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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1-20 08:57 (목)
정태는 정말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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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는 정말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0.1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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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장군처럼 반장은 동네에서 활개쳤다. 그를 말릴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오고 다음 날 면장이 그의 집을 다녀갔고 경찰서에서 몇 사람이 와서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동네사람들은 그를 슬슬피했다. 더럽다기보다는 무서워서 였다. 괜히 걸려들어 낭패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직감은 순박한 농촌 마을사람들을 얼어 붙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정태는 마을 회의가 열리는 날에 반장을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돌아온 반장은 다시 반장이 됐다. 그는 그러나 마을 일보다는 읍내로 자주 출타했다. 홍성도 가고 대전도 가고 어떤 때는 서울로 가서 여러 날 묵기도 했다.

한번은 길을 가다 정태와 정면에서 마주쳤다. 피하려다가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정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을 발견한 쫒기는 범인처럼 도망가려다 그럴 수 없어 멈칫한 형국이었다.

그럴것 없다는 듯이 다정하게 다가온 그는 정태를 끌고 한쪽으로 비켜서서는 내일 읍내에 가는데 술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목소리는 권유하는 투였으나 거절하기 힘든 어떤 힘 같은 것이 있었다.

오랜만에 동네 친구와 술이나 한잔하고 그동안 밀린 회포나 풀자고 했다. 정태는 그것이 제의가 아닌 명령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러마, 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용순에게는 하지 않았다. 굳이 해서 걱정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딱히 위험한 일도 아니라는 판단이 섯다. 다음날 두 사람은 막걸리를 앞에 놓고 앉았다.

잔이 여러 순배 돌았다. 정태는 이미 취기가 오른 상태였으나 반장은 이제 시작인 듯이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그 얼굴 그대로 의자를 당겨 정태 가까이로 간 반장은

‘혁명 전까지는 들어서 알고 있제.' 하고 말했다.

‘내 활약상 말이여. 모른다고?’

정태는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듯이 빤히 그를 쳐다봤다. 왜 모르겠는가. 다는 몰라도 서울에서 큰 변고가 있었고 나라님이 외국 섬으로 도망친 그 사건은 알고 있다.

반장은 마치 그날의 현장에 있는 듯이 정태에게 말했고 정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장이 생각보다 큰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자신도 모르게 존대하는 말을 쓰기도 했다.

반장은 광화문 광장 앞에서 벌어진 그 부분은 간단히 넘어갔다. 경무대 앞까지 갔던 일, 총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쓰러지는 일들은 입가심으로 슬쩍 흘렸다.

정태가 소문으로 들었던 내용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었다. 궁금한 것을 정태는 묻지 않았다.

반장은 큰 눈으로 왜 묻지 않느냐, 더 궁금하지 않느냐, 말하면 대답해 줄것 같은 표정을 지었으나 정태는 다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은 어쨌거나 쉬지 않고 말했다. 큰 소리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소곤거리지도 않아 정태는 반장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옆자리의 다른 손님들은 자신들의 일에 서로 빠져들어 반장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옆자리를 힐끗 바라본 반장이 소리 나게 트림을 한 후 다시 정태에게로 눈을 돌렸다.

소위로 진급한 반장은 토벌 이후 승승장구했다. 일 년 후 중위가 됐고 다시 6개월 후 대위 계급장을 달았다.

소령으로 진급한 것은 군사 정변이 일어난 61년 5.16 직후였다. 그 사이 대대장은 별을 달고 33사단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부관이 돼 사단장의 수족처럼 움직였다. 부평에 진을 치고 있던 사단장 부대는 그날 밤 한강을 넘었다. 그리고 경무대를 1시간 30분 만에 장악했다.

사단장은 그 공로로 별 하나를 더 달았다. 소령은 중령이 됐고 대대장이 됐다. 그의 앞길은 보장된 듯했으나 거기까지였다.

사단장은 그를 더 밀어주지 않았다. 줄이 끊어지자 그는 낙심했다. 사단장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의 면담을 거절했다. 그 직후 그는 별 셋의 군단장으로 올라갔다. 이후 반장의 대대는 사고가 이어졌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눈 밖에 난 대대장 부대의 작은 실수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연대장은 그를 나무랐다. 몇 번의 질책이 이어졌고 그는 보직 해임됐다.

반장은 직감했다. 이것은 음모라고. 음모를 안 이상 그는 더 버틸 수 없었다. 음모에 걸려든 자의 최후가 어떤지 반장은 잘 알고 있었다.

버티면 버틸수록 상처는 더 커지고 회복할 수 없었다. 그는 과감히 군복을 벗기로 했다. 자신이 엮었던 자의 최후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반장은 한숨을 쉬었으나 그 한숨 속에는 배신감에 대한 어떤 복수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유도 모르고 잘린자의 억울함이 묻어 있었다.

불콰한 얼굴에 곧 튀어 나갈 것 같은 두 눈이 앞으로 쏠렸다. 급소를 물린 짐승의 놀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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