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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0:17 (금)
147. 좁은문(1909)- 지상의 사랑 천국의 사랑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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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좁은문(1909)- 지상의 사랑 천국의 사랑 사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9.17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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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물론 타고난 천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녀가 심적 변화를 겪고 그러기로 행동을 작정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어머니의 위선이다. 그녀는 가짜 발작을 종종 일으켰다. 무대밖으로 나가기 위한 연극이었다.

그 이전에는 가까운 친척인 제롬의 아버지 (제롬과 알리사는 외사촌 간이다. 그러니 알리사의 어머니는 제롬의 외숙모가 되겠다.)죽음에도 상복을 입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알리사가 보기에 어머니의 이런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했다.

결국 집안의 말썽꾸러기였던 그녀는 바람이 나 깔깔거리고 웃으며 집을 나가버렸다. 새파란 젊은 장교와 놀아나려고 가족을 버린 것이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알리사의 충격은 컸다. 말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회의가 알리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제롬이 있었다. 제롬은 알리사를 사랑했다. 알리사도 제롬을 뼛속 깊이 사랑했다.

알리사의 아버지 즉 제롬의 외삼촌은 조카가 아닌 아들로 제롬을 챙겼다. 두 사람은 결혼할 것이다. 주변의 누구도, 고모도 이모도 이런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은 뒤 상심에 빠졌던 제롬은 알리사가 그랬듯이 그녀를 사랑하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그런데 알리사에게는 쥘리에트라는 예쁜 여동생이 있었다.

제롬과 한 살 아래인 쥘리에트는 언니 알리사에 비해 차분하기보다는 명랑하고 마음을 절제하기보다는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쥘리에트도 두 사람이 사랑하고 결혼할 것을 당연시했다.

그 무렵 제롬의 친구는 쥘리에트에 반해 제롬에게 이 사실을 털어 놓고 제롬도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여겼다.

이제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알리사와 제롬, 쥘리에트와 제롬의 친구 아벨이 맺어지는 해피 앤딩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쥘리에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벨이 아닌 제롬이었다.

알리사는 그것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자신이 헌신해야겠다는 다시 말해 자신은 빠지고 제롬과 쥘리에트가 맺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구석에 생겼다.

불쌍한 알리사, 하고 독자들은 생각할 것이다. 맞다. 알리사는 행복하기보다는 불행하다. 이제 알리사의 신앙심은 깊다 못해 아예 그 속에 빠져버렸다.

어려운 시절 제롬과 함께 같던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알리사의 삶을 더 깊게 파고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좁은문에 관한 내용을 여기서 잠시 인용해 보자. ( 좋은 말이니 어디서 한 번쯤 써먹어도 되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나오는 이 구절은 평생 알리사를 사로잡는다. 그녀는 넓은 길 대신 좁은 길로 가기로 작정했다.

이 시기 제롬은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알리사와 헤어져야 했다. 그 날 알리사는 무척 슬픈 표정을 지었고 제롬은 그것이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이유 때문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미뤄 두었던 약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알리아에게 말했다. 알리사의 대답은 누구나가 그렇게 기대했던 대답인 오케이가 아니었다.

‘왜 약혼을 해 제롬?. 이대로가 좋잖아.’

알리사는 이 상태를 바꾸려고 하는 제롬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대로도 행복한데 약혼은 너무 큰 행복이었고 알리사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제롬은 떠났다. 그리고 학업을 위해 미뤄뒀던 입대를 했다.

입대는 두 사람에게 기회이면서 위기였다. 둘은 예나 지금이나 그렇듯이 군에 간 사람이 후방에 남겨둔 애인을 위해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구구절절 사랑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었고 알리사의 답장 역시 제롬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육체보다는 영혼이었고 속세보다는 미래의 어느 세계였다.

그 세계는 누구나 갈 수 없는 하느님의 세상이었고 알리사는 약혼이나 결혼 같은 현세보다는 하느님의 영적 세상에서 둘이 함께 하기를 원했다.

