다. 이것이 두 개면 중2고 세 개면 중 3이었다.

두 개는 힘이 있었고 세 개는 위엄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중 3형들은 막 들어온 신입생 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성일도 그들을 감히 마주 쳐다볼 용기를 내지 않았다. 중1이 되자 어서 중 3이 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접힌 팔에 걸린 가방을 보고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가방은 꼬마에서 어른이 된 것 과 비교할 만 했다. 어른이 되고 마음도 붕 뜨고 성일은 이런 날만 계속됐으면 했다.

'중학교 가면 가방 사주마.'

용순은 그 약속을 지켰다.

끈이 두 개 달린 가방을 들었을 때 성일은 먼 세계에 홀로 던져진 느낌을 받았다. 이제부터는 나도 중학생이다. 혼자여도 살 수 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가방 하나에 이런 엄청난 심적 변화가 왔다.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묶고 뛰었던 것이 바로 몇 개월 전이다. 이제 도시락에서 나는 덜그럭 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책보와는 이제 영영 이별이다. 허리에 매거나 어깨에 책보를 가로 지른 초등학생들을 보면서 성일은 애들과는 어울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는 그런 마음으로 달리기 보다는 몇 걸음 걸어 나가다 다시 돌아왔다.

표식을 확인하기 보다는 여순이 남긴 어떤 흔적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싸구려 분냄새는 아니어도 어떤 것이라도 남겨 놓았을 거라는 기대로 주변을 한 번 더 살폈다.

모든 것은 아니어도 작은 것이라도 있는지 발로 땅을 툭툭 치기도 했다. 이것은 부끄러운 짓은 아니었다. 뒤쪽에서 아이들 소리가 왁자지껄 들렸다.

언 듯 들은 소리는 같은 반 아이라고 짐작했으나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내쳐 달렸다. 오늘은 그들과 같이가고 싶지 않았다.

홀로 달리면서 그는 모자 속의 땀과 팔둑에서 흔들리는 가방의 감촉을 느꼈다. 그것은 손에 든 쇠똥구리가 기분좋게 손바닥을 긁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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