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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00:50 (금)
성일은 할머니의 부재를 더는 신경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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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은 할머니의 부재를 더는 신경쓰지 않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7.28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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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가 죽으면 뭐가 좋으냐.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할머니는 성일이 투덜거리며 세숫대야에 물을 떠놓자 이렇게 말했다.

할미 심부름하는 거 싫지.

말소리는 부드러웠으나 당사자의 입에서 죽음 뒤에 나오는 말이라 성일은 순간 움칠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싫다는 말 역시 죽는다는 말처럼 귀에 걸렸고 그 순간 그녀는 아차 싶었는지 얼른 입을 닫았다.

철부지 아이에게 너무 심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문지방을 기어 나와 창호지 문을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 몸짓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다시 문을 닫고 기어서 문지방을 넘었다. 자리에 누운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고인 눈물은 넘쳐서 볼을 타고 흘렀다.

그것을 훔찔 생각도 하지 않고 그녀는 한동안 그렇게 훌쩍였다. 마치 어린 아이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눈물이 그쳤을 때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이 부메랑처럼 자신의 입으로 들어와 비수처럼 박히는 것을 느껴 답답한 가슴을 쥐어짰다. 숨 쉬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럽다.

그려, 이젠 싫어. 할머니 싫어.

성일은 그 순간 그런 말을 하면서 눈먼 할머니를 남겨 두고 연을 들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소중했던 것이 그녀의 손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할머니는 성일과 작별을 고했다. 그 날 이후 할머니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와 성일 사이에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으나 이제는 새로운 것을 더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손주의 불만을 알아차렸을 때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 눈을 영원히 감았다.

생의 끈을 놓기 위해 할머니는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다. 늘 밥을 남겼고 용순이 더 잡수라고 하면 성일이 주라고 밥그릇을 밀었다. 가슴이 짠하게 울려 용순은 그릇을 놓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정태는 틈만 나면 할머니 돌아 가시 전에 말씀 잘 들어,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의를 주었다. 당장이라도 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은 표정으로 정태는 성일을 어르고 달랬다.

그래서 성일은 오늘도 할머니가 살아 계신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곧 돌아가신다는 할머니는 한 달을 더 사셨다.

할머니는 관 속에서 무사했을까.

엎어지지 않고 똑바로 누워서 꽃가마의 무늬들을 감상하고 계셨을까. 하얗고 빨간 연꽃의 향기를 감상하면서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고 안심 했을까.

아버지가 사준 새 옷을 입고 흡족했을까.

어호~ 어호! 어 호호, 상여꾼들이 멈췄던 곡을 다시 시작할 때 귀에 익은 소리라 반가워 따라 했을까.

잘들 있어라, 나는 간다. 간다고 서러워 마라. 두고 가는 나도 있지 않느냐.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지느냐, 해당화 진다고 설워 마라, 명 년 봄 오면 다시 핀다.

꽃 피면 정말로 새봄에 다시 오려고 작정했을까. 그런 물음을 성일에게 남긴 채 할머니는 떠났다.

냄새나던 할머니가 아닌 몰래 숨겨둔 사탕을 다른 사람은 빼고 자신에게만 주면서 많이 먹으라던 할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다.

그러자 한때는 할머니 없이는 못살 것 같던 날이 있었던 것을 성일은 기억해 냈다. 매일 엄마 대신 할머니 품에서 잠이 들었고 한시도 떨어져 있으면 불안했던 그 시절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렸다. 상관없는 일이 된 할머니의 죽음을 성일은 금세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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