신앙심이 깊은 제롬 역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신앙 아래 하나가 되는 것은 원했다.

그러나 완전한 영적보다는 결혼을 통한 이성적 결합이 더 필요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틈을 메꾸기보다는 점점 멀어졌다.

쥘리에트는 제롬의 사랑이 물 건너간 것을 알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렇다고 아벨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친척의 소개로 받은 나이 많은 남자와 덜컥 결혼해 알리사와 제롬의 곁을 떠났다. 알리사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사랑하지도 않은 남자와 반항심 때문에 혹은 자신과 제롬의 사랑을 위해 그랬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쥘리에트는 언니의 그런 걱정과는 달리 순탄한 신혼 생활을 이어갔고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결혼 생활 끝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아이를 낳았다.

▲ 성경을 철저히 실천하면서 인간세상보다는 영적 세상을 원했던 알리사와 그런 그녀를 자신보다 더사랑했던 제롬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에 독자들은 차분한 마음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자문하게 된다.
▲ 성경을 철저히 실천하면서 인간세상보다는 영적 세상을 원했던 알리사와 그런 그녀를 자신보다 더사랑했던 제롬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에 독자들은 차분한 마음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자문하게 된다.

그 사이 제롬의 외삼촌 다시 말해 알리사의 아버지가 죽었다. 아들이라고 여겼던 조카가 자신의 딸과 결혼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떠난 것이다.

이후 알리사에게, 제롬에게 어떤 변화가 왔을까.

의지할 곳을 잃은 알리사가 제롬을 기댈 언덕 삼아 그와 결혼의 문으로 들어갔을까, 아니면 그런 세속적인 문제를 초월해 아주 깊고 깊은 신앙의 좁은 문속으로 들어갔을까.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젊은 남녀의 사랑과 그 사랑의 과정에서 보여주는 세속과 영적인 문제를 바람 한 점 없는 파도처럼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잇따른 죽음과 슬픔의 연속이지만 어쩌면 이리도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작가의 탁월한 글솜씨와 절제된 언어 구사력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80년 고교 시절 번역서 들이 쏟아져 나와 길거리 가판대나 서점의 매대에서 눈에 가장 잘 띄었던 책이라 한 번 집어 읽어 본 적이 있었다.

뚜렷하지는 않으나 어렴풋이 집어 들었던 것은 알겠다. 그때 나는 읽다 지쳐 제쳐 두었다. 쉽지 않았다.

<데미안>처럼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읽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나오는 주인공들이 또래라고 쉽게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세월은 몰랐던 것을 알게 해주고 넘어갔던 것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때였다면 말도 안 되는 것이 지금은 된다고 여기는 독자가 있다면 그도 이제는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청소년이 주인공이나 중년 혹은 노년을 위한 책이 바로 <좁은문>이 되겠다. 이 나이가 돼서야 비로소 보이는 인간의 깊은 내면 없이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 알리사는 실제로 앙드레 지드의 사촌인 마들렌을 모델로 삼았다. 그러니 지드의 자전적 소설이다.

마들렌과 결혼한 지드의 결혼 생활은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정신적 사랑만이 두 사람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 지드는 1893년 북아프리카로 떠난 여행 중에 자신의 동성애적 기질을 확인했다. 그런 경험 후 자신을 얽매였던 도덕이나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지상의 행복보다는 천국의 행복을 찾는 것으로 연결되고 있다.

허무와 비인간적 세상의 예찬, 성령의 신비로움이 가득한 비극적 러브스토리의 종말은 그래서 유치 찬란하기보다는 어떤 알 수 없는 다짐이나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같은 원초적인 질문을 갖게 한다.

편지와 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죽는 그 날까지 제롬을 사랑했다고 알린 알리사의 영혼이 천국에서 행복하기를, 그와 동시에 그녀가 원했던 진정한 성령이 충만하기를 기원해 본다.

그래야만 요양원에서 젊은 나이에 쓸쓸히 죽어간 영혼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에.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기에 너무나 좁은 길이 아닌 넉넉한 길, 바로 그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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