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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한여름 밤의 꿈(1595)-반전이 있는 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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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한여름 밤의 꿈(1595)-반전이 있는 참사랑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7.09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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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자는 그가 눈살을 찌푸려도 사랑한다. 그가 저주해도 사랑한다. 미워하면 할수록 따라온다. ( 주어를 남자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사랑에 콩깍지가 씌면 결점도 장점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어린애처럼 자주 속고 선택할 때 무턱대고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랑의 길은 멀고 험하며 좌절과 극복이 항상 따라붙는다. 사랑의 결실이 값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미아와 라이샌더의 사랑도 어렵다. 그 길이 평탄했다면 셰익스피어가 <한여름 밤의 꿈>에서 이처럼 길게 극을 쓰지 못했을 터.

문제는 허미아 아버지 때문에 생겼다. 둘의 사랑에 강력한 훼방꾼으로 등장한다. 이지우스는 허미아의 신랑감으로 라이샌더가 아닌 드미트리우스를 점찍었다.

점찍힌 드미트리우스는 허미아를 열렬히 사랑한다. 그런데 허미아는 드리트리우스를 멀리한다. 그녀의 참사랑은 오직 라이샌더 뿐이다.

원치 않는 남자와 결혼하라는 명령은 비록 그것이 아버지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따르기 어렵다. 아버지 역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이고 다른 사람으로 눈으로 선택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장이 터진 이지우스는 답답한 마음에 아테네 공작 테세우스에게 어려운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청한다.

이 자가 시와 사랑의 정표와 엉큼한 목소리, 장신구와 꽃다발로 딸의 마음을 훔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면서. 한마디로 간교한 라이샌더가 순진한 허미아를 꼬드겨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

그러나 이 애는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큰 소리다. ( 아버지는 딸을 자기 결정권이 없는 바보 취급하고 있다.)

히폴리타와 결혼식을 앞둔 테세우스는 노골적으로 이지우스를 편든다. 허미아에게 어쩔 것이냐고 다그치면서 아버지가 너를 빚었으니 너의 신은 이지우스이고 신의 명령을 따르라고 명령한다.

▲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온갖 꽃이 만발한 숲속으로 사랑을 찾아 도망쳤다.
▲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온갖 꽃이 만발한 숲속으로 사랑을 찾아 도망쳤다.

너를 그 형태로 그대로 두거나 없앨 수 있다고 쐐기를 박는다.

밀랍인형이 말을 듣지 않으면 아테네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것. ( 당시 아테네 법은 아버지의 말을 어기면 죽임을 당하거나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

영리한 테세우스는 혈기왕성한 허미아가 평생 수녀의 제복을 입고 살기는 어렵다는 것을 간파하고 협박으로 허미아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 것이다. 그러면서 드미트리우스가 신사인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허미아가 예, 알겠습니다 하고 굴복하면 막은 내린다. 재미없기 때문에 관객이 더 머물수 없다.

당연히 그는 대든다.

라이샌더도 그래요. ( 감히 절대 권능을 가진 공작에게 거침없이 대할 정도면 이지우스의 가문이 그와 버금갈 정도였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고 허미아가 자기 결정권이 없는 바보가 아닌 강단 있고 이지적인 여성임을 알 수 있다.)

한술 더 떠 드미트리우스가 남편으로 자신에게 지배권을 행사하는데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덧붙인다.

이제 드미트리우스가 말할 차례다. 노련한 그는 허미아에게 마음을 풀라고 다독이면서 무효인 네 자격을 나에게 넘기라고 허미아 대신 라이샌더를 압박한다.

라이샌더는 재치로 응수한다.( 그의 유머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이런 유머 또한 허미아가 라이샌더에게 빠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유머 넘치는 남성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

너는 그녀 부친의 사랑을 가졌으니 허미아 사랑은 내게 주고 넌 그 부친과 결혼하라는 것.

드미트리우스가 한 방 먹고 주춤하자 이지우스가 그를 도와주기 위해 테세우스가 한 말 즉 허미아는 내 것이니 애에 대한 권리 모두를 드미트리우스에게 준다고 약속한다.

여기서 이런저런 대화들이 더 오간다. 그러 던 중에 드미트리우스가 허미아 아닌 헬레나의 사랑을 구했고 그 영혼을 얻었음이 드러난다.

드미트리우스가 변덕쟁이라는 말에 이지우스나 테세우스는 눈 하나 껌벅하지 않는다. 그 얘기는 들을 만큼 들었으니 새롭다고 할 수 없고 사랑의 장애물이 결코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아버지와 테세우스의 손에서 벗어날 방법으로 아테네 법이 미치지 않는 숲으로 도망치기로 한다. 선택하는 마음이 일치했으니 행동에 장애는 없다.

언젠가 앵초꽃 침대 위에 누워 사랑을 약속했던 그 곳으로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야밤 도주에 성공한다.

