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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09-24 02:23 (금)
375. 말레나(2000)-광장을 가로지르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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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말레나(2000)-광장을 가로지르는 그녀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8.29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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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토(주세페 술파로)는 훔쳐보기의 명수다. 그가 이 방면에서 명성을 날린 것은 그녀 때문이다. 나의 그녀는 영화 제목이기도 한 말레나( 모니카 벨루치)다.

12살 레나토는 성숙한 여인 말레나에 빠졌다.

그런데 말레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이미 결혼한 유부녀가 땅꼬마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 그래서 레나토는 슬프다.

설상가상으로 조국 이탈리아는 전쟁에 빠졌다. 흉악한 무솔리니는 화마속으로 국민을 몰고 갔고 집단 최면에 빠진 군중은 닥쳐올 비극을 알지 못한 채 박수에 손이 아프다.

해변과 절벽과 돌집이 아름다운 시칠리아 섬에도 전운이 가득하다. 그래도 삶은 살아야 하고 마을 사람들은 분주하다. 그 속에 말레라도 끼어 있다. 그녀는 걷는다. 말레나가 광장을 가로질러 갈 때 레나토와 그 또래들은 숨을 죽인다.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 꼬마들은 넋을 잃고 세상마저 고요하다. 애들이 이러니 어른들은 오죽할까. 대놓고 흘리는 침이 입술은 물론 턱까지 적신다.

남편은 신혼 두 달 만에 전쟁터로 끌려갔다.

임자 없는 몸을 시칠리아의 남자들이 탐낸다. 그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남자가 땅꼬마 바로 레나토라는 것을 관객들은 알 것이다. 그는 사랑이 넘쳐나는 나머지 그녀의 뒤를 쫓는다. 어찌해 볼 틈을 노린다.

애연가인 그녀를 위해 담배 심부름을 하다 길게 뻗은 그녀의 다리를 만지는 꿈을 꾼다. 뚫린 구멍을 통해 붉은 입술 사이로 피어나는 흰 연기를 보고 넋을 잃는다.

레코드에 LP를 얹어 놓고 나 홀로 춤을 추는 눈부신 자태에 동공은 최대로 벌어진다. ( 영화 화면 속으로 빨려드는 <씨네마 천국>의 그 소년이 생각난다.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바로 이 감독이다.)

어린 놈의 수작질이 예사롭지 않자 아버지는 훈계 대신 주먹질을 한다. 개 패듯이 팬다는 말을 이해하고 싶다면 레나토가 얻어터지는 장면을 보면된다. 울부짖는 엄마는 한술 더 뜬다.

도망가는 레나토의 실감 나는 연기는 웃기기보다 얼마나 아플까, 몸의 아픔보다는 마음의 아픔이 얼마나 클까하는 생각에 소름이 순간 돋는다.

그 와중에도 말레나는 또 걷는다. 걷다가 멈춰서서 뒤를 돌아본다. 계단을 올라간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카메라는 그녀의 뒤를 허겁지겁 따르고 말레나는 온 세상의 중심으로 우뚝선다.

아프로디테가 울고 가니 헤나나 아테나는 그녀의 미모 앞에 꼬리를 내린다. 그 모습을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온 레나토. 숙제 대신 빛의 속도로 손장난을 한다. 이후 레나토는 꼬마 아닌 어엿한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

남자들이 우러러보는 여신 말레나. 대신 모든 여자들의 적이다. 질투한다. 천박하고 상스럽다며 걸레 취급을 한다. 설상가상으로 동아프리카 전투에서 말레나의 남편이 죽는다.

미망인이 된 말레나. 검은 상복을 입은 그녀는 슬프다. 그러나 슬픔도 미모를 감출 수는 없다. 되레 상복 속에서 더 예쁜 그녀가 됐다. 울고 있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는 소년은 다짐한다.

‘이제부터 내가 네 남편이다.’

넘보는 자는 다 적이다. 돈 많은 치과의사가 당한다. 탐욕스러운 변호사도 빠져나갈 수 없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성당을 찾아가는 소년의 눈빛은 결기가 가득하다. 촛불을 밝히며 조각상에 맹세한다.

‘매주 주일 예배 나오겠다. 대신 말레나를 다른 남자로부터 지켜달라. 몇 년 후에 내가 지킬 때까지’.

순진한 소년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말레나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길을 기어코 가고야 만다. 이것은 그녀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 과정을 소년은 숨어서 다 봤다. 그녀의 벗겨진 몸을 보고 그 몸을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차지하자 소년은 죽음과도 같은 절망에 빠진다.

검은 속옷을 훔치고 그것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잠을 잔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전해질 것만 같다. 그는 단잠을 잤으나 깨고 났을 때는 아니다. 변태로 몰려 아버지의 주먹질에 죽사발이 된다.

