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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용순은 화난 표정이었으나 다시 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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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용순은 화난 표정이었으나 다시 내색하지 않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7.14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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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예감은 대개 맞아떨어졌다.

다음날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건넛방에 갈 때 정태는 다리가 약간 휘청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안부가 아닌 생사를 확인하는 길이었고 그 길은 어제와 같지 않았는 것을 알았다.

오늘을 넘기기 어렵겠다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엄마는 돌아가셨다. 아마도 어젯밤일 것이다. 아니 오늘 새벽이 틀림없다. 밤까지 엄마는 살아 있었다. 자정까지도.

얼핏 잠이 들었다가 깬 정태는 새벽 세 시 경에 그녀의 죽음을 확인했다. 그 순간 정태는 광산 김씨도, 어머니도 아닌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잠깐 멍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당연히 그래야 했지만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상태가 됐다. 예견됐던 것이 막상 눈앞에 닥쳐오자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이제 더는 살아 있는 엄마는 이 세상에 없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 함께했던 28년의 인생을 떠올렸다.

그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했고 어느 한 점에서 머물기도 했다. 그는 눈을 뜨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용순이 낌새를 알아채고 몸을 뒤챘다. 그녀는 그가 그 사실을 알리기 전에 일어나 몸 매무새를 다듬었고 그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엄마가 돌아가셨어.

일어나 앉은 용순은 단정하게 머리를 빗었다. 그리고 박자에 맞춘 듯 두 사람은 동시에 짧은 곡을 했다.

그리고 정태와 용순은 서럽게 울었다. 다들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렇게 했다. 낮이건 밤이건 새벽이건 상관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시간이 무슨 상관인가.

밤의 고요한 공기는 날카로운 소리에 깨졌다.

그 소리는 곧 옆집으로 번졌고 날이 새면서 동네에 퍼졌다. 간단한 부고장을 들고 사촌 형이 인근의 몇 개 마을을 돌고 온 것은 점심이 한 참 지나서였다.

부고장을 받은 그들은 그것을 받기 전에 문간에서 서성이는 얼굴을 보고 건넌 마을 정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

다들 오늘, 내일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새삼스럽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들은 고인에 대한 예를 지키기 위해 저런 저런, 이를 어째, 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 시각 정태는 용순이 자른 삼베를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입혔다. 목욕을 하고 머리를 빗은 엄마는 평온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태는 장례사 대신 자신이 한 것을 잘했다고 여겼다.

마지막 가는 길에 새 옷을 직접 입혀 드리려는 마음을 용순도 알고 있었기에 그런 정태의 행동을 간섭하지 않았다. 옷을 다 입혀 드렸을 때 정태는 용순을 보았다. 그녀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런 그녀에게 정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새 옷을 직접 사지 않고 그녀에게 돈을 주었다면 더 저렴하게 혹은 그보다 헐한 것을 장만하고 남은 돈은 아이들 옷이나 학용품 사는데 유용했을 것이다.

처음에 용순은 화난 표정이었으나 두 번 다시 내색하지 않았다. 척 보아도 비싼 옷감이었고 그것은 정태가 자신 몰래 모아둔 돈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1년 이상은 모았을 것이다.

그것이 괘씸하기도 했으나 용순은 아들의 마음을 알았기에 되레 정성을 들여 시어머니의 마지막을 챙겼다.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순간을 용순을 잘도 이겨내고 있었다.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시어머니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였다.

장 구경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집 주변에서만 돌았던 시어머니의 인생은 남들에 비해 특히 기구하지는 않았어도 더 나을 것은 없었다. 용순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정태는 더 열심히 일해서 용순에게 미안한 마음을 갚고자 다짐했다.

내외간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다. 말하지 않았어도 용순은 정태가 지금 자신에게 그런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을 알았다.

며느리가 자기 말고도 위로 아래로 있지만 엄마를 챙긴 것은 모두 용순의 몫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부엌일이며 안사람이 챙겨야 할 자잘한 것을 용순은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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