그 이전에 드미트리우스가 이미 홀렸던 헬레나가 등장한다. ( 헬레라도 빠지면 곤란한 극의 핵심 인물이다. 너무 늦게 등장한 감이 있을 정도로.)

헬레나는 자신의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함에도 여전히 드미트리우스를 사랑한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더 예쁜 허미아의 외모에 질투를 느낀다.( 여기서 네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모두 죽마고우인 셈인데 이들의 만남이 유행가 가사처럼 애초부터 잘못된 만남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밝혀진다.)

허미아는 질투로 달아오른 헬레나를 다독인다. 헬레나가 드미트리우스를 사랑하면 할수록 되레 드미트리우스의 허미아 사랑이 깊어지므로 그가 자신을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달아난다는 사실을 알린다.

자신을 싫어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헬레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트렸으면 하는 허미아의 우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여기까지가 서두 부분이 되겠다.

내용 전개가 빠르고 대충 나올 것은 드러나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양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도피 이후의 상황과 결말은 앞부분과는 달리 조금 느리고 재미없게 흘러가는 부분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요정이 등장하고 그들의 왕 오베론과 여왕 티타니아가 어떤 술수를 쓰는지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숲속의 상황은 더 극적이다. 북극성처럼 변하지 않고 변경할 이유가 생겨도 철회하지 않을 굳은 사랑을 맹세한 라이샌더와 허미아의 사랑에 금이 생겼다.

그것도 빠지면 나오기 힘든 히말라야의 크레바스처럼 커다란 금이.

돌연 변심한 라이샌더는 연적 드미트리우스에게 허미아는 너나 가져 하고 던져 버리는 잔인한 행동을 너무나 쉽게 저지른다. ( 아무리 요정의 장난이든 꿈속이든 묘약을 먹었든 그 어떤 상황에서라고 라이샌더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강철처럼 단단하다가도 가벼운 나무 망치 하나로도 쉽게 부러질 수 있음을 안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반면 그렇게도 싫어했던 드미트리우스는 헬레나를 허미아처험 사랑한다.

사랑을 교란하고 남녀의 구애 질서를 무너뜨리는 요정들이 사는 숲속으로의 도망은 사랑 찾아 떠났다가 그 떠남으로 인해 멀어져야 하는 운명의 장난이 허무하다.

과연 허마이와 라이샌더의 결말이 궁금하지 않은가.

: 헬레나로부터 허미아가 라이샌더와 함께 숲으로 도망갔다는 말을 들은 드미트리우스는 그들을 추격하기 위해 발을 빨리 놀린다.

거기에는 헬레나도 동참했다. 따라오는 헬레나를 따돌리기 위해 드미트리우스는 그녀에게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심지어 저리가, 꺼지라고 까지 한다. ( 이 장면에서 헬레나의 표정은 그렇다쳐도 그녀의 심장이 어떨지 상상해 보자. 헬레나의 무너지는 가슴을 달래 줄 수만 있다면 아테네에서 칠십 리나 떨어진 그 숲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다.)

그러나 헬레나는 그렇기 때문에 더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허미아의 라이샌더에 대한 사랑이 더 강한지 헬레나의 드미트리우스에 대한 사랑이 더 강한지 내기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랑을 받는 대상을 사랑하는 허미아보다 버림받으면서까지 사랑하는 헬레나의 사랑은 비교할 수 없다.)

헬레나는 나는 당신의 애완견이니 개처럼 다루고 차고 때리고 무시하고 그럴 가치가 없더라도 따르게만 해달라고 애원한다. (아! 헬레나, 이보다 큰 사랑의 구걸을 나는 세상 어디서든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드미트리우스는 동정 대신 구역질 난다고 쏘아붙인다.

헬레나의 대답이 걸작이다. 이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대사라고 단언한다.

“나는 당신을 못 보면 구역질이 나는데.”

따라오지 못하게 막는 드미트리우스에게 헬레나는 사랑하는 그 손에 죽어서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여전히 사랑의 끈을 놓치 않는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헬레나의 사랑은 엄마의 자식 사랑처럼 가히 없어라~.)

이제 한여름이다. 덥고 습하고 짜증이 밀려온다. 거기에 간혹 가위눌림이라도 당하면 여름밤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특히 뱀이 자신의 심장을 파먹는데도 사랑하는 사람이 달려와 도와주기는커녕 보고도 그냥 웃고 자빠졌다면, 그 꿈은 악몽이 틀림없다.

그러나 한여름 밤의 꿈이 그런 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잠에서 깼을 때이다. 깨고 나서도 여전히 그 속을 헤매기도 하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꿈은 꿈일 뿐이라고 그러니 변치 말자고 했던 굳은 언약을 실행할수도 있다.

독자들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는 내용을 찾기 위해서라도 혹은 오독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셰익스피어의 4대 희극 중 하나인 <한여름 밤의 꿈>을 일독해야 한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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