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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 통지서를 들고 있던 정태의 손이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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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 통지서를 들고 있던 정태의 손이 떨려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9.07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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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정태는 광산김씨의 49제가 끝나고 했다.

성일은 그런 말을 들었다. 잠이 깨고 다시 잠들 무렵 도란거리는 정태의 목소리가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넘어왔다.

어쩐 일인지 성일은 다시 잠들기 전에 그 소리에 귀 기울였다.

반장은 다시 왔을까. 다시 와서 그 전처럼 악행을 이어갔을까. 설마 지금 그자가 그때의 반장이었을까. 성일은 불안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순간뿐이었다. 그는 달리고 노는데 늘 바빴다. 이승에 제삿밥을 먹으러 온다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그 날에도 살아나지 않았다. 과거를 떠올릴 만큼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새로운 일이 날마다 생겼고 내일 생길 일에 대한 기대와 공포가 성일을 사로잡았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놀고 또 놀았다. 흙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굴을 파고 그 속에서 쎄쎄쎄를 했고 공깃돌을 집어 들었다.

몇 안 되는 또래와 형제들과 웃고 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상은 언제나 밝아 있었고 밝은 세상은 그를 무럭무럭 크게 했다. 반장이 도망갔던 황토배기를 넘어 학교 갈 때 성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쇠통구리를 잡아서 손에 들고 가면서 춤을 췄고 도망치는 뱀을 향해 돌팔매를 질렀다. 뭉쳐진 소똥을 발로 툭 차면 검은빛을 반짝이며 여지없이 쇠통구리가 나왔다. 그 주변을 잘 살펴 보면 초록색과 붉은 색이 섞인 놀란 뱀이 소스라치게 도망갔다.

책보를 메고 뛰면서 학교에서 배운 어린이날 노래를 불렀다. 허리의 책보가 덜렁거렸다. 흘러내리면서 바지를 벗길 때도 있었다.

어떤 날을 같이 가기로 한 친구를 떼놓고 형과 함께 들판을 달릴 정도로 어제 한 약속을 잊기도 했다.

종소리가 끝나면 더 신났다. 젓가락이 장단을 맞추는 도시락 소리가 요란하게 화답했다. 그 소리는 싫증 나지 않았다. 황토배기 언덕에서 바라보는 집은 고즈넉했고 언제나 넉넉했다.

한숨을 돌리고 나서 책보를 풀었다. 그리고 널뛰기 자세로 제자리서 몸을 몇 번 구르고 나서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새처럼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황토 진흙이 발목을 부드럽게 감싸고 돌았다. 다시 올라와서 아래로 떨어지기를 수십 번 하고 나서야 성일은 책보를 다시 허리에 매고 집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언제나 달렸다. 걷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떤 때는 학교까지 5킬로 미터를 내쳐 달리기도 했다.

깊은 밤이 오기 전에 성일은 잠자리에 들었다. 기름으로 가는 호롱불도 아껴야 했다. 용순은 늘 아끼라고 했다.

그래서 잠자는 시간은 대개 저녁 8시를 넘지 않았다. 오래도록 깊은 잠을 자니 그는 자고 일어나면 몸집이 불었고 키가 컸다.

어느 날 으레 치르는 할머니 제사가 끝나고 아버지 형제들과 사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자다 깨다 했고 잠을 설쳤고 새벽녘에 그는 다시 목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용순이 말을 했다.

전쟁 전이었다. 험하기는 했지만 남북이 서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때 용순은 오빠와 함께 월남했다. 황해도 옹진에서 충남 보령의 해안가에 자리 잡았다.

어떤 연고도 없었다. 여기저기 다니다가 옹진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에 주저 앉았다. 그러고는 여기가 좋다고 오빠가 말했고 용순도 그래보였다. 친척 서너 명도 용순네와 이웃했다.

작은 집도 지었다. 농사처도 마련했다. 고향의 남은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가급 적 빨리 오라는 편지를 띄웠다. 답장도 왔다. 집 팔고 전답도 다 정리했으니 다음 달에 떠나겠다는 우편을 받았다.

그런데 전쟁이 터졌다. 그들은 이산가족이 됐다. 정태가 옹진에 대해 묻자 용순은 아빠가 엄마가 묻혔을 옹진에 가보고 싶다고 조용히 말했다.

용순네는 오빠가 남한에서 선생을 해서 그럭저럭 굶지 않고 살았다. 평양 숭실중학교를 중퇴한 이력으로 오빠는 19살 때 이곳 천웅 소학교 선생이 됐다.

그랬구나, 성일은 귀를 세웠다.

외갓집에 가면 신문지가 천장을 닿고 다시 두 번째 탑이 세워지고 있었다. 1960대 후반의 풍경치고는 매우 이채로웠다. 면에서 매일 신문을 받아 보는 집이 몇 군데나 될까 싶었다. 그 신문 가운데는 영자지도 있었다.

정태가 말을 이었다. 내 나이 18살 때였다. 친구들이 전쟁터로 끌려갔다. 그도 홍성 병무계에서 입영 날짜를 통보받았다. 앞이 깜깜했다. 몇 달 앞서갔던 친구 하나가 죽어서 왔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혼 전이었지만 정태는 집안의 가장이어서 그가 떠나면 집안은 풍비박산이었다. 그가 어릴 적에 세상을 떠났던 아버지를 원망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통지서를 들고 건물의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보름 후 강원도 철원으로 입대하라는 종이쪽지 하나를 무슨 보물단지처럼 들고 있던 손이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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