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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0-02 15:58 (일)
성일은 자신도 마음이 깨끗이 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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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은 자신도 마음이 깨끗이 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7.21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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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없다고 해서 그의 삶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이거나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은 존재였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사라져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상여가 작은 다리를 건넜다. 그 다리는 달릴 때 조심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널찍하고 폭이 좁았다.

그런데 상여꾼들은 여간 신경 쓰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아래에 큰 강물이 있고 잘못하면 모두가 떠내려가는 그런 다리 위를 건너는 것처럼 조심스러워했다.

그들은 이 다리를 넘으면 이제 더 멈출 곳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정태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없을 것 같던 노잣돈을 다시 줄에 걸었다. 됐다는 듯이 그것을 본 꾼 중의 하나가 손사래를 쳤으나 정태는 아니라고 받아 두라고 말을 하면서 다시 뒤로 물러섰다.

넉넉한 노잣돈이 생전에 하지 못한 불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자식의 효도 된 마음이라도 되는 듯이.

받는 그들이나 주는 정태 역시 실랑이가 필요 없었다. 사실 그들은 서로 그럴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어린아이 걸음마 하듯이 조심스럽게 다리를 지날 때 잠시 적막이 흘렀다.

다리 옆에 장승처럼 서 있던 참나무에서 상수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산기슭에 다다랐을 때 해는 바다 쪽으로 제법 기울었다.

언덕에는 긴 그림자가 꼬리를 달았고 숲의 안쪽은 그늘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리 와 있던 일꾼들은 상여가 안전하게 땅에 닿도록 도왔다. 상여는 무덤가에 안착했다. 몸집이 작은 할머니에 비해 관은 너무나 컸다. 저 관을 메고 한나절 정도 돌아다닌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상여의 무게 때문에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상여꾼들이 이마의 땀을 씻기 위해 머리에 맨 수건을 풀어 닦아 내면서 자신들이 일을 마친 것을 안도했다.

그리고 무덤을 파기 위해 미리 와 있던 인부들과 인사를 하면서 깊이나 넓이 등이 이상이 없는지 자기들이 감식이라도 하는 듯 한 번씩 들여다보고 재봤다.

이만하면 됐네.

그중의 하나가 허락이라도 내리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양 위로의 말들이 상주들 사이에서 이어졌다.

수고했네, 자네들이 고생했어.

그들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당연한 소리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거리를 찾아 움직였다. 성일은 그 모든 것을 관찰하는 마음으로 주의 깊게 바라봤다.

낯설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했다. 놀이보다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단한 제사가 이어졌다. 술이 한잔 씩 돌았다. 가마 속에서 삼베옷을 입은 할머니가 내려왔다. 그리고 한 칸 더 내려갔다. 곡소리가 일제히 커졌다. 일꾼들이 삽을 내밀었다.

순서대로 가족들이 한 삽 식 떠서 무덤에 던졌다. 간혹 주먹만 한 돌이 떨어지면 누군가 얼른 들어가거나 긴 손을 뻗어 그것을 밖으로 집어 던졌다.

곁에 있던 럭키가 자신에게 그러는 줄 알고 멀찍이 달아났다. 그러고 보니 럭키는 줄곧 자신을 따라 왔다. 진돗개 잡종견인 럭키는 성일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럭키는 그것을 신호로 집으로 돌아갔다.

성일의 차례가 왔을 때 무덤은 거의 평평해져 있었다. 그래도 그는 발로 삽을 밟고 제법 많은 흙은 퍼서 무덤에 던졌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잘하고 있는지 말이다.

당황해서 성일은 조금 떨렸으나 조심스럽게 일을 끝냈다. 그리고 그 역시 일꾼들처럼 큰일을 해낸 듯이 허리로 펴고 아래를 봤을 때 해가 이쪽을 향해 비스듬히 비춰들었다.

가리는 것 없는 평야가 무척 아름다웠다. 산소에서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은 멋진 일이다. 성일은 무덤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붉은 흙이 파란 잔디로 덮일 때쯤 할머니를 보러 혼자 몰래 오리라고 다짐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지 않겠다고 푸념했으나 무덤에서 멀리 보이는 경치에 그만 마음을 바꿨다. 그제서야 할머니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일었다.

지난 시간을 보충해야 한다는 듯이 빠른 속도로 봉분까지 만든 일꾼들은 하나둘 돌아갔다. 친척들도 고개를 숙이고 각자의 집으로 찾아 들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쉽게 끝나는 일을 너무 오래 돌아서 왔다.

성일은 발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리고 정태를 바라보았다. 해냈다는 자부심까지는 아니어도 탈없이 일을 마쳤다는 안도감이 보였다.

용순도 그런 표정이었다. 편한 얼굴에서 성일은 자신도 마음이 깨끗이 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챙기고 보살펴야 할 군식구가 사라지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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