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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자를 체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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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자를 체포하라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8.14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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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치료보다 예방이다.

발병 전에 예방하면 치료는 필요 없다. 예방의학의 발전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의사와 병원은 늘 바쁘다.

범죄도 마찬가지다.

일어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그러나 질병과 같이 범죄 예방 역시 불가능하다. 경찰은 언제나 범인을 쫓고 감옥은 항상 만원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예방범죄학의 발달은 더디다. 예방의학처럼 연구자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이 영화에서는 너무 쉽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그 어려운 것을 쓱쓱 잘도 베어나간다.

트랙터에 쓰러지는 잘 익은 벼처럼 예비 범죄자들은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범행을 저지르기도 전에 여지없이 체포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프리 크라임 덕분이다. 미래를 보는 예지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 시스템은 범행이 일어날 시간과 장소는 물론 예비 범죄자를 정확히 특정한다.

사소한 범죄는 대상이 아니다. 강간이나 절도 폭행도 그렇다.

살인 정도는 돼야 시스템은 분주하고 이 시스템에 따라 형사 존( 톰 크루즈)의 발길은 빨라진다.

남편에는 시큰둥한 아내가 잘 차려입고 외출을 준비하거나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출근하는 남편은 일단 의심을 해야 한다.

아내와 정부가 자신의 집에서 괴성을 지를 때 침대 뒤에서 손에 쥔 칼로 내리찍기 전에 말이다.

그러나 대개의 남편들은 설마하고 그 설마가 결국 사람을 잡게 된다.

그런 것을 막기 위해 존은 오늘도 불철주야 뛰어다닌다. 퇴근해도 반겨줄 누구도 없다. 아내는 있었는가, 할 정도로 희미하다. 아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두 사람 다 그의 곁에 없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니 아내의 부재 이유야( 아내의 말에 따르면 당신을 보면 죽은 아들이 생각나서 이혼했다.) 알 바 없고 아들의 부존재는 설명이 필요하다. 그가 그토록 살인자를 미워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수영장에서 즐겁던 존 부자는 순간 영원히 이별한다.

그 아들은 겨우 6살이다. 존은 자신과 같은 비극이 더는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을 다잡고 다잡는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시스템을 존중하고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진력한다.

감사원을 감사하는 기관이 있어야 하듯이 완벽한 시스템이라도 그것을 뒤져야 하는 다른 기관은 필수적이다.

워싱턴의 법무성은 대니 (콜린 파월)를 파견한다. ( 주인공들은 대개 법무성이나 CIA 파견 요원들을 무시한다. 이 영화만이 아니라 다른 영화에서도 시골 경찰서 형사들 조차 이들을 쪼다라고 핀잔주는 장면을 간혹 본다. 그러는 것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존과 대결하고 둘은 원수처럼 지낸다.

그러다 일이 벌어진다.

예언자는 미래 살인자로 존을 점찍는다. 동공을 닮은 붉은 구슬에 선명한 살인자 존의 이름. 그 사실을 존은 대니가 알기 전에 미리 알고 대책을 세운다.

그는 조직에서 도망친다. 도저히 그러지 못할 것 같은데도 도망은 성공한다. 여기서 손에 땀이 난다. 다른 추격전과는 격이 다르다. (따돌리기의 명수 톰 크루즈를 생각하자.)

도망에 성공한 그는 자신의 살인을 막기 위해 시스템 설계자를 찾아 나선다.

해답이 담긴 세 명 예지자의 일치된 견해인 메이저리티 리포트가 아닌 단독 리포트인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얻기 위해 그는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자신이 살인할 미래의 피해자를 찾는다.

살인을 저지르고 유리 감옥에서 평생 썩기 전에 이유나 알아야겠다. 왜 자신이 누군가를 살해할 운명으로 타고난 것인지 존은 그것이 궁금하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은 결코 살인범이 될 수 없다.

그는 여기서 시스템에 대한 잠깐 회의에 빠져든다.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시스템이지만 자신은 살인할 의도도 행동도 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 결심 지켜질지 모른다.

▲ 존과 대니는 사사건건 대립한다. 존과 대니의 운명이 궁금하다.
▲ 존과 대니는 사사건건 대립한다. 존과 대니의 운명이 궁금하다.

비록 아들의 살인자가 자신을 쏴 죽이라고 그래야 시스템이 옳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들이 밀이어도 그는 결코 방아쇠 쥔 검지 손가락을 잡아당기지 않을 것이다.

그 굳은 맹세가 허물어질지 아닐지 감상할 때 긴장감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자, 이 정도 스토리 라면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 굴러갈지는 짐작할 것이다. 알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독자들 또한 많을 터. 그러니 여기서 내용을 계속해서 적어나가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신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사건으로 체포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한 번 뒤돌아보자. 살인의 마음을 품고 실제 행동한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감옥행이라면 억울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예고 시스템이 완전한 것인지도 의문을 품을 만하다.

시스템의 오류는 없는지, 시스템을 장악한 권력자가 정적을 제거하거나 원한 관계의 사람을 사건과 관계없이 이용하려는 음모나 간계 혹은 함정은 없는지 말이다.

마음속의 범죄도 종교에서는 금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신의 영역이지 인간에 속한 세계는 아니다.

그러니 인간의 통제는 2054년의 어느 미래 사회라 해도 가능하지도 가능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절대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그러니 확신은 금물.)

영화 속 허구들이 속속 현실이 되고 있어 미래 범죄자를 체포하는 일이 벌어질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 시절이 되면 물속에 갇힌 아가사 같은 예언자가 탄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비현실은 현실이 되고 미래는 계속해서 다가온다. 범죄 없는 세상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국가: 미국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톰 크루즈, 콜린 파월, 사만다 모튼

평점:

: 앞날을 알고 싶은 욕망은 유사 이래 계속됐다.

운명을 알아야 자신을 통제하기 쉽다. 점을 치고 사주를 보는 것은 미리 알아서 나쁠 게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런다고 오지 않은 미래를 알수는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예측 가능성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큰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것은 또 아니다.

그러니 영화가 어디로 빠지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결말의 비극이든 희극이든 그것은 관객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다만 그 판단을 돕기 위해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낸 것이고 그 말 가운데 동의하거나 거부하거나 하면 되는 것이다.

프리 시스템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파도 물론 있을 것이다.

중범죄에는 살인제를, 외치는 사람이나 살인자도 인권이 있다는 사람들은 편이 갈라진다. 황희 정승이라도 네 말이 맞고 네 말도 맞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에게 편 가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의 하나일 뿐이다.

섬뜩한 것은 권력자들의 통제가 앞으로 더 심해질 거라는 불길한 기운 때문이다. 이 또한 자유 대신 억압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또한 많다.

그건 그렇고 신원 확인을 피하기 위해 눈알 빼고 새 눈알 넣고 하는 거리의 무명 의사들은 그 전에 비해 살림살이가 나아졌는지 어떤지 궁금하다. 시스템의 전국화를 위한 투표는 진행됐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결함은 기계가 아닌 인간에게 있다는 그 신념은 여전히 유효한가, 계획범행 아닌 우발적인 충동까지도 예언해서 맞추는 틀린 적이 없는 예언 시스템은 파괴되지 않았는가. 그것도 궁금하다.

그러나 틈만 있으면 파고드는 로봇 벌레 스파이더까지 따돌린 존이 시스템 도입 후 최초의 살인자인지 아닌지, 여부가 가장 궁금하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없는 시간을 내자. 이 정도의 영화라면 봐줘야 한다. 그래서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노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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