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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는 빚을 값은 후련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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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는 빚을 값은 후련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8.10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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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 사줄 돈은 넉넉했다. 넉넉하다기보다는 그럴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다른 곳에서 덜 쓰면 된다.

매번 그러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평생 두서너 번 될 것이다. 그 정도 인심을 베풀어도 상관없었다.

자신을 늘 좋게 말하고 만날 때마다 대부님, 대부님 하는 그가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악하지 않았고 성품이 착했다. 착한 사람은 얼굴에 쓰여있다.

그가 웃을 때면 얼굴 전체가 후라이팬 속의 전처럼 활짝 펴졌다. 반가움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그에게 정태는 늘 그놈의 술이 웬수지,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곱씹었다.

병태는 정태와 세 살 차이였다. 병태가 어린 것이 다행이었다. 그 반대라도 대부님, 대부님 했겠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들고도 속이 편할 정태는 아니었다.

그는 윗집 대부는 참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소리를 정태가 직접 들은 것은 아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엊그제 병태와 술을 먹었는데 칭찬 합디다, 라고 그런 소리를 들어도 좋을 만한 인물인지 가늠하면서 듣는 소리였다.

그러면 정태는 사람좋은 그 사람이 좋게 말해서 그렇지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 쳤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작은 마을이지만 누군가에게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길에서 마주치는 윗마을 사람에게서 병태가 아저씨 추어올렸어요, 하는 말을 듣고는 쑥스럽게 뭔 소리냐고 대꾸하면서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오늘 그 병태가 객줏집 마당에서 손을 까불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님, 대부님.

그는 큰 목소리로 마치 아이가 엄마를 부르듯이 불러 제켰다. 소변을 보다 담 너머로 지나가는 정태를 발견한 것이다.

예감은 맞아떨어질 때도 있다고 정태는 그 소리가 반가워 마주 손을 흔들면서 열려있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병태는 어지간히 취해있었다.

그는 술 취한 사람답게 했던 소리를 자꾸 되풀이하거나 쓰잘머리 없는 말들을 마구 지껄였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라서 정태는 정색을 했으나 한 번 입을 연 병태는 그치지 않고 남의 집 대소사를 물론 앞으로 있을지 모를 일까지 예단을 서슴지 않았다.

처음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정태는 그만 일을 핑계로 자리를 뜨면서 주모를 불렀다. 더 있으면 못 볼 꼴을 볼지 몰랐다. 그러면 아니 오니 만 못한 결과가 올 것이다. 그는 예의 급하다는 핑계를 댔다. 

주머니를 뒤져 돈을 내고 남은 돈은 그 전 것이 있으면 제하라고 선심을 썼다.  정태는 그 행동을 병태가 보는 앞에서 했다. 

그렇게 한 것은 주모가 간혹 외상 술값을 받으러 오기 때문이었는데 정태는 혹 오늘 술값도 외상이라고 병태를 못살게 굴 것 같아 다른 사람들 있는 곳에서 일부러 값을 치렀다.

병태는 나도 돈이 있다고 대부님 그러시면 안 된다고 연신 말렸으나 돈을 내자 펴진 얼굴이 더 펴져 마치 붉은 달덩이처럼 떠올랐다.

정태는 빚을 값은 후련한 심정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는 서둘렀다. 소가 기다릴 것이다.

그는 논에 가서도 애들 생각이나 용순보다는 우리에서 기다릴 소를 먼저 떠올렸다. 소는 돈이고 생명이었기에 언제나 식구 보다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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