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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5 06:37 (목)
늦가을 햇빛을 받은 검이 반짝하고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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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햇빛을 받은 검이 반짝하고 빛났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0.07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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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않아야 한다는 철칙을 지키지 못해 반란군 대장은 가족이 몰살당했다.

모른 척하고 냉정했더라면 어땠을까, 결코 꿈속에서라도 바라지 않았을 이런 수모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피 묻은 옷과 가련한 자신을 꿈결처럼 바라봤다.

'이것은 현실이다. 나는 곧 죽을 운명이다. 그러다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내는 살아있다. 그러니 부모님 제사는 지내 줄 것이다.'

심약한 그녀가 겪을 일에 대한 걱정보다 그는 부모를 먼저 생각했다.

새로운 희망이 생기자 반란군은 잠시 정신이 들었다. 그가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하늘이 보였다. 그 사이로 뭉게구름이 떨어진 살점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날렸다.

'나는 매달려 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다시 정신 줄을 놓고 늘어졌다. 곧 숨이 떨어질 것처럼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렁, 그르렁 하는 호흡이 길게 혹은 짧게 몇 번 반복됐다.

반장은 일어서서 그의 귀로 다가갔으나 귀를 자르지는 않았다.

‘형수는 내가 보살피겠다.’

이 말은 죽어가는 그에게 위로라기보다는 극도의 분노를 일으켰다.

‘산 사람은 살아야제.’

반란군은 그를 의심했다.

반장은 말했다.

‘그래 내가 했다. 다 내가 꾸몄다.’

반장은 나는 실토했는데 너는 왜 그러지 못하느냐는 투로 빈정거렸다.

‘네 부하도 불었다’.

포로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러자 반장은 최후의 반란군 대장을 통닭이 전체적으로 잘 익기를 바라듯이 한 바퀴 돌리라고 지시했다.

어디를 잡고 돌려야 할지 몰라 부하들은 망설였다. 잡을 만한 곳은 상처투성이였고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쉽게 할 수 있는 몸통 말고 나무의 양 끝을 들었다가 그대로 쿵 하고 내려놓았다.

묶인 자가 어이가 없어 웃었으나 그것이 반장의 비위를 샀다. 매달린 채로 그는 주먹세례를 받고 정신을 잃었다.

벌건 대낮에 주민들이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는 해산을 원하지 않았고 되레 더 많은 인파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반란군에게 수통의 물이 뿌려졌고 눈을 뜬 그는 죽여 달라고 외쳤으나 그 소리는 입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얼추 사람들이 들이차자 그는 습관처럼 대검을 꺼내 들고는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늦가을 햇빛을 받은 검이 반짝하고 빛났다.

‘열까지 셀 동안 기회를 주겠다. 아니면 네 껍질을 벗기겠다’.

나무에 매달린 그는 대롱거리면서 반장이 알고 있는 것 그가 알고자 하는 것 기대하는 말까지 수십 번 했던 말을 한 번 더 할 수 없어 입을 닫았다.

군중들 가운데 하나가 빨갱이 새끼 돌로 쳐 죽이라고 고함을 쳤다.

돌로 맞기도 전에 그는 이미 여러 대 맞은 듯 축 처졌다. 빨갱이라는 말이 남아 있던 희미한 의식의 끈을 삼켜버렸다.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래서 체념했다. 그러자 공포와 고통은 사라졌다. 몸에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그를 아래로 당기는 중력은 사라졌다.

반장의 대검 끝이 그의 이마 한가운데를 노렸다. 잠시 후 반장은 뒤로 돌아 반대쪽을 줄 맞추듯이 이마에서 했던 것처럼 똑같이 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한 발짝 물러났다. 돌로 쳐 죽이라던 외침은 침묵했다. 그런 군중을 향해 반장은 소리쳤다.

‘잘 봐둬, 이게 빨갱이의 최후야’.

반장의 잔혹함에 상부도 놀랐다.

대대장은 보통 놈이 아니다, 라고 중얼거렸다.

‘적당한 기회에 써먹고 버려야지’.

대대장은 이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약속대로 그를 장교로 진급시켰다. 그날 저녁 반장은 친척 형 집의 세간을 자신의 집으로 옮겼다.

그리고 붉은 낙인을 찍은 그 집에 불을 질렀다. 불이 번지기 전에 반장이 군화를 신은 채 안방으로 들어갔다.

‘형수님, 제가 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부인은 소복을 입고 들보에 매달려 남편처럼 대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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