▲ 땅에 떨어진 과일을 주어주는 소년 레나토와 성숙한 여인 말레나가 영화의 끝무렵에 한 화면에 잡혔다.
▲ 땅에 떨어진 과일을 주어주는 소년 레나토와 성숙한 여인 말레나가 영화의 끝무렵에 한 화면에 잡혔다.

그는 엉망이 된 몸을 끌고 다시 성당을 찾는다.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조각상을 박살 내기 위해서.

신에게 화풀이 했으나 사랑이 식기는커녕 더욱 솟아난다. 그는 친애하는 말레나 어쩌고저쩌고하는 절절한 편지를 쓴다. 소년은 소년의 길을 기어코 가고자 다짐한다.

소년이 자신의 길을 간다면 말레나 역시 그녀의 길을 간다. 또다시 광장에 나선 말레나.

공습으로 아버지 마저 죽는다. 레나토의 담임으로 당신의 딸과 자도 되느냐는 질문에 기꺼이 허락하는 인자심 많은 진정한 교육자 아버지마저 잃자 그녀는 무너진다. 머리를 자른다.

검은 진주보다 검고 허리에 까지 닿는 긴 머리가 싹둑 잘린다. 단발머리의 말레나.

하지만 머리가 짧다고 말레나가 아닌 것은 아니다. 단발머리 말레나는 레나토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 ( 이때 뜬금없이 조용필이 부른 ‘단발머리’가 떠올랐다. 참 인간은 이상한 존재다. 그것과 이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왜 그랬을까.)

말레나는 흑발 머리를 입술보다도 더 붉게 물들인다.

빨강머리 그 모습에 이탈리아 남자들이 또 한 번 들고 일어난다. 고아가 된 말레나를 도와주겠다는 남자들이 사방에서 둑 터진 홍수처럼 밀려든다.

반면 여자들은 독일놈과도 자는 창녀 말레나 라고 내지르는 손가락이 아플 지경이다. 말레나를 놓고 남자와 여자들의 서로 다른 시선이 부닥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말레나는 또 걷는다. 소년은 그녀를 또 따르고. 그 무렵 주먹질과 욕설을 일삼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진정한 부성애를 선보여 보는 관객들에게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진정한 사색의 기회를 준다.

유곽으로 데려간 아버지는 아들이 제대로 일을 치르고 났을 때 그 일을 아내에게 자랑했을까. 어쨌든 일진일퇴의 전황은 무솔리니의 패전으로 기울고 있다.

기회를 잡은 여자들은 돌을 들었다. 손에 든 그 돌로 말레나를 내리친다. 그들은 죄 없는 자들이기에 말레나를 사정없이 묵사발 만든다.

질투와 시기로 말레나는 만신창이가 된다. 그녀는 마을을 떠나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고 연기처럼 레나토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불쌍한 레나토. 그때 죽었다던 말레나의 남편이 돌아오고 부상으로 한 팔이 없는 남편의 등 뒤로 여자들은 말레나의 그간 행적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소년은 그러지 않고 친애하는 말레나 편지글 대신 소문은 거짓이고 말레나가 사랑한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었다는 사실과 그녀가 떠난 곳을 알려준다. ( 이 대목에서는 작고한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

국가: 이탈리아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모니카 벨루치, 주세페 술파로

평점:

: KBS JOY의 ‘차트를 달리는 남자’에서 <말레나>의 말레나 역의 모니카 벨루치는 스타들의 리즈 시절 여자 부분에서 당당하게 2위를 차지했다.

1964년 생인 그녀는 <007 스펙터>의 본드걸에 나왔고 <말레나>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말이 없어도 걷는 걸음과 눈빛 하나만으로 그녀는 12살 이상 세상 남자들의 영혼을 몸 밖으로 빼냈다.

반바지 아닌 긴바지에 자전거를 탄 어른이 된 소년이 그녀의 행운을 빌어 줄 때 말레나는 비로소 웃음으로 화답한다. 숱한 웃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웃음의 순간이다.

이 웃음은 어떤 대가를 요구하며 자신을 변호했던 변호사나 빵을 가져다주고 언제든 도움을 주겠다는 똑같은 대가를 기대했던 군인들을 향해 짓던 웃음과는 격이 다른 웃음이다.

사랑과 전쟁의 극단에서, 어린 소년과 성숙한 여자의 극단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고 그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찬탄과 비난의 대상이 됐던 말레나.

‘라떼는 말이야’, 그녀의 화려했던 리즈 시절을 확인하고 싶다면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말레나> 만큼은 꼭 찾아봐야 한다.

영화를 아는 감독과 영화를 이해하는 배우가 만났으니 영화를 아는 관객이라면 당연히 그러해야 마땅하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도로, 해변 그리고 작고 아담한 건축물들은 또 다른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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