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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10-26 06:02 (화)
반장은 일 년이 지나도 그대로 마을에 눌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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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은 일 년이 지나도 그대로 마을에 눌러 있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0.12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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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안 죽었다.’

반장이 남은 잔을 비우고 혼자 따랐다. 정태가 손으로 받쳐주는 시늉을 했다.

‘한 번 더 기회가 있을 거야. 그때까지는 시골에 처박혀 있어야지.’

반장은 군단장이 자신을 찾을 것이라고 믿었다. 반드시 그럴 거라고 확신한 것은 무언가를 향한 그의 야망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을 내야지.’

그는 술에 취하면 늘 이런 식의 말을 했다.

그 일이라는 것이 작은 것은 아닐 터. 군단장에게 큰 일이라면 대장 승진이거나 그보다 윗선일 것이다. 승진은 일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일이 오는 것이고 보면 그가 노리는 것은 분명히 따로 있었다.

그 말이 얼마나 깊은 뜻이 있는지 알고 있기에 군단장은 많은 사람 앞에서는 떠들지 않았다. 입이 무겁고 진중한 반장 하고만 있을 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반장은 그가 그 말을 하면 언제나 이렇게 받았다.

‘목숨을 걸겠습니다.’

그다음 말도 항상 같았다. 그러면 결의로 가득 찼던 군단장의 상기된 구릿빛 얼굴이 미소로 변했다.

‘내가 널 믿지. 지리산 토벌 대장.’

군단장은 어깨를 툭, 툭쳤다. 지휘봉이 옆에 있으면 그것을 썼고 없으면 손바닥을 이용했다. 그는 기분이 좋으면 대대장이나 어이 이 중령 같은 직책 대신 언제나 지리산 토벌대장이라고 불렀다.

대장이라는 말 때문에 반장도 그 표현이 싫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목숨 아까운 줄 몰랐다.

지금 같으면 그런 저돌적 공격이 가능했을까. 간혹 반장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지리산과 토벌대장에 늘 감사했다.

‘토벌만 빼면 대장 아닌가. 나도 별 한 번 달아야지.’

반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뭘 그렇게 혼자 궁시렁대냐고 정태가 불쑥 물었다. 반장은 정신이 돌아온 듯 내가 이런 촌구석에 얼마나 있을 거 같니? 이렇게 물어놓고 ‘나 곧 이곳 뜬다.’ 고 대답했다.

정태는 놀라는 시늉을 했으나 그 소리가 반갑다.

‘너 같은 놈은 빨리 사라질수록 좋지.’

그러나 입에서 나온 말은 좀 쉬어, 그동안 고생했잖니? 반장이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가 정태의 속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긴장을 풀고 싶었다. 취했어도 언제나 멀쩡한 듯한 태도를 놓아도 문제없다.

눈치 본다면 이는 자신과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것이다. 반장은 모처럼 기분 좋았다. 그러려고 작정했기 때문인지 그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했다.

‘구석에 몰리면 연락할 거야’.

무슨 말이냐는 정태의 대꾸에도 반장은 그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군단장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는지 일 년이 지나도 반장은 그대로 마을에 눌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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