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1-12-05 07:32 (일)
380. 추격자(2007)-친절함에 대하여
상태바
380. 추격자(2007)-친절함에 대하여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10.22 0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를 보는 내내 1960년에 제작된 <싸이코>의 주인공 노먼 베이츠(앤서니 퍼킨스)가 떠올랐다.

영민(하정우)이 바로 그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든 것이다. 차분하고 점잖은 말투, 예의 바름에 있어 둘은 거의 일맥상통한다.

거기다 잘생긴 얼굴, 잔잔한 표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만 보면 이들이 살인마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닌 척하는 표정이, 실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두 배우의 천연덕스런 연기력 덕분이다. 그래서 보는 관객들은 더 소름이 돋는다.

차라리 악마처럼 험상궂게 생기고 온몸에 문신을 덕지덕지 발랐다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생긴 것과 노는 것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감독은 주연 배우를 고를 때 이런 점도 세심하게 고려했을 터.

여기서 잠시 <싸이코>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일단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때는 바야흐로 거리의 여자들이 넘쳐나는 2007년 서울 유흥가.

역사와 사건이 이루어지기 딱 좋은 밤거리에 행인을 유혹하는 호객 행위가 분주하다. 반라의 여성 사진이 명함에 박혀 있고 그 명함은 차 앞 유리에 수북이 쌓인다.

하룻밤 사랑에 들뜬 사내들이 전화를 걸면 중호(김윤석)가 데리고 있는 여자들을 호출한다. 이른바 출장안마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갔던 여자들이 돌아오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개는 도망가거나 다른 곳으로 팔려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감이 좋지 않다. 중호는 어떤 직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뿐 재촉하는 손님을 위해 여자를 대야 하는 중호는 아프다는 핑계로 하루 빠지겠다는 미진을 닦달한다.

오빠, 오늘만 쉴게.’

미진은 애걸한다.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중호에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그냥 핑계일 뿐이다.

불호령이 떨어지고 미진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그 옆에는 어린 딸이 불안한 시선으로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본다.

미진을 호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영민이다. 앳된 얼굴에 조심성 있는 그는 그녀들이 좋아할 타입이다. 예의와 품격을 갖춘 영민을 따라 나서는 미진의 발걸음은 가볍다.

그러나 중호의 전화를 받고나서 상황은 급변한다.

중호는 말한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주소를 문자로 보내라고.

화면은 바뀌어 영민은 미진을 데리고 마포구의 어느 단독주택으로 안내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문을 닫고 계단을 오르는 동안 보여주는 카메라 앞에 영민은 무표정하나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모습이다.

미심쩍지만 미진은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마침내 현관문이 잠긴다. 중호의 지시대로 미진은 문자를 보내기 위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영민을 안심시킨다.

의자에 앉은 영민의 단정한 모습이 급하게 문자를 보내는 미진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문자는 보내지지 않는다. 통신사 안테나가 이곳에는 미치지 못한다. 미진은 당황한다.

그러나 차분하게 차에 콘돔을 놓고 왔으니 잠깐 갔다 오겠다고 기지를 발휘한다.

이때 관객들은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나 그 안도 오래가지 않는다. 현관문은 굵은 열쇠로 잠겨있다.

순간 그럴 줄 알았다는 영민의 비웃음과 당황한 미진의 공포가 화면을 압도한다.

▲ 하정우(좌)의 차분한 연기가 돋보인다. 그가 이런 저런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서 관객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 하정우(좌)의 차분한 연기가 돋보인다. 그가 이런 저런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서 관객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연락을 기다리다 지친 중호는 미진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안다.

어찌어찌하다 미진의 차를 발견한 중호는 그러나 어느 집으로 미진이 들어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 접촉사고가 나고 상대차의 운전자가 범인임을 직감한다. 영화 초반에 법인이 잡히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중호의 이력을 잠깐 보자. 그가 어떤 촉으로 쉽게 범인을 잡았는지 알기 위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전직 형사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경찰을 나온 것은 아니다.

남의 돈을 먹고 다른 사람의 등을 치다 적발됐다. 쫓겨난 그는 개과천선하기보다는 배운 게 도둑이라고 여전히 못된 짓을 일삼는다.

여자장사는 불법이라 경찰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할 터.

그는 경험을 살려 동료, 선후배 경찰에게 수시로 상납하면서 그 대가로 단속 정보를 얻고 저지른 불법을 탕감받고 있다. (이런 장면은 없으나 틀림없이 그럴거다.)

평소 기름칠을 열심히 한 덕분인지 그는 경찰을 상대로 안하무인 행동을 한다.

무능하고 여전히 부패한 경찰은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다. 이쯤해서 관객들은 범법자 중호를 영웅시하면서 경찰들을 잡범처럼 무시한다.

범인을 잡는 것은 공권력이 아니라 바로 중호이기 때문이다. 이후 중호는 다른 영화에서와 비슷하게 인간미와 따스함으로 결말을 장식한다.

중호가 죽은 미진의 어린 딸을 간호하는 장면은 잔인한 살인마와 대비되는 놀라운 미덕이다.

국가: 한국

감독: 나홍진

출연: 김윤석, 하정우

평점:

: 앞서 <싸이코>의 앤서니 퍼킨슨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좀 더 할까 하는데 갑자기 또 다른 살인마가 떠올랐다.

이 영화와 같은 해 나온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하비에르 바르뎀)가 바로 그다. 그는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자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산소통으로 죽인다.

친절이 죽어야 하는 이유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죽어가던 미진의 숨통을 끊기 전 영민은 자신에게 다정한 슈퍼 주인을 망치로 때려죽인다.

이처럼 살인마들의 살인 동기라는 것은 딱히 없다. 그냥 죽이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 전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지 등을 묻기도 한다.

이것은 살려 주려는 시도가 아니라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범죄 분석관과의 대화에서 영민의 발기불능이 원인의 하나라고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오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연쇄 살인마의 살인은 잡히기 전까지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