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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09-24 06:01 (금)
146. 아들과 연인(1913)-내 어머니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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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아들과 연인(1913)-내 어머니의 모든 것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9.01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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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꼬맹이 아가씨’.

젊은이는 여자의 손을 잡고 두 눈을 쓰다듬는다. 무언가를 향한 간절함이 가득하다.

영락없는 연인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연인들의 행복은 시작이 아닌 종말을 맞고 있다. 내 사랑 예쁜 아가씨가 죽음 직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하고 호흡은 금방이라고 끊어질 듯 거칠다. 고통을 못 이겨 모르핀에 의존하나 그것도 소용없다.

생의 막바지에서 여자는 두고 떠날 연인이 눈에 밟힌다. 검은 두 눈을 감지 못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둘은 진짜 연인이 아니다. 곧 죽을 운명인 침대 위 여자는 어머니이고 꼬맹이 아가씨를 외친 남자는 아들 폴이다.

모자는 여느 연인들처럼 사랑을 속삭이나 그것은 육체가 아닌 정신이다.

두 남녀는 영혼을 교환하는 서로에게 속해 있는 절대적인 관계다. 아들의 연인은 다른 여자가 아닌 어머니인 것이다.

우리에게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잘 알려진 D.H 로런스는 <아들과 연인>을 통해 어머니와 아들을 정신적 합일의 경지에 이른 남녀로 그려내고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분위기는 작품 내내 여기저기에 숨어 있어 폴이 애인 미리엄이나 클라라를 만날 때마다 튀어나온다.

엄마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 갇혀 그 언저리에서 서성이고 있는 가엾은 폴.

▲ 독서를 좋아하는 엄마와 엄마를 닮아 그런 성격을 이어받은 아들은 서로 정신적으로 강하게 묶여있다.
▲ 독서를 좋아하는 엄마와 엄마를 닮아 그런 성격을 이어받은 아들은 서로 정신적으로 강하게 묶여있다.

이제 그 엄마가 죽음 직전이니 독자들은 엄마의 죽음으로 폴이 족쇄 아닌 족쇄에서 풀려날 것으로 기대한다.

자, 작품의 끝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모렐과 모렐 부인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다.

핸섬한 얼굴과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석탄 광부인 모렐은 술을 좋아한다. 노래도 일품이다.

모렐 부인은 처녀 적 그 모습에 반해 모렐과 결혼했다. 배운 것은 없고 무식쟁이고 돈까지 없는데 오로지 몸뚱이 하나만 보고 덜컥 결혼해 버린 것이다.

이런 결혼 과거나 지금이나 영국이나 한국이나 위험하다. 처음에는 좋겠지만 갈수록 태산일 가능성이 높다. 여자도 남자처럼 술과 노래에 빠져들고 비슷한 수준의 정신이라면 괜찮을 수 있다.

그러나 모렐 부인은 그와 성격이 다르고 계급도 한 수 위고 지식수준은 더 높다. 술이나 춤 대신 독서와 사색을 즐긴다.

이쯤이면 이 둘의 결혼 생활은 싸움과 그 싸움의 결과로 비참하게 헤어지는 것이 맞다. 초반전 분위기로만 보면 그럴 것으로 파악된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은 독자라면 예쁘고 섬세한 모렐 부인이 모렐의 동료나 회사의 상사와 바람이 날 것을 짐작할 만하다.

아니면 그녀와 정신적 교감을 하면서 수준 높은 대화를 하는 동네 목사와 내연의 관계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렐은 처음에만 왁자지껄하게 등장했을 뿐 책의 중반부터는 완전히 뒤로 밀린다.

백업 요원이 느닷없이 주인공으로 나왔으나 이제는 경기장 밖으로 나간 엑스트라 신세다. 작가도 독자도 누구도 석탄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태로 방치된다.

상권을 다 읽고도 모렐의 존재는 미미해 모렐이 있기는 있었나 하는 의구심까지 든다.( 그는 책이 다 마무리됐는데도 여전히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모렐은 주인공이 아니고 주인공을 낳은 아버지로 존재할 뿐이다.)

모렐의 빈자리는 모렐 아들이 차지한다.

큰아들 윌리엄은 아버지를 닮았다. 크고 잘 생기고 마초 기질이 가득하다. 취직도 하고 여자를 데려오고 살림을 보태는 등 장남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도 잠시, 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는다.

윌리엄을 통해 모렐에 대한 실망을 이겨내려 했던 모렐 부인의 상심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제 모렐 부인의 관심은 둘째 아들 폴에게로 쏠린다.

그런데 폴은 강하지 못해 비실비실하다. 둘째마저 잃을 위기에 처하자 모렐 부인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폴을 살려내려고 발버둥 친다.

신의 가호와 엄마의 정성이 더해져 폴은 병을 딛고 믿음직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노팅엄의 직장에 노동자로 취직해 월급을 받는 폴은 장남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틈틈이 그림까지 그려 수상도 한다.

모렐 부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영국 광산의 광부 아들 다 모아도 우리 아들 폴 하나를 당해낼 수 없다. 폴은 아버지보다는 엄마의 성격을 닮았다. 그런 아들은 성장하면서 엄마의 정신 속에 파묻혔다.

어느 날 폴에게 미리엄이라는 지적인 여자가 다가온다.

이웃 농장주의 딸은 모르는 것을 알려는 욕망이 크고 사물을 관찰하는 예리한 마음을 가졌다. 폴을 통해 프랑스어를 배우고 지식을 넓히면서 세상을 이해한다.

