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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09-29 06:02 (목)
한몫하는 일꾼이 성일의 그 당시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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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몫하는 일꾼이 성일의 그 당시 소원이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7.30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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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 것은 온 가족이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할머니의 부재를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다들 호상이라고 장사를 지낸 후 만나는 사람들은 말했고 그 말을 하면서 그들은 상주 보다도 더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상이여. 호상.

살기 힘든 시절에 군식구 한 명은 나머지 식구들의 부담이라는 것을 그들도 듣는 사람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은 이렇게 덕담이라고 해야 할까, 할 정도로까지 이어졌다.

정태는 그것이 쓸쓸했다. 효심이 남달랐던 그는 엄마의 부재가 도움이 되는 세상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하지만 정태는 그런 생각에 긴 시간을 쓸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애도할 틈을 찾기 어려웠다.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삼일장을 끝내고 삼우제도 지났다. 49제가 남았으나 한 사람의 죽음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었다. 엄마의 혼백은 편안할 거라고 정태는 믿었다.

잘 가, 엄마.

정태는 어린애처럼 초우, 재우, 삼우 때 이 한마디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낫질을 하다가도 허리를 펴면 어릴 때 엄마가 떠올랐다.

등에 업혀 말고개를 넘어가면 정태는 행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하자, 정태는 다시 허리를 굽혔다.

지금은 농번기다. 일 년 중에 가장 바쁘다. 부엌의 부지깽이도 나서야 한다. 아이들 손까지 빌려야 한다.

지금처럼 현대식 기계를 쓰던 시절이 아니다. 트랙터가 한 번 쓱 하고 지나가면 벼는 벼대로 포대에 담기고 나락은 가지런히 아래로 떨어지는 시스템은 꿈속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일일이 낫으로 베고 그것을 이고 지고 와서 마당에 말려야 한다. 잘 말랐다 싶으면 ‘와롱꽈롱’이라고 불리는 기계에 돌린다. 이것이 농촌에 들어와 일손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전에는 볏단 몇 줌씩 놓고 도리깨로 털어야 했다.

그럴 때면 정태는 정신이 없었고 용순의 일거리는 쌓여갔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성일은 책 대신 논과 밭으로 달렸다. 일거리를 돕는다는 핑계였지만 누군가의 쓰임새로 커가고 있는 자부심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품앗이하는 일꾼이나 삼촌들은 성일을 보면 무언가 꼭 심부름을 시켰다.

닷 마지 논에서 집까지는 2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여서 일하다 말고 물을 가져오거나 부러진 낫을 대신할 연장을 찾아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시가 급한 마당에 성일을 보면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이것 가져와라, 저것 가져와라, 하고 소리쳤다. 정태는 그들의 말을 되받아 빨리 가라고 뒤통수에 대고 더 크게 고함쳤다.

성일은 내달렸다.

그러려고 내가 오지 않았느냐.

달리기라면 자신 있었다. 무엇보다 달리는 재미가 여간 아니었다. 달릴 때 성일은 이유 없이 기뻤고 마침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맞을 때면 더 세게 달려나가면서 자신의 튼튼한 두 다리를 자랑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은 그즈음 전해졌다. 비를 피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 탈곡하고 말리고 가마니에 담는 일이 남았다. 다행히 태풍은 예보보다 약했고 비를 뿌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른 불순한 일기에 대비해 더 빨리 끝내려는 의욕이 사람들의 얼굴 가득 차올랐다. 와롱꽈롱을 돌리는 일은 성일에게는 흡족한 놀이였다.

불안한 시선으로 발판을 넘긴 일꾼들은 성일이 제대로 돌리는지 눈길을 떼지 않았다. 새참을 먹으면서도 눈은 그쪽으로 가서 고정됐다.

한 시도 기계를 놀릴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몸 역시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단순히 몸만 놀리는 것이 아니다. 몸을 놀리면서 볏단의 벼를 남김없이 털어야 한다.

무수한 먼지가 날리고 그 먼지 사이로 알곡의 껍질을 튀어 올랐다. 옷 속으로 들어가거나 살에 닿으면 쓰리고 아팠다. 그러나 그런 일은 늘 일어나는 일이었다.

왼 다리로 밟고 올리는 동시에 양손으로 가득 잡은 벼를 이리저리 돌리는 일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춤추는 일벌과도 같다.

일하면서 춤춘다.

그러려면 기술과 힘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러니 어린 성일이 제법인데 하는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못 쓰것다. 그만해.

하는 지청구를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할 성일이 아니다.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자신도 어른 축에 끼어 들어가야 한다. 한몫하는 일꾼이 성일의 그 당시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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