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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9-29 06:02 (목)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시작한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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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시작한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0.05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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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좋았던 것은 옛날 일이다. 심사가 뒤틀린 지금 그 시절은 되레 마이너스다.

‘너와 나의 시절은 끝났어.’

반장은 서둘렀다. 질질 끌 이유가 없었다. 이 게임은 삼세판이 아닌 단판 승부다. 그것도 한두 시간 만에 끝나는.

그가 서두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렸다. 이 고비만 넘으면 된다.

대대장은 그를 신뢰하고 있다. 자백이 늦어지면 대대장은 둘의 이전 관계에 대해 이상한 눈초리로 캐물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엮어야 한다. 내통 사실은 자백으로 확인하면 된다. 언제 어느 때 누구와 연락을 취했는지 적어 놓으면 끝이다.

반장은 다른 포로가 자백했다고 윽박질렀다.

조서는 이미 꾸며졌다. 그가 그렇다고 자백하고 사인하기를 반장은 기다릴 수 없었다.

반장은 불에 지진 대검 끝으로 반란군의 눈을 노리고 다가갔다. 여차하면 그대로 쑤셔 버릴 심산이었다.

그러기 전에 반장은 비바람이 불던 어느 밤 빨간 뱀에 감긴 그녀의 꿈을 꿨던 것을 상기했다. 그리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아랫도리로 가져갔다.

‘녀석만 없다면.’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미친 세상에 환호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이런 세상이라면 죽은 자의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는 혼자 묻고 혼자 대답했다. 너무 좋아서 속으로 하던 말을 하마터면 밖으로 뱉을 뻔했다.

그는 딱 삼십 분을 고심한 후 반란군이 들어갈 무덤을 팠고 그 무덤 속으로 친척 형을 몰아넣었다. 부하를 잃은 대대장은 빠져나올 이유를 확인했고 그런 일을 꾸민 반장을 신뢰했다.

‘어차피 세상일이 그런 것 아닌가. 우리 모두는 사심 때문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반장은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시작된 일이 어서 끝나기를 바랐다.

‘빨리 말해,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말하게 될 거야.’

반장이 겨눈 칼로 반란군의 얼굴을 조금 찔렀다. 지지직, 소리와 함께 살이 타는 냄새가 주변으로 번졌다. 반란군은 옅은 비명을 지르고 눈을 감았다.

공 네 시 삼십 분 진압군의 기습공격은 실패했다.

쫓기는데 신물이 난 반란군들은 도망가는 대신 매목을 택했다. 진압군은 일부러 그러기로 작정한 듯 정확히 매복 지점으로 걸어왔다.

그것도 소란스럽게 말이다. 설마가 사람 잡았다. 사 미터 앞에 오자 반란군 대장이 소리쳤다.

‘지금이다. 지금이다.’

뱀사골은 금세 피로 물들었다. 겨우 십삼 분 전투에서 진압군 사망자가 무려 14명이 나왔다.

반장은 실패가 모두 자신의 책임인 양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 상황실장의 문을 두드렸다.

‘조직 내에 적들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 작전이 사전에 노출됐으니 조직 내에 빨갱이를 잡아야 한다. 어젯밤 뱀사골 작전과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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