둘은 자연스럽게 연인이 된다. 넓은 들판을 지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15킬로 미터를 걸으며 데이트를 즐긴다. 낮이어도 보이지 않는 깊은 숲속에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장래를 약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렐 부인은 미리엄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리엄이 아들을 완전히 손아귀에 쥐고 놓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몸은 비록 여자에 가 있어도 정신 만큼은 자신에게 속해 있기를 바랐던 어머니는 미리엄을 차갑게 대한다. 미리엄에 대한 혐오가 강해질수록 아들에 대한 집착은 더해진다.

폴은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것이 깊어지면서 불안한 폴의 무게추는 미리엄이 아닌 어머니 쪽으로 기운다. 결혼을 해서 한 가족이 되기에 미리엄은 모렐 부인이 보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즈음 폴은 다른 여자 클라라를 사귄다. 이른바 양다리를 걸치면서 어떤 여자가 엄마의 마음에 들지 시험해 본다.

직장 동료인 클라라는 자신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다. 더구나 유부녀다. 폴은 그녀에게 끌린다. 모렐 부인도 미리엄보다는 클라라가 낫다고 여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클라라가 될 것이다. 클라라는 폴을 자기 안의 울타리에 가두지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사랑한다. 미리엄과의 사랑이 정신 쪽에 가 있었다면 클라라와는 육체 쪽에 가깝다.

혈기왕성한 폴은 그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클라라와 사랑을 나누고 미리엄을 멀리한다. 아예 우리 이제 헤어지자고 미리엄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자, 다시 작품의 후반부로 달려가 보자.

서두에 언급한 꼬마 아가씨는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죽는다. 어머니의 죽음은 아들의 해방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녀의 정신세계에서 놓여난 폴은 미리엄과 서로 속해 있으면서 교감의 끈을 서로에게 당길지 모른다.

그렇다면 클라라는 개밥의 도토리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가. 그것은 아니다. 클라라 역시 한순간의 외도였을 뿐 폴이 없으면 죽고못사는 사이로 여기지 않았다. 유부녀다운 노련함이다.

클라라는 폴을 만나면서 헤어졌던 남편이 진정한 자신의 남자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이 해피앤딩이라면 당연히 폴과 미리엄은 합쳐져야 옳다. 누가 이득 보고 손해 보는 게임이 아니라면 말이다.

폴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다. 그가 구원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미리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회는 그녀를 만나기에 좋은 장소다.

오래 떨어졌던 두 사람은 그곳에서 만나고 만남을 이어간다. 부디 두 사람이 가는 길에 축복이 있기를. 하지만 소설은 독자가 원한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알 것이다.

폴이 가는 길은 어디인가. 미리엄인가, 아닌가. 어디로 떠날 수 있는 기차역인가, 그도 아니면 낯선 외국인가.

어쨌든 폴은 새 출발을 위해 발을 앞으로 내 딛는다. 1913년 나온 소설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작품의 10분의 1이 삭제된 채 출간됐다. 1992년에 와서야 완전한 원래 모습으로 출간됐다.

: 로런스의 성장 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그녀의 가족 이야기와 소설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도 맞다고 한다. 실제로 로런스 아버지는 모렐처럼 석탄 광부였고 춤과 노래 솜씨가 일품이었다.

그 모습에 반해 모렐 부인처럼 로런스의 엄마도 아빠와 결혼했다고 하니 소설 속 이야기와 작품이 딱 맞아 떨어진다.

실제 가족 구성원이나 가족들의 소질도 비슷했고 사는 곳도 소설 속 배경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

노팅엄( 같은 제목의 영화 ‘노팅엄’을 봤으나 책을 읽으면서 영화 속 배경이 책 속의 풍경과 겹쳐지지 않아서 왜일까 생각했으나 도무지 답을 찾지 못했다.) 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일상의 일들이 그렇다. 그러나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이런 배경은 참고 사항일 뿐 소설은 소설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아들과 엄마의 정신적 연결과 그로 인한 아들과 연인의 갈등 관계를 묘사하고 이끌고 간 로런스의 구성과 그 과정과 결말은 소설 이상의 가치를 후대에 전해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들을 향한 모성의 끝없음과 그 무한대의 영역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들을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이해의 시선이 가득 차오름을 느낀다.

모렐 부인에게 폴은, 폴은 모렐 부인에게 아들과 어머니 이상의 그 무엇으로 연결돼 있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읽는 독자들이 각자 알아서 상상해 보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미칠 만큼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파고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족: 클라라 남편 도우즈는 이해하기 힘든 족속이다. 부인이 대놓고 폴과 관계를 이어가도 화를 내기보다는 이해하거나 무관심하다.

별거라고는 하지만 이혼하지 않아 엄연한 부부관계인데도 둘을 용인하니 그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유일한 성인군자다.

그 성인군자에 반했는지 폴은 클라라 남편과 어떤 우정이나 동질성을 느낀다.

싸우고 맞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없는 것은 아니나 폴과 도우즈는 깊은 우정을 이어가고 가족 이상의 어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 (읽기를 마쳤다면 편한 마음으로 '마마, 우우우' 어쩌고 저쩌고 하는 퀸의 '보헤미안 렙소디'를 들어보자. 엄마는 왜 이렇게 늙어 가느냐고 절규하는 아들의 환영이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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