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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이 지겨운 일이 끝나기를 성일은 고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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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이 지겨운 일이 끝나기를 성일은 고대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7.20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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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할머니의 죽음이 더는 슬픈 일이 아니었다.

무언가 몸에서 빠져나간 것처럼 허전했던 아침나절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상처를 입었던 영혼은 어느새 새살이 돋아났고 산 사람이 죽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 같았다. 헝겊으로 아무렇게나 만든 조잡한 인형이 사라졌다고 해서 아쉬워 할 것은 없다는 그런 마음이었다.

할머니는 그냥 동네 사람들의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죽었으니 떠나는 상여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성일에게 무덤은 무서움이나 놀라움이라기보다는 놀이터였다. 늘 무덤에서 놀았다. 뛰고 놀만 한 장소로 무덤처럼 좋은 데가 없었다.

집 마당은 좁았고 학교 운동장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공을 차거나 자치기를 할 만한 공간을 마을에서는 찾기 어려웠다. 널찍한 무덤 주변에서 노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무덤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그곳의 봉긋한 곳에 깃발을 박고 땅 뺏기 싸움도 했다. 먼저 꽂는 팀이 이기는 것이다. 이겼다고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혼나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어디론가 손 살 같이 도망갔다가 소리지른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다시 무덤으로 모였다. 무덤을 파고 그 속에 들어가서 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 형국이니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은 성일에게 애초에 없었다. 상여를 따라가면서도 성일은 무덤으로 가서 놀 생각에 몸이 근질거렸다.

집 뒤의 언덕배기에는 무덤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아이들은 그 묘지에서 공을 차고 석등을 골대 삼았다.

사람이 부족할 때는 무덤이 골키퍼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무덤에 대고 슛을 내질렀고 다행히 잘 맞은 공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또 한 번 슛한 기회를 주었다.

처음에 파랗던 무덤은 어느새 흙바람을 일으켰다. 무덤 주인의 자손들은 먼데 서 살았다. 그들이 왜 이곳에다 조상의 무덤을 썼는지는 모른다.

정태에 따르면 여기서 8킬로 미터 정도 떨어진 도림촌 사람이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가 산을 샀고 죽으면서 그 산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에 대한 다른 설명은 없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묻을 이유도 없었다. 간혹 그들의 후손들이 나타나서 호기심을 자극할 뿐이었다.

자손들은 아예 효심이 없지 않아서 일 년에 한 번은 꼭 다녀갔다. 그때마다 정태네 집에 들른 것은 무덤이 있는 산을 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삽을 빌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먹을 물을 얻어가기도 할 만큼 길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은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 해를 걸러 돼지고기 근을 사왔다.

그들이 가고 나면 무덤은 잔디로 새 옷을 입었다. 정성을 들여 만든 잔디가 흙먼지로 변하는 데는 채 열흘이 가지 않았다. 그들은 일 년 후에나 올 것이고 누가 그랬는지 따지기도 전에 새로운 잔디를 입힐 것이다.

어느 날 그들이 정태를 찾아왔다. 서넛이 대문 간에서 서성이다가 정태를 보고는 허리를 굽히고 인사했다. 지체 높은 양반은 아니어도 상놈 소리는 듣지 않을 태도였다.

그들은 대뜸 산을 관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손에 든 새끼줄로 엮은 달걀 꾸러미를 내밀면서 아첨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땔감으로 나무를 베거나 가랑잎 등을 마음대로 긁어 가도 된다고 했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정태는 그곳에서 늘 땔감을 마련했다.

그런데 관리권을 준다니 반가웠다. 나무를 하면서도 남의 것을 가져간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정식으로 관리권을 얻었으니 그런 감정에 사로잡힐 일은 없었다.

정색하는 정태에게 그들은 대신 무덤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효심이 깊은 정태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서 정태는 늘 지킬 수는 없으나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혼쭐을 내주마, 하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질 수 없었다. 정태는 늘 바쁘고 아이들은 늘 놀았기 때문이다.

일 년 후에 온 묘지 주인은 묘지가 아예 마당이 돼서 반질반질해진 것을 보고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런 식이면 관리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고 낮빛을 바꾸었다. 조심스럽게 얘기했지만 단호함 같은 것이 잇었다.

그날 정태는 알아들을 때까지 성일에게 주의를 주었다. 용순도 옆에서 거들었다.

남의 묘에 올라가면 못쓴다. 벌 받아.

성일은 다른 묘지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 묘만 아니라면 못 쓰는 것도 아니고 벌 받는 것도 아니었다. 성일은 아이들을 다른 묘지로 이끌었다.

5대조의 무덤이 새로운 축구장으로 변했다.

산의 묘보다 크기는 작았으나 직사각형이어서 뛰어놀기는 나쁘지 않았다. 어른들은 이 산소가 뉘 산소인지 줄 아느냐며 소리 질렀으나 종일 감시할 수는 없었다. 그 산소 역시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벌거숭이가 됐다.

어른들은 다 같은 자식이니 누군가 관리하겠지 하면서 뒤로 빠지기도 했다.

5대조라면 사실상 남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정태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그 분이 여기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고 지금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분이 조상이라는 생각에 정태는 기분이 나빴다.

힘들고 바쁜 중에도 정태는 5대조의 묘를 살폈다. 떼를 만들고 여름철에는 배수로를 냈으며 가을 무렵이면 홀로 벌초를 했다.

그러고도 어떤 때는 산으로 가서 깜깜할 때까지 관리인의 묘를 다듬었다. 용순은 그런 정태에서 세상에 효자 났다고 언짢게 대했으나 그것 때문에 농사를 망치거나 다른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함 때문에 눈감아 주었다.

어른들 눈을 피해 공을 차면서 성일은 할머니 무덤에서 그럴 수 없는 것이 속상했다.

할머니라서 공경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산비탈이라 공을 차면 그것으로 그날 놀이는 끝이었다. 공은 굴러서 논까지 굴러가 쳐박힐 것이다.

차는 것은 좋지만 누가 그 공을 주으러 가고 공이 올 때까지 무엇하고 놀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성일은 내심 선산이 새로 꾸며지기를 기대했다. 정태가 조상 묘를 손봐야 한다는 말을 밥상머리에서 한두 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손본다는 것은 소나무 사이에 난 잡목을 베고 지난번 홍수로 무너져 내린 돌담을 새로 쌓는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성일은 혹시나 해서 새로 조성되는 선산을 미리 가보았으나 변한 것은 없었다. 성일은 떠나는 할머니가 얄미웠다. 그래서 어서 이 지겨운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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