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시작한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상태바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시작한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0.05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없이 좋았던 것은 옛날 일이다. 심사가 뒤틀린 지금 그 시절은 되레 마이너스다.

‘너와 나의 시절은 끝났어.’

반장은 서둘렀다. 질질 끌 이유가 없었다. 이 게임은 삼세판이 아닌 단판 승부다. 그것도 한두 시간 만에 끝나는.

그가 서두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렸다. 이 고비만 넘으면 된다.

대대장은 그를 신뢰하고 있다. 자백이 늦어지면 대대장은 둘의 이전 관계에 대해 이상한 눈초리로 캐물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엮어야 한다. 내통 사실은 자백으로 확인하면 된다. 언제 어느 때 누구와 연락을 취했는지 적어 놓으면 끝이다.

반장은 다른 포로가 자백했다고 윽박질렀다.

조서는 이미 꾸며졌다. 그가 그렇다고 자백하고 사인하기를 반장은 기다릴 수 없었다.

반장은 불에 지진 대검 끝으로 반란군의 눈을 노리고 다가갔다. 여차하면 그대로 쑤셔 버릴 심산이었다.

그러기 전에 반장은 비바람이 불던 어느 밤 빨간 뱀에 감긴 그녀의 꿈을 꿨던 것을 상기했다. 그리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아랫도리로 가져갔다.

‘녀석만 없다면.’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미친 세상에 환호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이런 세상이라면 죽은 자의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는 혼자 묻고 혼자 대답했다. 너무 좋아서 속으로 하던 말을 하마터면 밖으로 뱉을 뻔했다.

그는 딱 삼십 분을 고심한 후 반란군이 들어갈 무덤을 팠고 그 무덤 속으로 친척 형을 몰아넣었다. 부하를 잃은 대대장은 빠져나올 이유를 확인했고 그런 일을 꾸민 반장을 신뢰했다.

‘어차피 세상일이 그런 것 아닌가. 우리 모두는 사심 때문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반장은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시작된 일이 어서 끝나기를 바랐다.

‘빨리 말해,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말하게 될 거야.’

반장이 겨눈 칼로 반란군의 얼굴을 조금 찔렀다. 지지직, 소리와 함께 살이 타는 냄새가 주변으로 번졌다. 반란군은 옅은 비명을 지르고 눈을 감았다.

공 네 시 삼십 분 진압군의 기습공격은 실패했다.

쫓기는데 신물이 난 반란군들은 도망가는 대신 매목을 택했다. 진압군은 일부러 그러기로 작정한 듯 정확히 매복 지점으로 걸어왔다.

그것도 소란스럽게 말이다. 설마가 사람 잡았다. 사 미터 앞에 오자 반란군 대장이 소리쳤다.

‘지금이다. 지금이다.’

뱀사골은 금세 피로 물들었다. 겨우 십삼 분 전투에서 진압군 사망자가 무려 14명이 나왔다.

반장은 실패가 모두 자신의 책임인 양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 상황실장의 문을 두드렸다.

‘조직 내에 적들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 작전이 사전에 노출됐으니 조직 내에 빨갱이를 잡아야 한다. 어젯밤 뱀사골 작전과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