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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09-24 06:01 (금)
징집 영장이 뒤로 미뤄지자 정태는 운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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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집 영장이 뒤로 미뤄지자 정태는 운으로 생각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9.13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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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집 영장은 1년 뒤로 미뤄졌다. 날짜를 보니 53년 1월 30일이었다. 이날은 정태의 생일 전날이기도 했다. 기구한 운명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반전됐다. 

영장을 손에 쥐고 정태는 사립문을 밀고 들어섰다. 이틀을 뜬 눈으로 셌던 광산김씨는 헛것을 본 것 마냥 반쯤 나간 정신을 수습하고는 그만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광산김씨는 10분은 족히 그렇게 목놓아 울었다. 산자를 위한 축하가 아닌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처럼 들렸다.

옆집 할머니가 누가 초상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개를 디밀었다. 동네 개들이 짖었고 외양간의 소가 울어댔다.

정태는 지금도 그것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기적을 보따리처럼 늘 싸고 다녔던지 정태는 자신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어떤 정확한 꿈을 그리지도 않았다. 오직 하루를 눈뜨면 논밭으로 해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설날 세배를 하고 세배를 받는 오전과 성묘를 하는 추석 오전 이렇게 일 년 열두 달 중 단 하루만 쉬었다. 그는 그것도 감지덕지했다. 명절을 한나절이라도 즐길 수 있는 것은 다 담임 덕분이었다.

전쟁은 그가 전쟁터에 가기 전에 끝났다. 끌려가서 총알이 가슴을 맞고 뒤로 나오는 꿈을 정태는 더는 꾸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해 5월 3일 용순과 결혼했다.

날짜를 잡고 그는 홍성 지방병무청에서 담임을 찾았다. 그러나 선생은 전쟁 전에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갔다. 그는 담임에게 결혼 선물로 준비한 소고기 한 근을 들어보았다.

새끼줄에 묶여 신문지에 돌돌 말린 그것을 그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는 다음날 오라던 병무 담당이 그 자리에 있는지 둘러 보았다.

그러나 그도 없었다. 대신 자신과 비슷한 또래가 박박 머리를 민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귀찮은 부탁이라면 사절이라는 완고한 이미지였다.

아까 다른 곳으로 전출 갔다고 말한 바로 그 사내였다. 정태는 담임이 오면 이것을 전해 달라고 꾸러미를 들어 보이며 부탁했다. 그러다가 곧 오늘 낼 소식이 없으면 먹어도 좋다고 말하고는 병무청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 아래는 어지럽게 자란 질경이 사이로 씀바귀꽃이 노랗게 피기 시작했다. 그는 그날 기차 대신 걸어서 홍성에서 천웅까지 왔다.

꼬박 4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하나도 지치지 않았다. 새벽처럼 움직였으니 이제 겨우 해가 서쪽에 기울기 시작했다. 그는 용순이 없자 부엌으로 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물에 말아 김치를 얹어 먹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밥이 맛없는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의 집 일을 종일 해주고 밥만 먹여달라고 사정하던 때에 비하면 얼마나 풍족한 삶인가.

가마솥에는 긁어 놓은 누룽지가 있었다.

정태가 오면 먹으라고 용순이 마련해 준 것이다. 아마 용순은 밭에 가 있거나 바다로 찬거리를 잡으로 갔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정태는 삽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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