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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0-02 15:58 (일)
기관총 사수가 죽자 파죽지세로 소대장의 병력이 정상을 탈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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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총 사수가 죽자 파죽지세로 소대장의 병력이 정상을 탈환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9.24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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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왔던 길을 거슬러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건물의 계단을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모르는 새에 광천에 도착했다. 새우젓 배들이 막 들어오는 밀물을 타고 그야말로 밀물처럼 들이닥치고 있었다.

일사 후퇴 때 적의 일제 공격이 이와 같았을까. 정태는 또 한 번 담임의 희생을 떠올렸다.

그는 왜 안전한 후방을 버리고 자원입대했을까. 제자는 뒤로 밀고 자신은 왜 죽음 앞으로 돌진했을까. 정태는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했다. 아마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특유의 새우 젖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갑자기 시장기를 느낀 정태는 그제서야 소고기도 모시옷도 그대로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고기와 새우젓 한 단지와 바꿨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국밥을 사 먹었다. 뜨거운 김 사이로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렀다.

선생님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서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고 자랑하고 싶었으나 담임은 이제 세상에 없었다.

자신은 살려주고 자신은 죽었다.

정태는 그가 왜 자원입대를 했는지 후방에서 안전한 삶을 살지 않고 전쟁터에서 죽었는지 이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기도 한 듯 죄책감이 들었다.

병사계는 떠나려는 정태를 잡아 앉히고는 잠시 죽은 담임이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말했다.

그 전에 얻어먹은 소고기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했는지 정태가 잘 모르는 것 같은 장면에서는 유가족에게 설명하듯이 자세하게 덧붙였다.

정태는 죄인 된 마음으로 울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젊은이를 쳐다봤다. 그는 마치 바로 옆에서 소대장의 죽음을 목격한 것처럼 사뭇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꾸민 듯한 비장감 어린 말투를 섞었다.

1951년 7월 휴전을 앞두고 중부 전선의 전투는 더욱 치열했다. 특히 백마고지는 서로 차지하려는 적과 아군의 피로 벌겋게 물들었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이 바뀌었다.

2억 평에 달하는 철원평야를 차지하려는 집념은 양쪽 모두에게 있었다. 곡식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격전 현장에 병사들의 무덤은 산보다 높이 쌓였다.

막 소대장으로 전투에 참가한 담임은 전날 태극기를 꽂았던 자리가 다음 날 인공기로 바뀐 것을 보고는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내일 다시 태극기를 꽂자고 다독이고 격려하고 몰아붙였다.

10일간 전투에서 24차례 주인이 바뀌는 그 마지막 날이 밝았다.

소대장이 완전무장을 하고 새벽 여명을 타고 395고지의 390미터 지점에 도달했을 때 현장은 격전지답지 않게 조용했다.

태풍 전야처럼 고요함이 고지 정상을 애워싸고 있었다. 하지만 곧 죽음의 광풍이 불어올 것이다. 첨병은 적이 지쳐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싸울 태세라고 보고했다.

소대장은 결심해야 했다. 지금 하느냐 아니면 조금 뒤로 시간을 미루느냐 하는 간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는 시계만 바라볼 뿐 좀처럼 돌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린 소대원들은 흙냄새를 맡으며 잠시 고향을 생각했다. 그러나 명령이 떨어지는 소대장의 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소대장은 손을 들었다. 그것이 앞으로 빠르게 달려가면 공격은 시작이다. 그러나 소대장은 든 손을 다시 아래로 내렸다.

성질 급한 대원 하나가 총구의 방아쇠를 거의 당길 무렵 급하게 손가락에서 힘을 뺐다. 다행히 총은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휴, 하는 소대장의 안도감 같은 한숨 소리가 바로 옆에 있던 일분대장의 귀에 들어왔다 . 그는 질문 대신 눈으로 왜 그런지 말해 달라는 듯이 소대장을 쳐다봤다.

소대장은 일 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듯이 검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시계로 다시 시선을 고정했다. 그깟 일 분이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분대장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일 분은 누군가에는 생명을 또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의미했다.

그 순간 적의 벙커에서는 교대 근무가 시작됐다. 막 교대가 완료될 무렵 아래쪽에서 희미한 함성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총소리가 무섭게 터지기 시작했다.

넓게 원을 그리며 올라가는 소대장의 병력이 입구에 있던 기관총 사수에게 집중됐다. 기습공격을 받은 기관총 사수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사수가 죽은 것을 확인한 부사수는 자신이 사수가 돼야 한다는 평소 연습대로 사수의 위치에 올라섰다.

그러나 소대장이 뽑아 든 권총이 부사수 아니 1초 전에 사수가 된 자의 이마를 명중시켰다. 그는 사수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기관총 사수가 죽자 파죽지세로 소대장의 병력이 정상을 탈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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