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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0:17 (금)
정태는 자신은 살고 담임은 죽었다는 마음에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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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는 자신은 살고 담임은 죽었다는 마음에 괴로웠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9.18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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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에 구름이 떠가고 그 구름 사이로 노고지리가 찌리릿, 찌리릿 하고 쉴 새 없이 노래를 불렀다. 입도 아프지 않은지 지져댔고 멈추지 않고 날개를 퍼덕였다.

높이 떠서는 그대로 멈춰 서서 부르던 노래를 계속 불러 대는 노고지리를 정태는 보지 않고도 몇 마리가 어느 높이쯤에서 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고개를 들고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2지 않고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순간에 녀석들의 소리가 멀어져 갔다. 날개를 펄떡이며 하늘로 솟구쳤다가 급전직하는 순간이었고 그 모습을 정태는 보지 않고도 또 알고 있었다.

정태는 이번에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않았다. 새들의 정지 비행은 쌍발 비행기의 폭탄투하와는 다른 것이었다.

정태는 죽지 않고 살아서 이런 날을 보는 것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 카빈 총알이 몸을 관통하지 않고 살의 어디쯤에 박혀 고통 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멀어졌던 새들이 다시 돌아왔으나 몸에 박힌 총알이 빠져나간다는 느낌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태는 담임에 대한 감사함에 목이 메었고 소고기 근을 전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정태는 한 번 더 홍성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전출간 담임을 수소문해 기어이 보답하고 싶었다. 그것이 사람 된 도리였다. 그런 것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으나 정태는 그래야 된다고 믿었다.

코스모스가 익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큰 아이가 태어났다.

농사에 보탬이 되지 않는 딸이어서 정태는 실망이 컸다. 용순도 마찬가지였다. 사내자식이었다면 하고 바랐던 것이 틀어지자 정태는 속을 끓였다.

그러나 자식은 또 낳으면 됐다. 젊은 용순은 다음에는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코스모스가 지자 아이들은 까만 씨를 쪼개며 놀았다. 담임을 한 번 더 찾아봐야겠다고 정태는 말했고 용순은 정성껏 만든 모시옷 한 벌을 싸주었다.

곧 겨울이라 명 년 봄이 지나서야 입을 수 있지만 솜 옷을 할 형편은 못됐다.

정태는 그것을 싼 보자기와 용순 몰래 챙겨둔 돈으로 홍성 읍내서 소고기 한 근을 사서 병무청 건물로 들어갔다. 우선 멀찍이서 담임 자리를 확인했으나 그는 이번에도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젊은 직원의 인상을 확인하고는 담임의 행적을 물었다. 일 년 전에 찾아왔었다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젊은 병사계는 그사이 박박머리를 상고머리로 다듬었고 그래서인지 얼굴에는 제법 어른티가 묻어났다.

그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아, 그분 그분은 돌아가셨어요. 장교로 자원입대했고 입대 13일 만에 철원 백마고지에서 사망했어요."

난처한 표정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순은 어머니 광산김씨의 사망 당시와 같은 약간 어찔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왔던 길을 거슬러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건물의 계단을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모르는 새에 광천에 도착했다. 새우젓 배들이 막 들어오는 밀물을 타고 밀물처럼 들이닥치고 있었다.

특유의 새우 젖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갑자기 시장기를 느낀 정태는 그제서야 소고기도 모시옷도 그대로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새우젓 한 단지와 고기를 바꿨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국밥 한 그릇을 먹었다. 뜨거운 김 사이로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렀다.

선생님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서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고 자랑하고 싶었으나 담임은 이제 세상에 없었다.

자신은 살려주고 자신은 죽었다.

정태는 그가 왜 자원입대를 했는지 후방에서 안전한 삶을 살지 않고 전쟁터에서 죽었는지 그 깊은 내막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자신이 살아서 담임이 죽었다는 죄책감이 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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