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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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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0.23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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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두를 한 번 타자는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반장은 무당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편하게 마음 먹었다.

점이라는 것은 억지로 해서는 괘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반장은 어릴 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그래서 그는 권총을 꺼내 위협하는 대신 소식이 오고 인생의 정점에 다다른다는 무당의 말을 위안 삼았다.

그러나 기다리던 소식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반장은 말끔한 양복으로 갈아입고 군단장이 있는 철원으로 갔다. 삼 일 후에 온 그는 면회도 하지 못하고 문전 박대를 당했다. 그는 울분을 토했으나 그 뿐이었다.

마을에 눌러 앉아 있는 것도 시들해 졌다. 시골 구석에서 양반 노릇하고 머슴을 부리는 것이 성이 찰 리가 없었다. 자신이 사들인 마을 앞 논을 둘러 보는 것도 쓸쓸한 그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닥치는대로 논을 샀던 기세도 한 풀 꺾였다. 팔지 않으면 협박해서라도 논을 사들인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돌아보니 마을 앞 들판은 거의 다 반장네 논이었다. 논 사기를 마친 그는 집을 짓기 시작했다. 기와집이었는데 말그대로 고래등 같은 집이었다.

뒷산의 오래 묵은 소나무가 수도 없이 베어졌다. 일제 강점기도 견딘 기둥이 붉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여지 없이 잘려 나갔다.

목수라는 목수는 총동원 됐다. 마을사람들도 너나없이 그집 품을 팔았다. 말이 품이지 공짜 노동에 자발적으로 동원됐다.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렸다. 겨울이 오기 전에 집은 완성됐다. 그는 그 집에 들면서 새로 첩을 두었고 머슴을 세명으로 늘렸다.

공식 첩외에도 읍에 다른 첩이 있어 그는 손가락 세 개를 펴면서 술 취하면 여편네가 셋이라고 흔들었다.

그는 하루는 본실에서 다른 하루는 읍내서 또 다른 하루는 죽골에서 시오리 떨어진 황교에서 보냈다.

그가 떠난 날은 동네가 조용했다. 돌아오면 다들 고개를 굽신거렸고 무슨 행패를 당할지 몰라 마주치기를 꺼렸다.

정태도 마찬가지였다. 논을 팔지 않는다고 쏘아보던 그 눈을 생각하면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앞 들판에서 유일하게 닷마지기 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태네 뿐이었다.

그는 두려워 한 번 더 팔라고하면 마지 못한척 하면서 팔 생각이었다. 그 돈으로 이웃마을 논을 살 수 있다.

조금멀고 힘들지만 농사를 못지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반장은 더이상 정태에게 논을 팔라는말을 하지 않았다.

읍내서 먹은 술과 그 술 때문에 했던 말들 가운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정태는 기억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달리 끄집어 낼 만한 것이 없었다.

술을 따라 주려고 했으나 그러지 말라면서 각자 알아서 먹자고 한 것이 기분 상할 리는 없다. 술 먹을 때는 누구에게나 이런 식으로 대한다고 호탕하게 웃지 않았던가.

소문을 내서 그의 귀에 들어간 내용이 헐뜯거나 비웃는 것도 있을리 없다. 입이 무거운 정태는 같이 있었던 사실조차 용순말고는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다.

그가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듯이 거만하게 말하고 저 혼자 지껄인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다른 사람앞에서 보이는 잘난척 하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태는 그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는 똥처럼 더럽기도 했거니와 무섭기도 했다.

피할 수 없어 자리를 같이 하고 있을 때는 똥밟은 기분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그를 안다고 해서 이제는 나쁠 것이 없다는 쪽으로 생각을 달리했다.

화 낼 때 한 말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하자 어쩌면 자신이 빠져나올 수 없는 위기에 처하면 반장이 구해줄지도 모른다는 그럴싸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군단장의 부름을 원했던 것은 반장뿐이 아니었다. 정태 역시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을 정도로 반장이 군인이 돼 철원이든 어디든 멀리 떠나가기를 바랐다.

마을 사람 모두가 원하는 것이었다. 눈앞에서 꺼져 버렸으면 하는 심사가 가득했다. 그런데 일은 뜻밖에도 싱겁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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